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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앞 용기 정원에 곱고 고운 플루메리아 꽃이 피었습니다. 덩치가 아주 큰 플루메리아가 8월 초순 넓고 커다란 무성한 녹색 잎들 사이에서 불그스름한 작은 꽃대 하나 올라와 고운 향기 보듬은 꽃망울들을 옹기종기 달고서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피웠습니다. 무더운 한 여름날에 우아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참으로 반가운 모습이었습니다.

작년 여름 우리 집에 온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꽃을 피우더니 올해는 더 많은 가지에서 소담스럽게 꽃을 피웠습니다. 겨울 동안 참 독특한 모습으로 추위를 피해 서재에서 물 한 방울 먹지 않고 지내다 찬 기운 모두 물러난 봄이 되면 뜰로 나와 그간 먹지 못했던 물을 가득 먹고서 그 독특한 가지가지에 연둣빛 작은 잎을 조금씩 내밉니다. 그러다 따듯한 바람이 불면 그 귀여운 연두 잎들이 쑥쑥 자라나 한더위에 고운 향기 품은 기품 있는 꽃을 피웁니다. 꽃은 암술과 수술이 보이지 않아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입니다.
 
이 아이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 눈에 선합니다.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독특한 수형과 통통한 줄기들 끝에서 우아하게 핀 몇 송이의 꽃에서 순수함과 성스러움을 느꼈습니다. 더불어 은은한 향기까지, 나를 완전히 매료시켜버렸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주인에게 이 아이에 관해 물어보았지만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당장 정원 식구로 데려오기에는 나에게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어서 그냥 왔지만 눈을 감아도 그 아이만 보여'그냥 데리고 올까?'많이 망설이던 중, 우연히 하남에 있는 화원 가게에서 또 만났습니다. 다행히 가게 주인은 마땅히 둘 곳이 없어 싼 가격에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조금 무리가 되었지만 기쁘고 흥분된 마음으로 기꺼이 데려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서 왔는지도 전혀 모르는 채 그냥 데려왔습니다. 통통한 다육질의 줄기가 사막에서 자라는 것들과 비슷해 일단 종일 햇볕이 있는 서재 앞에 두기로 했습니다. 쉽게 다루기가 두려워 한참 동안 구입한 상태 그대로 뒀다가 나름 이 꽃의 특성을 파악한 후에야 어울리는 용기를 찾아 심었습니다. 덩치가 크고 이국적인 모습의 이 아이의 독특한 모습이 더 돋보이게끔 주변 친구들보다 좀 더 높은 탁자에 올려 색다른 분위기를 냈습니다.
 
그 해 11월 아버지 제사 모시러 친정 간 날 저녁, 갑작스레 찾아온 영하의 날씨에 플루메리아는 밖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다음날 남편 혼자서 이 덩치가 큰 녀석을 방으로 옮기지 못해 동네 청년에게 부탁해 함께 옮겼지만 이미 이 아이는 많이 상해 거의 생명을 다할 지경이었습니다. 나무줄기가 물렁물렁 썩어 겨우 아래 둥치와 가지 두어 개가 조금 살아 있는 듯했지요. 겨우내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고맙게도 겨우 살아났습니다. 첫눈에 반해버린 이 아이. 고운 꽃피우기 위해 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애도 태웠습니다. 잎도 없는 그 독특한 줄기에서 피었던 우아한 향기 담은 고운 꽃에 반했던 그때 그 모습을 보기 위해 해마다 많은 정성 기울였습니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열심히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영하로 내려가기 직전 남편과 아들에게 부탁해 두 사람이 이 덩치 큰 녀석을 끙끙거리면서 추위를 피해 방 안으로 피접 시리도록 했지요. 따듯한 봄이 오면 고운 햇살 조금이라도 더 듬뿍 받고 고운 꽃피워 달라고 밖으로 데려 나왔습니다. 그러다 혹시나 꽃샘추위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남편 아들 눈치 보며 또다시 방으로 데려오기도 하면서 봄부터 가을까지 큰 용기에 물을 가득 주고 틈틈이 거름도 주면서 해마다 고운 꽃피워주기 기다렸습니다.

무성한 잎만 쳐다보면서 한 해 두 해 지났고 꽃은 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들과 남편 고생시키는 이 녀석 참 야속하기도 했고 우리 집 환경에선 꽃을 피우기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참 신기하게도 야속하게 생각하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작년 8월, 무성한 잎들 사이에서 조그만 꽃대가 올라오더니 조그만 꽃망울들이 보였습니다. 꽃망울은 참 오랫동안 애를 태우며 꼼짝 않고 가만히 있더니 작년 9월에 드디어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피웠고 10월까지 계속됐습니다.
 
집에 온 지 4년 만이었습니다. 플루메리아와 나는 라오스 여행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이 아이를 먼 여행지에서 만났을 때의 그 반가움은 가슴이 벅찰 정도였습니다. 산들바람에 스쳐 지나가는 신선한 고운 향기가 바로 내가 소중히 데려와 예쁘게 잘 키우고 싶어 안달했던 그 향기였습니다. 인구의 95%가 불교를 믿는 라오스 사람들은 신년에 절에 갈 때 부처님 앞에 바치는 신성한 꽃으로 라오스의 국화國花입니다. 나쁜 귀신을 물리쳐준다고 해 집 안이 아닌 담장이나 대문 밖에 심는다고 합니다.
 
태국에서 또 만났습니다. 다양한 색, 여러 모습으로 꽃을 피워 호텔 정원과 거리 곳곳의 가로수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발리에서도 만났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향긋한 플루메리아 꽃으로 만든 목걸이로 우리들을 반겼습니다. 멋스러움이 가득한 고목 플루메리아는 사당, 화려한 집, 소박한 집, 큰 거리, 골목길 등 거의 모든 곳에 있었습니다. 독특한 모습의 플루메리아가 발리의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전통가옥을 더욱 아름답게 해 주었고 머무는 동안 틈틈이 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에 환상의 낙원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발리 사람들은 플루메리아 꽃을 캄보자 꽃이라고 부르며 신성한 것으로 여겨 야자수 잎으로 만든 접시에 캄보자 꽃과 사탕, 과일 등의 음식을 담아 하루에 세 번, 신을 위한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학명이 플루메리아 오브투사(Plumeria Obtusa L)인 플루메리아는 영명으론 Temple Tree라고 합니다. 러브하와이라고도 부르며 하와이 처녀들이 이 꽃을 목걸이로 만들어 성년의 날 사랑하는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목에 걸어 준다고 합니다. 꽃향기가 좋아 향수 만드는 원료로도 씁니다. 다액질인 줄기와 매우 통통한 가지를 가진 낙엽성 또는 반 상록성의 열대 또는 아열대 아메리카 지방의 관목 또는 소교목으로 7~8종류가 있습니다. 향기가 강하고 더운 지역에서는 연중 꽃이 피며 꽃 색은 연한 분홍빛, 붉은빛, 미색, 하얀색 등이 있으며 생육 최저기온은 10이고 그 이하일 때는 온실 또는 실내에서 키워야 합니다.

가장 잘 자라는 환경은 온화한 온대성 기후와 햇볕이 충분히 있는 따듯한 온실인데 온실에서는 일 년 내내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온화한 지역에서는 파란 잔디에 심어 Specimen Plants(독특한 모습으로 관심을 끄는, 주목받는 식물)로 활용하거나 독자적으로 심어 시각의 포인트로 활용합니다. 적당한 거름과 배수가 잘 되는 흙과 충분한 햇볕, 햇볕이 충분한 간접광에서 키우고 자라는 동안에는 적당하게 물을 주며 매달 균형 잡힌 거름을 줘야 합니다. 겨울철에는 휴면기에 들어가므로 건조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내 경험으로는 열대지방에서 살아가는 추위에 약한 아이이기에 배수가 잘 되는 흙으로 용기에 심어 추위가 끝나는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햇볕이 충분한 곳에 두고 용기 속의 흙이 건조해질 무렵 충분한 물을 제공합니다. 생육이 왕성한 5월에서 7월 중에는 적당한 거름(발효시킨 깻묵덩이)을 두어 번 줍니다. 영하로 내려가기 전에 실내로 데려오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물을 주지 않습니다. 그동안 잎들은 모두 떨어지고 참 독특한 모습으로 약 4개월 동안 물 안 먹고도 잘 견딥니다. 만약 실내 온도가 영상 18℃ 이상인 햇볕이 있는 창가에 둘 요량이라면 물을 전혀 안 주면 안 되겠지요. 저는 조금 춥고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 서재에 뒀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작년에 번식한 작은 나무를 햇볕이 있는 창가로 옮겨 혹시나 처음 만났을 때 잎이 없는 가지에서 고운 향기를 피우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희망을 가져봅니다. 번식시키는 간단한 방법은 봄에 생장을 시작할 쯤 어수선해 보이는 줄기의 마디를 떼어내는데, 물론 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도 가능하지만, 이때 우윳빛 수액이 나옵니다. 그 수액이 모두 마른 후에 거름 성분이 없는 용토에 심으면 됩니다.
 
참고로 플루메니아 줄기는 다량의 수액을 함유하고 있어 뿌리가 나올 때까지는 물을 많이 주면 썩을 수 있으므로 가능한 한 적게 주는 것이 좋습니다. 거의 물을 안 준다는 생각으로 아주 가끔 용토를 적셔줍니다. 꼭 이렇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하기에는 많은 환경적 요인이 있기에 환경을 고려해 물 공급 시기와 양을 정해야 합니다. 저 역시 똑같은 환경에서 세 줄기를 뿌리내리기를 했지만 두 줄기만 성공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잘 모르듯'식물도 생명체이므로 이것이다'라는 명확하게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참고:  Encyclopedia of garden plants

글. 사진 이명희
숙명여자대학교 가정 대학 졸업 후 평소 관심 분야인 정원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 입학. 졸업논문'서민주택 정원 활성화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 취득. 평생 꽃을 가까이하여 얻은 경험과 대학원에서 연구한 이론적 체계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담장 허물기 등)에 참여하고 있으며, 버려진 공간 속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심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노력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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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이야기, 멋스러운 수형과 고운 향기 간직한 플루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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