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흥정계곡에 우짖는 새는 그가 있어 행복하다

새집 짓는 목수 이대우




사람에게는 저마다 독특한 향기가 있다. 그것은 눈으로, 귀로, 직감으로 알 수 있다. 강원도 평창 흥정계곡에서 책 읽고 음악 듣고 산보를 즐기며 사는 이대우(62세) 씨에게서는 비 온 뒤 숲에서 피어오르는 그윽한 나무 냄새가 난다. 새 연필을 깎을 때, 돌돌 말린 대팻밥을 갖고 놀 때 코끝으로 스며들던 바로 그 향긋함이다. 숲과 나무를 너무 좋아해서 결국엔 그것을 닮아버린 사람. 강원도의 깊은 계곡에서 추위와 비바람에 단련된 나뭇가지를 구해 산새들의 집을 만들어 주는 그는 나무 향이 깊게 밴 목수의 손을 지니고 있다.



강원도의 하늘은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낮게 드리운 먹장구름은 금세 툭하고 터져 봄의 끝자락에 붙어 있는 마지막 물기를 모두 쏟아 부을 것만 같다. “이웃마을서 막걸리 한 잔 하고 있을 테니 기자 양반들은 천천히 오슈.” 비로 인해 당일 촬영이 무산될까 노심초사하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느긋하고 한가롭기만 하다.



새의 둥지를 품은 나무 집


강원도 평창군 봉평읍 흥정리 허브나라 농원 안에 위치한 그의 집. 농원 식구들 사이에 ‘이대우’라는 이름보다 ‘새집 짓는 목수’로 더 잘 알려진 그의 산골 집은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단박에 알아볼 정도로 그 모양새가 아주 목수답다. 세월의 때가 묻은 고색창연한 목조주택 덱 난간 위에 가지런히 놓인 각양각색의 새집들. 포로롱- 포로롱.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조막만한 산새들만이 출타한 주인을 대신해 반가이 객을 맞는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기분 좋게 불콰해진 얼굴의 이대우 씨가 부인 서경옥(59세) 씨와 함께 나타났다.




“늦어서 어쩌나. 막걸리 잔치가 벌어졌는데 그냥 올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기자들을 집 안까지 들이는 건 오늘이 처음이거든. 취재 왔다 생각지 말고 놀러왔다 생각하고 편히 쉬었다 가요.”



집 안으로 들어서자 코끝을 에워싸는 싱그러운 나무 냄새. 어둠에 눈이 익어 어렴풋이 실내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짧은 탄성이 새어나온다. 바닥과 선반 그리고 식탁 위, 시선 닿는 곳마다 빼곡히 진열돼 있는 새집들. 새의 둥지를 품고 있는 부부의 나무집은 흡사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새집처럼 느껴진다.



“이게 다 작품이거든. 한 개라도 같은 모양이 없어요. 이것은 성당, 저것은 크리스마스트리, 그 옆에 건 원두막…. -뒤란을 가리키며- 저기 새소리 들리죠. 내가 만든 새집인데 곤줄박이 가족이 살거든. 며칠 전 새끼를 부화했지. 그새 우리 집 식구가 또 하나 늘었지 뭐야. 얼마나 신기하고 예쁜지 몰라.”





여리고 작은 것들의 안식처



부부가 이곳 허브나라 농원 안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건 8년 전부터다. 전국 방방곡곡 안 다녀본 곳 없을 정도로 여행을 즐겼던 부부는 산행 차 들렀던 봉평의 수려한 풍광에 매료돼 당시 개장 3년째인 허브나라 농원 안에 29평짜리 목조주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경기고와 서울법대 등 엘리트 코스를 밟고 민간통신사 기자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 등을 거치며 30년 세월을 숨 가쁘게 달려왔던 이대우 씨. 하지만 그에게도 집안의 기대에 떠밀려 묻어 두고 살 수밖에 없었던 예인(藝人)의 끼가 있었으니 바로 화가의 꿈이었다.



“중·고교 때 그림을 곧잘 그렸지. 그 길로 가고 싶었는데 법관이신 아버지가 넌 법대 가라 하시더군. 꼼짝 못했지. 늘 그림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살았는데 여기 내려와서야 그 꿈을 이뤘네. -새집 설계 노트를 보여주며 - 이게 내 창작집이거든. 목공일 하는데 그림 그리는 재주가 한몫 했지.”



처음부터 새집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다. 산골짝서 소일거리를 찾다 연장을 만지게 됐고, 뚝딱뚝딱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지다 보니 살림살이도 곧잘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주변 숲에서 쉼 없이 날아오르며 우짖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숲에서는 어린 새들이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일이 많아. 남들은 자연의 법칙이라 하겠지만 나 보기에는 참 안됐거든. 약자는 보호해야지. 그래서 만들기 시작한 게 새집이야. 새의 배설물에 섞인 소화 안 된 씨앗은 훗날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나니 숲을 살찌우는 데 새만큼 이로운 동물도 없다싶어.”


일주일에 닷새, 하루 7∼8시간씩 꼬박 매달려 만들어 왔다는 새집들. 그 개수만도 만만치 않아 숲에 매달고 이웃에 나눠주고도 남아서 지난해 이맘때 한국자생식물원에서 전시회도 가졌다. 올해는 인근의 한 폐교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꼬맹이들에게 잠깐 선보일 요량이었는데 반응이 꽤 좋아 얼마간 거기에 모셔두기도 했단다.



새가 사는 집의 근본


겉보기에 앙증맞고 귀엽게만 보이는 새집이지만 완성하기까지 그가 들이는 노력과 정성은 실로 대단하다. 부부는 짬이 날 때마다 강원도의 깊은 계곡을 훑고 다니며 수년 동안 추위와 비바람에 단련이 된 나뭇가지들을 줍는다. 새가 기대고 살 둥지이기에 모든 기후 조건에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재료여야 했다. 장방형의 새집 골격을 짜는 데도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임학을 전공한 동생에게 도움을 받는 한편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모든 이치를 스스로 터득했다. 그는 목공일이 숙련된 요즘도 1층 작업실에서 일하는 동안은 새집 만드는 일에 온 정신을 쏟는다. 그의 몰두가 얼마나 심한지 이웃이 오가며 안부를 물어도 들은 체 만 체 한다고 해서 지어진 그의 별명이 일명 ‘퉁명스런 목수’다.


그가 만드는 새집은 살림집과 먹이집 두 종류다. 사람들은 보통 새들이 일년 열두 달 새집에 머문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알을 낳고 부화시켜 새끼가 성장할 때까지 2개월 정도 의탁하는 게 다란다. 직경 3센티미터의 구멍이 난 살림집이 그 용도다. 이것과는 별도로 2면 이상 트인 것은 먹이집이다. 그는 겨울철이면 인근 정육점서 쇠기름을 얻어다가 새벽부터 숲을 헤집고 다니며 먹이집에 쇠기름을 놓아둔다. 아내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데 행복함을 느끼곤 한단다.


“서양 사람들은 집 지을 때 새집도 같이 달거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아하는 동물 1위로 새를 꼽으면서 정작 새들의 삶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어. 나무 심고 덤불 만들고 새 먹이 챙겨주면 새들은 자연스레 날아오는 법이거든. 새가 날아오지 않는 땅에는 결국 사람도 살 수 없다는 걸 왜 모르나 몰라.”



길손들의 사랑방


새가 날아드는 집에는 사람도 깃드는 법이다. 부부의 나무 집은 오래 전부터 흥정계곡을 찾은 길손들의 사랑방 구실을 해왔다. 흥정계곡이 지금처럼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지 않았을 때 이곳을 찾아왔다 마땅한 숙소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여행객들은 부부의 손에 이끌려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의탁하곤 했다. 그 때 만나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을 회상하던 부부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로도 배움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고 말한다.


부부의 소망은 크지 않다. 음악 듣고 책 읽고 산보하고 새집 만드는 게 삶의 낙인 서로의 취미를 살려 앞으로도 자연의 속살에 기대 조용하고 평안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게 그들의 바람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흥정계곡의 청정자연이 오래도록 잘 보존되어야 하지만 근래 들어선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우리가 들어와 살 때만 해도 이곳은 청정지역이자 오지였지. 한데 유명세를 타면서 이곳도 많이 변했어. 사람 피해서 살러 왔는데 사람에 치여서 살고 있는 형국이거든. 솔직히 더 골짝으로 가고 싶은 맘도 굴뚝같지만 이제 우리나라에 진짜 오지라고 할 만한 땅이 있나 싶어. 씁쓸할 따름이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 속도를 늦추고자 애쓰는 부부의 이야기는 어둠이 사위를 둘러쌀 때까지 오래도록 계속됐다. ‘봉평에 들를 일 있으면 잊지 말고 꼭 찾아와 술 한 잔 하고 가라’는 부부를 뒤로하고 서울로 향하는 길, 여름을 재촉하는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인생의 어느 순간이 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크고 작은 주름살로 혹은 지워지지 않는 생채기로 고스란히 얼굴에 남기 마련이다. 새집을 짓고 사는 목수 부부의 얼굴. 누군가의 가슴속에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들은 분명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사람일게다. 田




새집관련문의 (033-336-5897, 011-9140-2090)

송희정 기자 / 사진 윤홍로 기자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새집 짓는 목수 이대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