• 전체메뉴보기
 

정원 앞뜰 차고 옆 온실 담벼락에는 아주 속을 많이 썩이는 한 녀석이 살고 있습니다. 인도와 우리나라, 일본의 남부 숲속에서 약 20종이 자생하는 상록성 덩굴식물인 마삭나무라고도 하는 마삭줄(Trachelospermum asiaticum Nakai)입니다.
 
이 아이는 이곳 환경이 너무나 좋은가 봅니다. 좋은 환경과 강한 생명력과 강건하게 잘 자라는 성질 때문에 성가실 때가 참 많습니다. 무성한 잎들이 담장을 타고 올라 온실 창문을 가려 온실 속 친구들이 받는 햇볕을 가리고 온실 속까지 영역을 넓혀 창문을 닫을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어느 사이에 옆으로 뻗어 커다란 향나무가 누워 있는 곳으로 기어들어 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지 못하고 이곳에서 구박하면서도 계속 데리고 있는 이유는 그만이 지닌 독특한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윤기나는 조그만 타원형 녹색 잎은 질감이 참으로 곱습니다. 가을에는 다른 상록성 잎들과 달리 가끔 검붉은 빛의 선명한 단풍이 들면 운치가 있지요. 녹색 잎들 사이에 가끔씩 보이는 붉은빛 단풍을 달고 한겨울을 난 후에는 연한 연둣빛 잎을 품는데 다른 식재들에게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녔습니다.
 
차고 위 온실 앞에 누워 있는 커다란 짙은 녹색 덩이의 향나무와 함께 유리온실을 부드럽게 보완해 주고 정원에 안정감과 풍성함을 더해 우리 집 정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어느 해 5월, 정원에 물을 주다 달콤한 향기에 끌려 주위를 둘러보니 어디에서 향긋한 꽃향기가 났습니다. 꽃향기를 따라갔더니 세상에 올망졸망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녹색 무리 잎들 속에서 하얀 꽃을 보았습니다. 바로 구박덩이 마삭줄에 하얀 꽃이 핀 것이지요.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로웠습니다. 꼭 소중한 보물을 만난 느낌이었지요. ' 와~ 이 녀석에게 이런 꽃이 있을 줄이야.'
 
그동안 너무 무성하게 자라 구박을 많이 했는데 꿋꿋하게 견디며 예쁜 꽃을 피웠습니다. 온실 담장을 신나게 뻗어 마삭줄에서 예쁜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 순간이 이 아이가 최상의 모습을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기 위해 무자비하게 가위질을 했구나'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이 아이를 구박덩이로 만든 나와의 인연이 깊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해마다 가위질을 해야 합니다. 올해도 고운 향기를 품은 꽃망울이 가득합니다. 작년엔 참 많이 잘랐지요. 그래도 그 추웠던 겨울을 잘 이겨내고 건강히 자라고 있어 대견합니다.
 
마삭줄은 아침 햇살과 보호되는 공간을 좋아합니다. 다른 곳에서도 잘 자라지만 꽃은 피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차고 옆 담장에서만 해마다 5월이면 예쁜 꽃을 피우고 고운 향기를 줍니다.

마삭줄과의 인연은 지금의 정원이 태어날 무렵 정원에 심을 꽃들을 찾으러 이곳저곳 다니다 하남의 꽃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가을 단풍이 예쁘니 한번 키워 보라'고 선물해 줬습니다. 저 역시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덕분에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화원에도 많이 나눠 주었지요. 앞으로도 키우고 싶은 이들에게는 언제든지 나눠 줄 것입니다.
 
다른 식물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입니다. 가끔씩 물드는 붉은빛, 노란빛 단풍과 짙은 녹색 잎과 새롭게 피어난 연둣빛 잎들 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매력적인 모습입니다. 이 예쁜 모습은 조금씩 천천히 자라면 더욱 귀해 보이겠지만 이 아이의 특성으로는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면 이런 예쁜 모습은 보기 어려우니 모두 다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용기에 심어 일 년 내내 푸른 잎을 볼 수 있고 가끔은 검붉은 잎이 섞이기도 해 실내 식물로 운치가 있습니다. 야생화 분경을 만들 때 바탕 소재로 많이 쓰이며 따듯한 지역에서는 잎과 꽃이 아름다워 정원석이나 고목에 올려 활용하기도 합니다. 정원이나 공원에서는 생울타리로 감거나 지면을 피복하는 용도로 흔히 씁니다. 줄기, 잎은 약용으로 쓰기도 합니다.

참고문헌  한국의 화훼원예 식물, The American Horticulttural Society-encyclopedia fo Garden Plants, 조경 식물도감(한국도로공사 편)

글. 사진 이명희
숙명여자대학교 가정 대학 졸업 후 평소 관심 분야인 정원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 입학. 졸업논문'서민주택 정원 활성화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 취득. 평생 꽃을 가까이하여 얻은 경험과 대학원에서 연구한 이론적 체계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담장 허물기 등)에 참여하고 있으며, 버려진 공간 속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심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노력 연구하고 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식물 이야기, 구박받은 아이, 마삭줄이 품은 아름다운 꽃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