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따스함이 있는 집

전원 찾아 8년 헤매 다니다 물골안에 평당 1백70만원 들여 53평 목조주택 마련

중학교 교사이자 소설가인 이시백 씨는 시골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8년간 열병을 앓았다. 그의 부인 서화경씨는 남편의 병은 봄과 가을이면 극도로 도졌다고 말한다. 결국 남양주 수동면 물골안 마을의 맨 안쪽 산자락에 집을 지으면서 병은 없어졌다. 이들 가족이 산과 숲과 들풀과 그리고 짐승들과 어울려 사는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이름도 아름다운 동네, 물골안에 집을 지었다. 논과 밭을 지나고 사슴농장도 지나고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의 가장 안쪽 산등성이를 헐어 사람과 짐승과 풀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사는 집을 지었다. 중학교 국어 교사이면서 소설가인 이시백 씨는 10여년 전부터 전원으로 가지 못해 극도의 상사병을 앓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시백 씨의 전원에 대한 동경은 타고난 것이었다. 그를 키워준 도시의 끈적거리는 공기와 잿빛 빌딩들에 대한 체질적인 거부감으로 전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고 못 가는 현실로 인해 몇 년 동안 줄기차게 열병을 앓아야 했다. 그의 아내 서화경 씨의 말을 빌리자면 ‘매년 봄가을마다 도지는 계절병’이었다.

병이 도지면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다니는 방황을 해야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경기도, 강원도의 경치 좋은 지역은 하도 많이 찾아다녀 나중에는 이들 부부가 ‘떳다’ 하면 지역 부동산업소에서는 슬금슬금 피해버릴 정도였다. 땅값 등 이것저것 열심히 물어보고 사지는 않았으니 귀찮아 할만도 했다. 턱 없이 비싼 땅값과 집값은 교사로 빠듯하게 사는 이들 부부의 경제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좀 괜찮은 집을 찾았다 싶으면 ‘서울사람’의 것이었고 그런 집과 땅은 어김없이 텅 비어있거나 잡풀만 무성했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집과 땅을 그렇게 팽개쳐 놓고 거품만 키워가는 ‘서울사람’들에게 많은 원망을 했고 우리나라 부동산정책을 성토했다. 이럴 때면 부인 서화경 씨는 복권이라도 ‘확’ 당첨되면 보란 듯이 전원주택 짓고 내려가 남편의 병을 말끔히 고쳐줄 수 있는데 하는 기대도 했지만 그런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그러기를 꼬박 8년 한 후 농가주택에서 우선 살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경지에 이르렀다. 남양주시 수동면 물골안의 15평 농가주택 지상권을 구입해 시골로 가는 기차를 우격다짐으로 탔다. 이시백 씨는 많은 공을 들여 찾아낸 동네 물골안의 풍경을 이렇게 시로 썼다.




고개만 넘으면 나는 훌쩍 먼 곳으로 돌아간다 / 삼신아파트, 장미아파트 지나 / 언덕바지 피잣집만 넘으면 / 바람부터 서늘해 지는 가곡리부터 나는 / 청보라빛 쑥부쟁이와 산도라지 냄새로 들어간다 /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아이들과 / 목욕탕이라고는 사방 십리 한곳만 있어 / 인근 사람들 죄다 만나는 / 물 좋다는 광천탕을 지나 / 장재울, 대깸, 선돌을 지나면 / 광대울 넘어가는 골짝에 실올처럼 / 남아 있는 돌밭길로 간다 /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만 / 조금 여유만 있다면 / 조랑말 하나 사서 / 타지는 못할 망정 끌고 다니면 참 좋을 / 그런 산길이 나타난다 / 테레비에서는 뉴스가 여전하고 / 인터넷으로 어디든 연결되지만 / 고개만 넘으면 훌쩍 먼 곳으로 돌아가는 / 물골안 풍경은 언제나 신기하기만 하다


물골안에서의 전원생활, 그것은 멀리서 바라볼 때와는 달랐다. 생각했던 것 만큼 녹녹치 않았다. 마을 주민들의 텃세도 만만치 않았고 생활에 불편한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들창 밑까지 날아들어 꽃을 피우는 키 작은 풀들과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빼곡한 밤하늘 별들, 또 별이 되는 반딧불 무리, 솔 숲을 지나는 바람소리 등 그런 것들이 하루하루 헤아릴 수 없는 감동으로 살 수 있게 했다.
다소의 무리는 있었지만 잘 적응했다. 처음 시골로 이사올 때 ‘촌놈’ 이 된다는 것이 서러워 훌쩍거리며 따라나선 외아들도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서울사람보다는 ‘촌놈’ 예찬논자가 되었다. 엄마 아빠가 다시 서울 가자며 장난을 걸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이곳의 학교생활에 푹 빠져 살고 있다.

농가주택에서 2년을 산 후 더 살고 싶었으나 지상권의 위험성이 걱정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이곳 마을의 안쪽 산 밑으로 들어와 새로 집을 지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곳에 어떻게 집을 짓고 사느냐고 할 정도의 외딴 터 4백5평을 구입해 2백평을 전용받아 35평의 주택을 지었다. 집 지을 때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턱 없는 예산에 집 지을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중 ‘나무와 집’이란 시공업체를 만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돈이 없으니 싸게 지어달라고 부탁해 짓기 시작했는데 밑지더라도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의 집은 지어야 한다는 시공업체의 양심으로 쓸만한 집을 지을 수 있었다. 게다가 면사무소의 공무원들과 면장, 마을 이장 등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었다. 경량목구조에 외부마감은 핸디코트로 했다.

이후 서울에 계시는 장인장모님을 모시기 위해 최근 15평 공간을 증축했다. 증축한 주택은 외벽에 비닐사이딩을 붙였다. 이렇게 집을 짓는데 소요된 경비는 토목공사비를 포함해 평당 1백70만원 정도 들었다. 집의 이름은 ‘해뜨는 집’이라 했다.
이제는 해뜨는 집이라 하면 주변에서 거의 알 정도가 됐다.

장인장모님이 이사온 후에는 ‘취곡산장(翠谷山壯)’이란 이름이 하나 더 추가됐다. 주변이 풀과 나무들로 너무 푸르러 그 푸르른 골짜기를 일러 장인 어른이 붙인 이름이다. 조만간 친 부모님들도 이곳에 모실 생각이다. 텃밭으로 사용하는 곳에 이시백씨 손수 황토집을 지어 살고 현재 살고 있는 공간은 친부모님들이 살 수 있도록 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렇듯 전원주택은 허물어져 가는 우리의 가족제도를 추스를 수 있는 매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시백 씨의 주장이다. 특히 그는 지역문화에 관심이 많다. 지방의 문화행정에 대한 불만도 많다. 지역을 알리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지역 특성을 살린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앞으로 지역을 위해 그런 일 하나쯤은 하고 싶고 계획도 갖고 있다.

이시백 씨와오전 그 가족들은 전원으로 온 지 3년만에 무공해 보드라운 흙을 골라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그리고 아직도 청정한 그곳의 문화를 걱정하는 여유를 갖고 청정하게 살고 있다. 田

글·사진 김경래

■ 건축정보
주소 :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
대지면적 : 2백평
연면적 : 53평(본채 38평, 별채 15평)
구조 : 2×4 경량 목구조
마감 : 외벽(본채-핸디코트, 별채-비닐사이딩), 내벽(핸디코트)
건축비 : 평당 1백70만원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전원 찾아 8년 헤매 다니다 물골안에 평당 1백70만원 들여 53평 목조주택 마련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