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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서 미래의 집을 꿈꾼다


집의 변화가 크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생활에 변화가 없었다는 반증(反證)이다. 그러나 서양의 건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우리나라의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집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갔다. 거주 형식도 단독주택에서 공동주택인 아파트로 변했다. 또한 아파트의 연료는 연탄에서 기름, 가스 그리고 지역난방 등으로 바뀌었다. 난방 방식도 도입 초기에는 방에만 패널히팅을 했지만, 현재는 아파트 전체를 패널히팅으로 난방하고 있다. 아파트의 평면도 2베이(Bay) 아파트에서 최근에는 3베이, 4베이 아파트로 신속하게 변하고 있다.


아파트 건축에서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 기간은 3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생활과 사고가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참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는 아파트의 재개발(再開發) 문제도, 급격하게 바뀐 우리네 생활하고 관련이 깊다. 건물의 내구연한보다는, 집이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집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재건축을 제재하려고 무조건 내구연한만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처럼 최근의 집은 사회의 변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내구재인 집의 특성상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는 것이 원인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몇 건축가들이 ‘건축의 가변성’에 대해 깊이 탐구했지만, 썩 좋은 성과는 얻지 못했다. 인간의 삶이 예측 불가능할 만큼 변화가 많은데 비해 건축의 가변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건축에서 가변성을 향상시키는 문제는, 집을 지을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집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까


어쨌든 사람의 생각과 욕구가 바뀌는 이상 집은 변할 수밖에 없다. 김태일 교수는 미래의 주거 변화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관점에서 보고 있다.
첫 번째는 고령화 사회에의 대응, 두 번째는 IT(Information Technology)와 공학 기술에 의한 변화, 세 번째는 고층화 추세, 네 번째는 지역 문화와 자연환경 중심으로의 변화 등이다.
이러한 관점은 인류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 인구 증가, 기술의 발전 그리고 자연환경 파괴에 대한 자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예측해 볼 때 미래의 집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변할 것이다. 첫 번째 방향은 과학의 발전과 맞물려 보다 기능적이며 진화적인 성격이 강화될 것이고, 두 번째는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과 환경 보전의 의미가 강조돼 자연친화적 성격이 높아질 것이다.
첫 번째로 기술적 측면에서의 발전은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고령 사회로의 변화는 지금보다는 다른 종류의 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인구의 급격한 증가에 대처하자면 지금보다 더 집적된 고밀도의 공동주택을 다양한 방향으로 개발해야 할 것이다. 밀집화의 방향은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일차적으로는 고층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하화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또한 노년층의 증가로 실버산업이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노인 주거 공간이 개발될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짓는 집에는 지금보다는 더욱 고도화된 IT 기능이 더해져서 홈오토메이션 기능과 전자통신 기능을 훨씬 다채롭게 사용할 것이다.


두 번째로 앞으로의 집은 자연친화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이 환경에 관심을 갖고 있다.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최근 들어서 의식주에 관련된 모든 것을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고 지속 가능하도록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결국 인류 공멸(共滅)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 우리가 공존해야 할 대상을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자연환경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대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집의 자연친화 문제를 활발히 연구하고 있으며 일부는 실험적인 형태로 구체화하고 있다. 독일의 예를 보면 생태계에 의한 자연 순환(Recycling)이 강화된 집이 개발돼, 환경친화적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제껏 우리가 생각했던 발전이 어떤 것이었는지 들여다보면 자연의 파괴를 전제로 했다. 산업혁명 이래로 눈부시게 이루어진 문명의 발전은 유한한 자원을 무제한으로 소비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가 짓는 집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와 같은 일방적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분야에서 자연환경의 보전과 지속 가능한 발전에 중점을 두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한 시도는 건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기술 발전과 자연환경 보전이라는 이 두 가지의 장점을 취해 탈바꿈하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1998년, 디지털 기술과 환경 보전을 동시에 고려한 인티져하우스(Intelligent+ Greenhouse)가 완공됐다.



자연과 공존하는 발전을 추구해야


지구는 유한한 자원이다. 지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모든 사람에게 얼마만큼 균등하게 배분하며,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은 인간의 개발 능력을 과신하고 있는 모양이다. 또한 지구가 모든 자원을 필요한 만큼 무한히 제공해 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과 같이 소비 지향의 삶 또는 투쟁하듯 독식하려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인류가 공멸에 이르는 첩경(捷徑)임을 인식하고 새로운 삶의 방법을 탐구해야 한다.


자연과 공존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한다면 우리의 집도 탈바꿈하게 된다. 지금의 집은 소비 지향의 삶에 맞추어 짓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 주거인 아파트는 편안함과 에너지 소비 지향의 건축이다. 인간의 본성인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소비 지향의 건축은 반드시 재고(再考)해야 할 부분이다. 끝없는 고층화, 쾌적함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인공 환경 등은 에너지 소비와 자연 파괴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파트의 구조체를 이루는 시멘트는 백두대간의 허리를 잘라내는 대가로 얻은 것이며, 아파트를 시원하게 하는 에어컨이나 고층을 오르내리기 위한 엘리베이터의 에너지원은 석유나 원자력 등에서 만드는 전기다. 집 안의 가구 대부분에 쓰이는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추출한 것이다. 이외에도 온수, 수세식 변기 등 우리가 사용하는 기구 어느 하나도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없다. 세면기, 변기, 개수대에서 나오는 생활하수가 하천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별도의 정화 시설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도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낄 수 없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에너지나 자연 자원을 계속해서 공급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지구의 자원은 한계가 있다.


그간 지구상에서는 많은 문명이 부침을 거듭했다. “문명의 흥기(興起)는 인간이 주위의 자연환경을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의 증대에 발맞추어 진행됐다. 또한 문명의 몰락은 주위 자연환경하고 조화와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데 실패함에 따라 진행됐다.” 라고 한다. 자연환경의 파괴와 문명 발전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 황허 유역도 이전에는 나무로 우거진 곳이었고, 그리스의 산도 과거에는 숲이 무성한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막이 된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지역도 과거에는 공중 정원을 자랑하는 숲으로 울창한 곳이었다고 한다. 또한 거대한 석상이 있는 이스터(Easter) 섬도 과거에는 숲이 우거졌으나 사람들이 숲을 파괴해 현재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자연을 무분별하게 훼손하면 종내는 화살이 되어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지금까지의 환경 훼손은 지역에 국한된 문제였지만, 이제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지구상 어디라도 사람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지구 전체의 나무를 순식간에 없애 버릴 수 있는 힘이 사람에게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은 자연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겸손’이다.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는 삶보다는 공존하려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 온 것이다. 그 같은 관점에서 우리의 삶과 앞으로의 집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생각의 중심에 자연이 있어야


사람도 자연의 일부다. 사람은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류가 환경에 따라 몸을 변화시켜 왔다는 증거가 과학에 의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추운 지방에서 살아온 사람과 더운 지방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신체 구조에는 차이가 있다. 〈도전, 지구탐험대〉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에스키모의 생활을 체험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영하 10도 정도의 추위에서 에스키모들이 웃옷을 벗고 순록의 털가죽만 덮고 자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두꺼운 털옷을 입고 털가죽을 덮고 자면서도 벌벌 떨고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더운 지방에서는 영상 18도 정도의 기온에서도 얼어 죽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이러한 예는 사람들이 주변 자연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는 가를 보여준다.


그것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의학 자료를 통해 사람이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독일의 한 의학자는 형제가 여럿이 있는 사람들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는 정도를 연구했다. 그 결과 형제가 여럿이 있는 사람들이 질병에 강하다는 결과를 밝혀냈다. 학자는 그 결과에 대해 ‘형제가 많은 사람들은 형제가 적은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오염된 환경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세균에 견디는 힘이 길러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방 접종으로 면역력을 키우는 것처럼,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세균에 노출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데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다. 위의 예들은 사람도 생명체인 까닭에 어떠한 환경에서도 적응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과 집 그리고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면 집의 구조는 점점 환경에 부조화의 방향으로 변해 갈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은 과학의 발전을 향유하는 모습을 그리며 풍요로운 주거를 꿈꾸고 있다. 늘 활기가 넘치고 풍요가 우리를 감싸는 미래만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금보다 팽창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수백 층 아니 수천 층 높이의 집을 구상하거나 지하에 만드는 집을 구상하기도 했다. 그와 같은 구상을 뒤집어 보면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다른 방법일 뿐이다.


지구는 하나다. 지구의 자원에도 한계가 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만큼 풍족하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미래의 모습은 영화 〈배트맨〉이나 〈로보캅〉 또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묘사한 것처럼 ‘가진 자의 풍요와 못 가진 자의 빈곤’으로 표현되는 극단의 삶이 될 수도 있다.


우리네 삶의 모습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려면 욕심을 버리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한 생각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때 우리의 집은 다시 자연 친화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될 것이다. 집과 자연환경 그리고 삶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가 절실한 상황이 되면, 한반도라는 자연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삶의 그릇이었던 한옥이, 우리 미래의 집에 매우 중요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한옥을 다시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역사를 공부하고 또 한옥을 공부하는 것은 단지 자신의 지식을 충족시키고 자기만족을 위한 것은 아니다. 굳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거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 우리 미래의 일부분이 된다면 한옥은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다. 앞서 여러 부분에서 강조했듯이 한옥은 자연에 순응하는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한옥은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과거의 집이 현재의 집하고 다르듯이 미래의 집도 현재의 집하고 같을 수 없다. 지금까지 강조했듯이 생활과 생각이 달라지면 집도 변한다. 생활을 담는 그릇인 집도 우리의 생각과 기술의 변화를 반영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 집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이 달라진다. 지금과 같이 자원을 대량으로 소모하는 것은 후손이 사용할 미래 가치를 현재에 앞당겨 낭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후손, 가깝게 본다면 아이들에게 쓸 자원을 많이 남겨 주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집도 같은 방향으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다. 미래 주택의 중심에는 ‘자연’이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이 사고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면 집은 지금보다는 훨씬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에너지를 덜 소비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것이다. 친환경적인 변화의 물결이 지구상에 확산될 때 인류 전체가 공존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면서도 미래를 지향하는 사회 환경이 될 것이다. 田



글 최성호<산솔도시건축 대표>

글쓴이 최성호 님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서 ‘산솔도시·건축’을 운영 중입니다. 주요 건축작품으로는 이화여자대학교 유치원·박물관·인문관·약학관, 데이콤중앙연구소, 삼보컴퓨터사옥, 홍길동민속공원 마스터플랜, SK인천교환사 등이 있습니다.


산솔도시건축 02-516-9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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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야기] 한옥에서 미래의 집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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