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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과 사고의 변화

자연환경은 모든 문화의 출발점이다.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 어땠는가에 따라서 문화의 발전 방향이 달라진다.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는 집은 인공 환경이라는 점에서 행동뿐만 아니라 미감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뒷간에 앉아 대소변을 보는 것도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 글 싣는 순서
1. 집, 문화로서 과거 이해하기
-과연 전통은 존재하는가
2. 집은 문화 유기체다
3. 자연환경과 집
4. 기술 발전과 집
5. 사회환경과 집
6. 생활과 집
7. 사고변화와 집
8. 사람과 집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

자연환경은 모든 문화의 출발점이다.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 어땠는가에 따라서 문화의 발전 방향이 달라진다.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는 집은 인공 환경이라는 점에서 행동뿐만 아니라 미감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뒷간에 앉아 대소변을 보는 것도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새마을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골은 초가집의 부드러운 곡선과 자연 풍광이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지금의 슬레이트 지붕과 콘크리트 평지붕으로 이뤄진 모습하고 사뭇 달랐다. 70년대 이전의 시골에서 생활했던 분들은 고향 풍경을 부드러운 초가집 지붕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굴뚝의 연기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쌀의 품종이 달랐다면 초가집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나 느낌이, 우리가 지금 인식하는 것하고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의 볏짚은 지금하고 다르기 때문이다. 요사이 재배하는 품종은 볏짚이 짧아 초가를 얹는 데 사용할 수 없다.

용인 민속촌에서도 초가를 얹을 때 사용할 벼를 따로 심고 있으며, 서천의 이하복(李夏馥)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97호)에서도 초가를 잇는 데 쓸 벼를 별도로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벼의 품종이 달랐다면 초가집도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초가의 곡선은 재래 품종의 볏짚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벼의 품종이 달랐다면 초가집은 지금과 같은 부드러운 곡선이 나오지 않고 직선을 이루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일 보는 산하는 우리의 미의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나라 산하는 강원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고 있다. 기암절벽을 보려면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야 할 정도로 산세가 완만하다. 사람들은 자라면서 만난 자연환경을 자신의 미의식 기준으로 삼는다.

요즘에는 실내 조경을 할 때 대나무를 많이 심고 있다. 대나무는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난대성 식물이다. 이렇게 대나무를 많이 심는 것은 음지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조경에 대해서 일부 사람들이 왜색(倭色)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렸을 때 대나무를 보지 못했고 대나무라면 일본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남쪽에서 대나무를 보고 자란 사람이라면 왜색이라는 비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주변 자연환경에 따라 사람의 미의식이 달라진다.

한·중·일 삼국의 뒷간 비교
개방형 화장실은 서양에서도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같은 책에서 소개한 일본인의 체험담에 따르면 1957년도 미국 대학의 뒷간도 칸막이 없이 좌우가 트인 형태였다고 한다. 또한 고대 로마 시대의 화장실도 성별의 구분은 있었으나 좌우의 칸막이가 없었다. 카투사로 근무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옛날의 미군 화장실에 좌우는 칸막이가 있으나 앞에는 문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칸막이가 없는 화장실의 형태는 동서고금을 통해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과 우리의 뒷간은 모양이 다르다. 일본의 경우는 폐쇄적인 구조를 했고,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의 중간 형태였다고 한다. 또한 중국은 좌식 변기가 많이 발전했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았다. 변기의 형태가 그렇게 다른 것은 중국은 입식 생활을 했고 우리나라와 일본은 좌식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용변을 보는 방법에서도 차이가 있다. 일본은 벽을 보고 앉아 용변을 보고 중국과 한국은 문 쪽으로 앉아서 본다. 일본인이 용변을 볼 때 돌아앉는 것은 남이 실수로 문을 열었을 때 성기보다는 엉덩이가 보이는 것이 덜 부끄럽다는 일본인 특유의 관념 때문이다. 그 때문에 변기 앞에 가리개를 발명했다. 또한 여성들이 대소변을 보는 소리에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오줌을 눌 때는 하인이 뒷간 앞에서 항아리에 물을 푸는 소리를 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녀유별’의 유교 덕목에 따라 남자 변소는 사랑채에, 여자 변소는 안채에 별도로 두었다. 일본에서는 안과 밖에 변소를 따로 두었지만, 바깥 변소는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안의 변소는 밤에 사용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같은 이용 방법의 차이를 두고 김광언은 한국은 명분을 중요시했고, 일본은 실리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남녀유별의 화장실
《동아시아의 뒷간》이라는 책을 통해 본 뒷간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기능성을 원칙으로 한다. 일본 역사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에서 변소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대소변이 농사에 유용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돼지우리에 이웃하여 화장실을 만드는 것도 변소의 기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변소도 생각에 따라 구조가 달라진다. 우선 변소에 칸막이가 있고 없고 하는 문제는 용변을 보는 것에 대한 생각하고 관계가 깊다. 대소변을 볼 때 성기가 노출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든지 또는 대소변을 보는 것이 불결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칸막이를 설치하여 가리려고 할 것이다.

반대로 인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적인 생리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칸막이가 없어도 거리끼지 않는다. 또한 일본 다이묘(大名)의 화장실은 매우 넓다. 그 이유는 갑작스러운 자객의 습격 때 칼을 사용하기 위함이다. 결국 생각의 차이가 화장실 구조를 다르게 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한국은 남녀유별의 사고로, 일본은 실용적인 이유로 화장실을 구분했다. 같은 남녀유별이라도 일본은 여자를 천시했기에 귀족의 집에서는 화장실을 구분해서 사용했다. 이처럼 남녀유별을 어떻게 생각하는 가에 따라 화장실의 배치가 달라진다.

또한 일본의 소변용 화장실 가운데는 서로가 마주보고 누도록 한 곳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구조의 화장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이유는 성기 노출을 금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찮게 생각하는 변소도 생각에 따라 구조와 배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田

■ 글 최성호<산솔도시건축 대표>

※ 글쓴이 최성호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서 ‘산솔도시·건축’을 운영 중입니다. 주요 건축작품으로는 이화여자대학교 유치원·박물관·인문관·약학관, 데이콤중앙연구소, 삼보컴퓨터사옥, 홍길동민속공원 마스터플랜, SK인천교환사 등이 있습니다. 산솔도시건축 02-516-9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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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야기] 생각이 변하면 생활이 달라진다(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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