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침대, 텔레비전으로 달라진 생활

요즈음 같이 텔레비전을 향해 배치되는 응접세트처럼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배치는, 우리의 생활을 텔레비전 중심으로 고정시켜 버리고 만다. 응접 세트가 텔레비전을 향해 고정돼 있는 모습은 중산층 아파트의 거실 풍경을 찍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을 보면 모든 아파트 가구의 중심에 텔레비전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반대쪽에 소파가 놓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배치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모임을 갖는 것을 힘들게 할 뿐 아니라, 대화의 다양성을 제약하게 된다.

1. 집, 문화로서 과거 이해하기
-과연 전통은 존재하는가
2. 집은 문화 유기체다
3. 자연환경과 집
4. 기술 발전과 집
5. 사회환경과 집
6. 생활과 집
7. 사고변화와 집
8. 사람과 집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

침대가 높여 준 프라이버시
우리 생활에서 최근 들어 많은 변화가 생긴 부분이 침구다. 요즘 사람들은 침구로 침대를 선호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이불 개기가 싫어서’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침대를 선호하는 것은 은연중 서구의 삶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침대가 들어오게 되면서 달라지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방의 용도가 제한된다는 점이다.

한옥에서는 방의 용도가 확정돼 있지 않았다. 한옥의 방은 거실과 응접실, 식당, 침실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따라서 방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이불만 깔려 있지 않으면 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침대가 들어선 방은 개인의 사생활이 앞서는 곳이다. 침대가 있는 아이의 방은 부모들도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렇게 사생활이 중요하게 된 것은 가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전과 같이 창호지 문으로 구획된 방은 창호지의 차음(遮音) 효과만큼 사생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완전하게 닫힌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만큼 사생활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에서 들어온 집 구조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닫혀 있다.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행동을 조심한다.’고 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행동을 조심하기가 쉽지 않음을 뜻한다. 닫힌 방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히는 꼴을 당하지 않으려고 남의 방에 들어갈 때는 조심하게 된다. 폐쇄적인 방에 침대까지 들여놓으면 이곳은 더욱 사적인 영역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침대가 있는 안방은 부부만의 공간으로 인식해 어느 누구도 감히 들어갈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향해 앉은 생활
새로 갖추어지는 각종 가구는 생활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온다. 가정의 거실에는 대부분 응접세트와 텔레비전이 설치돼 있다. 소파와 탁자가 들어서고 나면 가구가 없는 거실하고 비교해서 행동이 많이 달라진다.

32평형 아파트인 필자의 집에는 응접세트라는 것이 없다. 우리 집에는 손님이 적게는 서너 명에서 많게는 열댓 명까지 자주 오는 편이라 손님 접대용으로 쓰는 ‘응접세트’가 있으면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만일 집안에 응접세트가 있다면 많은 손님을 초대할 수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대여섯 명 정도다. 그 이상의 손님이 온다면 탁자와 소파를 옮기느라 번거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구가 거실을 차지하고 나면 손님을 초대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과거처럼 집에 손님을 자주 모시지 못하는 것은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경향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왔을 때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것도 이유가 된다.

요즈음 같이 텔레비전을 향해 배치되는 응접세트처럼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배치는, 우리의 생활을 텔레비전 중심으로 고정시켜 버리고 만다. 응접 세트가 텔레비전을 향해 고정돼 있는 모습은 중산층 아파트의 거실 풍경을 찍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을 보면 모든 아파트 가구의 중심에 텔레비전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반대쪽에 소파가 놓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배치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모임을 갖는 것을 힘들게 할 뿐 아니라, 대화의 다양성을 제약하게 된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가구 배치가 획일적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은 중산층의 생활이 얼마나 단순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가정에서 여가 생활의 대부분을 오락성이 강한 텔레비전 중심으로 보내기 때문에 가구의 배치를 다르게 하거나 일부를 없앤다는 것은 어렵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서 가구의 배치를 바꾸거나 아예 응접 세트를 없애 버린다면 과거하고 전혀 다른 행위가 발생함을 알게 될 것이다.

텔레비전의 대형화, 장식장 키를 낮추다
텔레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해보자.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파트 거실에 놓인 장식장의 높이는 60센티미터 정도였다. 그 높이로 장식장을 만드는 이유는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인치 대의 텔레비전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장식장 높이를 문갑하고 비슷한 30센티미터 정도로 낮출 경우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 내려다보게 된다. 그런 자세가 그리 편하지 않으므로 장식장을 일부러 높인 것이다. 이렇게 높던 장식장이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30센티미터 정도로 낮아졌다. 이것은 텔레비전의 대형화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40인치 이상으로 커지면서 기존의 높은 장식장 위에 텔레비전을 놓으면 올려다보게 되므로 방송을 시청하는 데 불편하다. 거실의 장식장도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낮아진 것이다.

이렇게 가구의 변화에 따라 집의 내부가 바뀌는 예는 안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 안방의 바닥 마감재에도 변화가 왔다. 예전 같으면 안방만은 한실 분위기를 내려고 대부분 민속 장판 같은 한옥풍의 장판류를 깔았으나 요사이는 마루 무늬 장판으로 바뀌고 있다.

마루 무늬로 꾸민 것은 이제 안방의 성격이 달라졌음을 뜻한다. 침대가 안방으로 들어오면서 안방도 서구식으로 변하게 된다. 의자에 앉아 화장하기 편하도록 화장대가 높아지는 것처럼 안방에서 모든 활동이 입식 생활로 바뀐 것이다. 그런 변화에 맞추어 안방의 마감재도 과거하고 달리 거실과 같은 마루 무늬 장판으로 바뀌었다. 田

■ 글 최성호 <산솔 도시·건축연구소 대표>

∴ 글쓴이 최성호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서 ‘산솔도시·건축’을 운영 중입니다. 주요 건축작품으로는 이화여자대학교 유치원·박물관·인문관·약학관, 데이콤중앙연구소, 삼보컴퓨터사옥, 홍길동민속공원 마스터플랜, SK인천교환사 등이 있습니다. 02-516-9575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한옥이야기] 달라진 우리 생활, 달라진 집(4)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