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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감나무를 가꾸며 시골에서 살아가는 꿈을 꾼다. 언젠가 시골에 집을 마련하면 가장 먼저 감나무를 심을 것이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봄이면 감나무 뿌리쯤에 둥글게 골을 파고 퇴비를 넉넉히 넣어주어 정성으로 가꿀 것이다. 가을날 주렁주렁 열린 알 굵은 감을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으시던 아버지처럼 나도 그렇게 감나무 아래 서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보람 있고 아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음에.”―장문자 수필, 《산 너머에 내가 있네》 중에서




■건축정보


·위 치 : 경북 청도군 매전면 예전1리

·부 지 면 적 : 480평

·대 지 면 적 : 270평

·건 축 면 적 : 12.5평

·건 축 형 태 : 단층 전통 목구조 황토집

·평 면 구 조 : 현대식 일(一)자형

·실 내 구 조 : 구들방 1, 거실 겸 서재, 주방, 욕실, 부엌, 현관

·벽 체 구 조 : 황토 이중 심벽치기

·내·외벽마감 : 황토 맞벽 후 황토미장

·바 닥 재 : 황토, 운모, 백모래 혼합 황토

·창 호 재 : 우드 컬러 하이 새시, 내부 목문(세살문)

·난 방 형 태 : 전통 구들 및 기름보일러

·식 수 공 급 : 지하수

·정 화 조 : 5인용 오수정화조(혐기여상폭기식)

·시 공 기 간 : 2005년 1월∼2005년 2월(2개월)

·건 축 비 : 평당 300만 원

※별 채 : 목구조 전통 흙집(5평, 평당 250만 원)

설계·기술지도 : 한국전통초가연구소
052-263-3007, 011-556-2007
www.koreachoga.co.kr




여류 수필가 장문자(54세) 씨가 금년 2월 경북 청도군 매전면 예전1리에 12.5평 전통 목구조 황토집을 지었다. 세상사 온갖 시름일랑 훌훌 털어 낸 듯이 산중턱 감나무 단지 안에 푹 파묻힌 수수하고 아담한 집이다. 발 아래로는 운문호에서 흘러내려 밀양강으로 합류하는, 일명 비단내〔錦川〕라 불리는 동창천(東倉川)이 활처럼 감돈다.


한 차례 나뭇잎을 정신 없이 두드리던 빗줄기가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비안개 사이로 강과 산과 들이 질펀하게 드러난다. 이를 일컬어 조화신공(造化神功)이라고 하는 걸까. 집 앞에다 시시각각 천의 모습으로 변하는 한 폭의 진경산수(眞景山水畵)를 내건 듯하다.


이곳에는 여류 수필가 장문자 씨의 삶의 향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청도군 각남면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이무희(56세) 씨와 결혼하여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딸 둘을 낳고 30여 년을 살았다. 무역업을 하는 이무희 씨는 외국에 나가 있고, 큰딸은 음악학원을 경영하고, 둘째딸은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있다.


수필에서 ‘아버지처럼 나도 그렇게 감나무 아래 서 있을 것이다’라고 했던 그가 마침내 금년 2월 ‘시골 타령’에 마침표를 찍었다.


“부산의 아파트 단지에서 살 때는, 키 재기를 하듯이 치솟기만 하는 건물들 틈바구니에서 하늘 한 점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지요. 행동만 자유로웠지 마음을 옥죄는 것이, 감옥이나 진배없었지요. 두 딸들에게 ‘엄마는 시골 가서 살 거야’라고 말한 게 햇수로 20여 년이지요. 이제 이곳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보니 속이 다 후련하지요.”


현대수필로 등단한 장문자 씨는 두 딸이 제 앞가림을 하면서는 늦깍이로 한국방송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부산여성수필문학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올해 10년 동안 쓰고 다듬어 온 글들을 모아 수필집 《산 너머에 내가 있네》를 냈다. 그는 일주일에 한두 차례는 이곳 해방구를 벗어나기도 한다. ‘엄마, 이제 시골 타령도 끝이네’라고 말하는, 두 딸에게 찬거리를 장만해 주려고 부산을 오가는 것이다. 부산 아파트에서 30년 넘게 살았는데, 지금도 베란다에 서서 시내를 바라보면 낯설게만 느껴진단다.



글 농사, 밭농사 지을 터를 찾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는 요즈음 고향마을도 예외는 아니다. 마을이 변하고 들판이 변하고 길이 변한다. 읍내로 이어진 도로에는 또 하나의 고가도로가 생겨나고 길이 확장되어 가끔 고향을 찾을 때면 어리둥절해진다.”―《산 너머에 내가 있네》 중에서



장문자 씨는 강줄기가 에도는 청도군 매전면 예전리 산중턱에다 집을 짓기까지 발품을 적잖게 팔았다. 당초 지리산이나 양산 일대에다 집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리산은 두 딸이 머무는 부산 집과 너무 멀고,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양산은 땅값이 너무 비싸 뜻을 접어야 했다.


이 땅은 고향 친구에게 부탁하여 2004년 5월에 장만했다. 무엇보다 발전이 더딘 탓에 시골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데다, 확 트인 전망이며 강이 맘에 들었다고. 부지는 대지 270평과 밭 210평 해서 모두 480평으로, 평당 대지는 20만 원, 밭은 12만 원에 샀다.


이 마을은 아홉 가구가 비탈길을 사이에 두고 드문드문 있는 ‘안마’다. 동창천하고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들마’에는 20여 가구가 모여 산다. 50년 전만 해도 들마보다 안마에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았으나, 안마는 지대가 높고 경사지라 농사짓기 어려워 대부분 들마로 내려갔다. 워낙 외진 곳이라 몇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지만,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찾아드는 외지인은 경치에 반해 안마로 들어온다.
장문자 씨는 안마에 부지를 매입한 후, 주민들에게 정성을 많이 기울였다.


“주민들과 친숙해지려고 연말 모임에 참석하여 일일이 인사를 했지요. 이곳에 집을 지을 테니 잘 봐달라고요. 그 덕인지 이 마을은 앞에 강줄기가 흐르지만 ‘산수도’를 사용할 만큼 물이 귀한데 그걸 나누어주었지요. 그리고 진입로가 비탈지고 좁아 덤프차로 건축 자재를 나르지 못하자, 주민들이 경운기를 끌고 나와 도와주기까지 했지요.”



산과 강이 집을 에워싸다


“집을 짓고 있다. 산 너머에 흙집을 짓고 있다. 강이 바라보이는 산기슭에서 돌을 나르고 흙을 나르며 처음 산을 오를 때만큼이나 가슴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다. 이 기쁨을 만나기 위하여 이십 년 전부터 꿈을 꾸고 준비하고 노력하였다.”― 《산 너머에 내가 있네》 중에서



장문자 씨는 마음이 앞서 집 지을 땅도 장만하지 않은 채 시골집을 그려 왔다. 5년 전에는 시골에다 어떤 집을 지을까 고민하며 건축 강의를 듣기도 했다.


“흙, 나무, 야생초, 산짐승, 들짐승… 자연이 좋아서 전원을 그리워했지요. 그런 까닭에 시골답게 자연 친화적인 흙집을 짓고 싶었지요. 오순도순 나직이 어깨 두르던 시골집 대신에 들어선 양옥집을 보면 왠지 낯설고 슬펐으니까요.”


설계는 한국전통초가연구소의 윤원태 소장에게 의뢰했다. ‘작은 공간에서 자연과 생활하며 글을 쓰고 싶다’는 게 요구 사항의 전부였다. 윤 소장은 터를 찬찬히 살펴본 후, 단번에 그림을 그렸다. 그후 설계 변경 한 번 없이 12.5평 본채와 5평 별채가 두 달 만에 지어졌다.
장문자 씨는 마을 할머니 집의 방 하나를 얻어, 그곳에 머물면서 목수들과 함께 일했다.


“돌이 하나하나 쌓여 축대와 기단이 형체를 갖추어 가자 아이처럼 마냥 좋아했지요. 나무를 바심질(목재를 깎거나 파서 다듬는 일)해서 사개맞춤하는 게 힘들었지만 상량식 때는 가슴이 찡했고요.”


상량문은 장문자 씨가 직접 썼는데, 2000년 부산미술대전 횡초서 부문에서 입선한 바 있다. 이 주택의 실내 구조는 천장을 루바로 마감한 포치형 현관을 기준으로 정면에 욕실이, 좌측에 구들방과 아궁이를 드린 부엌이, 우측에 서재 겸 거실과 부엌이 있다.


벽체는 대나무살을 엮어 황토에다 짚을 썰어 혼합해서 심벽치기를 했다. 바닥은 두께가 40센티미터로 참숯을 평당 한 가마 넣고 마사, 소금, 마사, 황토, 엑셀파이프, 마사, 6센티미터 황토 미장 순으로 마감했다. 참숯은 지반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제거하고, 소금은 벌레가 꾀는 것을 막아 준다.


군불을 때는 세 평 구들방은 기름보일러 겸용인데, 스위치 하나로 조절한다. 장문자 씨는 군불을 때러 들락날락해야 하지만, 옛날의 정취 그 자체를 즐긴단다. 바닥에는 한지 장판을 깔았으며, 한쪽 벽면에는 끈으로 얽어 달아 매 놓은 대나무 시렁이 있다. 한 평 남짓한 물 사용 많은 욕실은 바닥을 포함하여 벽체 중인방까지 타일로 마감했다.
네 평인 서재 겸 거실에는 열대지방 나뭇잎으로 짠 멍석을 깔았다. 정자와 별채를 바라보는 곳에 전망과 채광을 겸한 창을 큼지막하게 냈다. 원목 테이블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고, 책꽂이를 겸한 벽이 부엌과 경계를 짓는다.
5평 별채는 10년 만에 수필집을 내기까지 이끌어 준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며 지었다고.


“흙벽 심벽치기를 위하여 손수 대나무살을 엮어 붙이고 흙과 돌을 날라 굴뚝을 쌓는 일을 도왔지요. 고마운 분들에게 큰 유리창을 만들어 여기 나를 에워싼 산과 강을 담아 대접할 생각으로요.”


장문자 씨는 얼마 전, 이곳에서 집들이 겸하여 수필집 《산 너머에 내가 있네》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참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씨를 뿌린다. 자연의 힘을 불러들이기 위해 정성을 기울인다. 그럴듯하게 일구어진 밭이랑에 상추·쑥갓·시금치·열무를 고루 뿌리며 작고 마른 씨앗이 정말 싹을 틔울 것인지 염려가 된다. 그래도 한 열흘 잊은 듯 지내다 찾아들면 분명 푸른 생명이 만세를 외칠 것임을 확신한다.” ―《산 너머에 내가 있네》 중에서



장문자 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집 주변을 돌보고, 사색을 즐기며 한가로이 지낸다.


“지난겨울에는 눈이 참 많이 내렸지요. 지대가 높아 차가 끊겨 불편했지요. 사람의 왕래가 없는 마을에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아 내려와서는 감나무 밑을 파헤쳤지요. 나는 그 불편함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궁리했지요. 풍경이 좋다고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니지요. 생각이 트여야 사물을 깊이 있게 제대로 바라보는데, 이곳에서 생각이 트이기를 바랄 뿐이지요.”


집 짓고 바쁘게 맞이한 금년 봄에도 울 밑 채마밭에 고추며, 오이며, 호박 등을 심어 놓았다. 채마밭에서 어느새 성큼 자랐다며 따온 오이를 건네 받아 한 입 베어 물자, 아삭아삭한 맛이며 상큼한 향이 온몸에 배는 듯하다.
사람은 자연을 동결할 수밖에 없다는 장문자 씨.


“사람은 도시의 편리함 속에 살지만, 그 밑바탕에는 자연을 동경하고 있지요. 전원을 그리워하면서도 용기가 없어 실행해 옮기지 못하면서요. 나는 내 삶이 중요하기에,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 생각했지요. 집 지으면서는 좀더 젊었을 때 올 걸… 그렇게 후회하면서요.”田





윤홍로 기자 / 사진 박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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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그리던 꿈을 담아낸 청도 12.5평 목구조 황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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