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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체험의 신개념 한옥 펜션, 청송 ‘송소고택(松韶古宅)’

경북 안동지역의 잘 보존된 오랜 유교문화와 전통은 귀중한 관광자원으로 가치가 높다. 1999년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함으로써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전통문화지역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국가에서 2010년까지 ‘유교문화권개발사업’의 중심지역으로 1조7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집중 투자할 계획에 있어 유교문화의 고도(古都)로 새로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종택(宗宅)과 고택(古宅)의 개방이라는 과감한 문화 프로젝트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서 펜션사업의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펜션이 소개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그 사이에 펜션은 엄청난 붐을 이뤘고, 신규 투자사업의 화두로 회자되기도 했다. 그런데 펜션하면 외형적으로 서구식 목조건축물만 연상한다.

꼭 그런 모양만 펜션일까? 물론 아니다. 외형과 내용에서 어느 한 쪽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펜션의 발전을 막는 위험한 발상일 것이다.

안동지역의 고택이나 종택은 펜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을 상대로 독특한 전통문화 체험을 테마로 하는 새로운 펜션 영역을 활짝 열었기 때문이다. 관광산업으로 펜션시장의 의욕적인 발전과 확대가 가능해졌다.

아흔아홉 칸, 일곱 채 전통가옥
필자가 둘러본 곳은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의 송소고택(松韶古宅)이다. ‘청송 가는 길’에 위치한 이 고택은 경주 최 부잣집과 함께 경북지방의 대표적 명문 토호(土豪)인 심 부잣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영조 때, 만석(萬石)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 손인 송소 심호택이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동으로 옮겨와 지었다고 전한다.

뒷산의 울창한 참나무와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넓은 경내에는 아흔아홉 칸에 이르는 일곱 채의 전통가옥이 잘 보존돼 있다.

홍살을 설치한 솟을대문으로 들어서면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으로 크고 화려한 큰 사랑채다. 우측에 작은 사랑이 있고, 그 뒤의 안채는 ‘ㅁ’자 형으로 대청마루에는 세살문 위에 빗살무늬 교창을 달았다.

독립된 마당이며 잘 구분된 공간에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별채는 두 채인데, 대문채와 별당으로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이다.

이 고택은 유교문화권개발사업에 힘입어, 2002년 전통가옥보수기금을 받아 오랫동안 빈집을 수리해 옛 모습을 거의 복원했다. 하지만 현실 문제에 부닥쳤다.

집이란 사람이 살아야 훈기가 돌고 생명이 느껴지는데, 종손 심재오 씨는 사업 관계로 내려올 형편이 안 됐다. 게다가 복원 후에도 계속해서 유지 보존을 해야 하는데, 그에 필요한 노력과 비용 문제가 대두됐다.

아마도 이 부분은 안동뿐만 아니라 전국의 고택들이 당면한 숙제라고 본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바로 고택의 개방, 즉 일반인을 상대로 한 전통가옥 체험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송소고택을 전국 명소로 올려놓은 사람이 고택의 관리와 경영을 맡은 박경진 사장이다. 그는 안동 사람은 아니지만 친구인 종손 심재오 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전통문화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고택 수리가 마무리될 무렵인 2003년 2월부터 14개의 방을 개방하여 방문객을 맞기 시작했다.

이 고택은 크게 행랑채와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안채 그리고 별채로 구성돼 있다. 사랑채 앞에는 작은 정원과 우물이 있고, 가운데 헛담이 경계를 짓고 있다.

경내는 꽃담으로 가지런히 구분돼 아늑하고 편안하다. 각 방은 한 칸부터 두 칸, 세 칸 그리고 네 칸으로 돼 있는데, 펜션처럼 주방이나 침실, 화장실 같은 현대 설비는 없다. 화장실과 세면장은 별도의 공동시설로 마련돼 있다.

현대식 펜션 개념으로 보자면 아주 불편한 곳일 수도 있다. 더구나 그 흔한 텔레비전도 인터넷 컴퓨터도 없다. 한 마디로 아주 적막한 곳이다.

그러나 방문객의 반응은 의외로 좋다. 왜냐하면 조상의 생활문화를 있는 그대로 체험한다는 점에서 불편할 것이 없다는 이해가 마음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문을 열면 넓은 마당과 아름드리 감나무, 뒷산 참나무 숲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과 청아

한 숲 냄새가 맑은 가을 햇살과 함께 찾아온다.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전통가옥의 운치와 조용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200년이 훨씬 넘은 고택의 마루와 창살, 기둥, 기와지붕 심지어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는 순한 삽살개들까지…….

일찍이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은근히 가슴에 와 닿는 정취를 안겨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박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펜션하면 테마를 주장하는데, 이곳은 ‘무(無)테마’가 그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고택이 바로 테마입니다. 그래서 방문객들에게 여기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빈둥빈둥 보내라고
권합니다.”

실제로 이곳에선 걸음걸이도 느려지고 말수도 줄어든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멋과 즐거움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둘러보기만 해도 삶의 맛이 있고 평안함이 있는 곳.

조상들이 만들어 낸 삶의 지혜이고, 고택만이 지닌 최고의 가치일 것이다. 그래서 하룻밤을 묵은 이들은 며칠이고 더 숙박하기를 원한다. 실제로 포항에서 온 한 가족은 남편이 이곳이 맘에 들어 부인을 먼저 보내고 혼자서 며칠을 더 머문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곳도 알려지지 않으면, 고택의 정취를 즐기려는 고객을 만나기 어렵다. 다행히 요즘은 인터넷 홍보기술이 크게 발전해 송소고택 홈페이지(songso.co.kr)를 통해 숙박 예약이 잘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박 사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30여 명의 독일 청소년들로 구성된 칼오르츠 앙상블 공연, 50인조 안동밴드심포닉 공연, 일본 동경창작무용단 공연 등이 모두 송소고택 안뜰에서 행해졌다.

청송 가는 길, 그 깊은 산골에서 이러한 국제적 문화공연이 이뤄진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상상치 못한 일이다. 그러나 송소고택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전통문화 체험을 본격적인 테마로
송소고택 방문객에겐 인근 문화유적지와 자연경관을 즐기는 기회도 주어진다.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봉정사를 비롯하여 지례예술관, 수애당, 농암종택, 퇴계 선생과 시인 이육사의 생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그리고 안동댐과 임하댐의 넓은 경관을 즐기며 주왕산과 주산지 그리고 청량산까지도 즐길 수 있다. 그야말로 관광산업을 위한 문화유적지의 보고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덕천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에선 천렵도 즐길 수 있어 시골 정취가 물씬 넘친다.

여기에 상식을 깨뜨리는 방문객의 반응이 있다. 전통문화가 깃든 고택을 인터넷과 텔레비전에 찌든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이것은 전통가옥 체험이 우리에게 무엇을 안겨주는가를 웅변한다.

그래서 박 사장은 ‘가장 비상업적인 것이 가장 상업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현재 있는 그대로의 고택이 현대 설비를 갖춘 어느 펜션보다 더 상업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몇몇 고택들을 개발해 좀더 많은 사람이 체험하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제 펜션의 한 영역으로 전통문화 체험을 본격적인 테마로 고려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田

글 김창범<월간 전원주택라이프 편집위원, ‘펜션으로 성공하기’ 저자>
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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