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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상류와 양산팔경을 배경으로 한, 충북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의 텃골로 가는 길은 늦가을의 정취가 짙게 배어 있다. 가을걷이를 끝낸 들판으로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살,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인 단풍으로 곱게 물든 산, 단풍잎 사이로 점점이 박힌 주홍빛 둥시……. 둥글게 생긴 감이라고 해서 이름 붙은 둥시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영동지방의 명산물인 곶감을 만드는 품종이다.

텃골로 접어들어 나지막한 산을 에돌자, 웅장함과 육중함이 느껴지는 주택이 한눈에 들어온다. 통나무 황토집으로 건축면적은 36평(연면적 42평)이지만 아름드리 통나무를 다듬어 세운 기둥하며, 물매 가파른 지붕에 길게 뽑은 처마, 여기에 6미터에 달하는 높이가 그러한 느낌을 더하게 한다. 이 주택의 처마를 떠받치고 있는 바깥기둥에 걸쳐진 보에도, 이즈음 영동지방의 여느 집에서 흔히 보는 풍경처럼 둥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채 산바람을 맞으며 곶감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몇 기의 탑과 바위 그리고 곱게 뿌린 내린 잔디가 어우러진 정원 한쪽에는 콩이 널려 있다. 쇠스랑으로 수확물이 고르게 마르도록 뒤집는 건축주 이욱재·김수란 부부에게서 풍요와 여유로 상징되는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긴다.



■건축정보

·위 치 : 충북 영동군 용산면 봉곡리(텃골)

·부 지 면 적 : 700평

·대 지 면 적 : 200평

·건 축 면 적 : 42평(다락방 6평 포함)

·건 축 형 태 : 통나무 황토주택

·실 내 구 조 : 거실, 방 2, 욕실, 간이세면대, 주방·식당, 다용도실, 다락방

·외벽마감재 : 황토벽돌 줄눈마감, 시더 베벨 사이딩

·내벽마감재 : 한지벽지, 루바

·지 붕 재 : 아스팔트 슁글

·천 장 재 : 루바

·바 닥 재 : 강화마루

·창 호 재 : 시스템창호, 목창호

·난 방 형 태 : 심야전기보일러, 벽난로

·식 수 공 급 : 지하 암반수

·시 공 기 간 : 2005년 10월∼12월

·건 축 비 용 : 평당 450만 원(조경비 별도)

설계·시공 : (주)웰빙하우징 043-745-0004 www.wellbeingh.com




이욱재(61)·김수란(57) 부부는 8년 전, 대구에서 직장을 따라 충북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로 이주하여 70평 슬래브집을 짓고 작년까지 살았다. 집 짓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10년이 채 되지 않아 다시 통나무 황토집을 지은 것이다. 집을 지으려면 무엇보다 주변 환경을 포함해 앞을 내다보는 입지 선정이 중요하다. 이욱재 씨의 경우 지역(광의의 입지) 선정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지만, 그 지역 안(협의의 입지)에서 집터를 고를 때만이라도 신중을 기했으면 하고 후회했다.


“시간에 쫓겨서 직장과 맞붙다시피 한 길가에다 슬래브집을 짓고 살다 보니 여러 가지로 불편했지요. 그러다가 아들(이승호·36)이 결혼하여 새 식구(이진옥·33)를 맞으면서, 직장과 거리가 적당하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이곳에다 집을 새로 짓기로 했지요.”


집터 선정을 잘 못하면 아무리 설계가 좋고 건축비를 많이 들여도 만족할 만한 주거 환경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 사례다. 이들 부부는 3년 전에 먼저 살던 데에서 10분 남짓 떨어진 이곳 텃골에다 사과밭 700평을 평당 10만 원에 매입하여, 그 가운데 200평을 대지로 전용했다. 땅의 형국은 뒤와 좌우는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이고 전면이 확 트여서 아늑해 보인다.

이들 부부는 이번에도 튼튼하다는 이유만으로 슬래브집을 지으려고 했다. 그러자 아들이 콘크리트 벙커나 다름없는 집을 또다시 지으려 한다며 반대했다고.


“남들은 쾌적하고 건강한 삶을 찾아서 전원으로 이주하여 황토나 나무로 몸에 좋은 집을 짓는데, 왜 슬래브집을 짓느냐고 하더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주택 건축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으니까요. 아들이 건넨 몇 권의 전원주택 전문지를 보고서야 마음을 바꿨지요. 책에 실린 주택들이 한결같이 아름답고 튼튼해 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건강에 유익하다는 건축주들의 말에 귀가 솔깃했지요. 당시 방송에서 새집병(Sick House Syndrome)이다, 시멘트-독이다 해서 연일 들끓기도 했고요. 그런 이유로 흙과 나무만으로 건강한 우리 집을 짓기로 한 거죠.”


건축주 부부는 목구조 황토집을 짓기로 하고 시공업체를 찾았으나 쉽지 않았다. 국내에 목구조 황토집을 짓는 업체도 많지 않지만, 문제는 현장이 멀다며 선뜻 나서는 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알게 된 곳이 영동군 용산면 금곡리에 자리한 (주)웰빙하우징(대표 이용규)이다. 영동지역에 위치하기에 시공뿐만 아니라 사후 관리도 편하겠다 싶었고, 전원주택을 비롯하여 전원카페, 어린이집, 자연휴양림, 관광농원, 동호인단지 조성 등 1년에 십여 채씩 짓는 공사 실적에 믿음이 간 것이다.



황토벽돌 사이에 참숯 채운, 웰빙 주택


이들 부부는 (주)웰빙하우징에다 마감재와 접착제는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고, 방보다는 거실과 주방을 넓히고, 서재로 사용할 다락방을 드릴 것을 주문했다.


“나무와 황토로 구성한 벽체에다 유독 가스를 내뿜는 화학물질을 덕지덕지 처바르면 헛것이기에 마감재에 신경을 많이 썼지요. 또한 가족이 시간을 많이 보내고,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 주로 거실과 식당이기에, 방의 크기와 수를 줄이더라도 그곳만큼은 넓혀 달라고 했지요. 짬이 나는 대로 책을 읽으면서 먼 경치를 바라볼 다락방도 필요했고요.”


부지는 300평의 밭과 200평의 정원, 200평의 집터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집터의 경우 가까이는 정원과 밭을 굽어보고, 멀리는 들판과 맞닿은 산까지 바라보고자 15톤 트럭 100여 대 분량의 흙을 쌓아 1.5미터 높였다. 구조는 기둥·보(Post & Beam) 방식으로 줄기초 안에다 10대 분량의 자갈을 채우고, 20센티미터 매트기초 후 방수지(루핑펠트)를 깔고, 앵커볼트로 직경 40센티미터짜리 북미산 햄록(Hemlock)을 세웠다. 기둥과 보는 전통 목구조 방식에 따라 사개맞춤하여 결속했다. 특징은 기둥에 홈을 파고 볏짚이 섞인 생황토벽돌(20×6×9㎝)을 안팎으로 쌓아 줄눈마감을 했다는 점이다. 또한 황토벽돌 사이에 방부, 항균, 악취제거, 습도 조절, 집 먼지·진드기 제거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참숯을 채워 넣었다.


입면은 정면에서 바라볼 때, 현관을 사이에 둔 지붕이 마치 주봉과 부봉을 떠올리게 한다. 언뜻 보면 채를 나눈 듯하다. 입면 구성 디자인과 함께 공동생활공간인 거실은 천장을 높여 개방감을 주고, 개인생활공간과 가사활동공간, 통로공간은 천장을 낮춤으로써 안정감을 더했다. 이러한 디자인과 기능의 어우러짐은 처마에도 나타나 있다. 벽체를 구성하는 목재와 흙을 비에 젖지 않게 보호하고, 햇빛으로부터 그늘을 만들기 위해 처마를 길게 뽑았다. 또한 창호를 많이 낸 거실 전면 구조를 경량 목구조(2″×6″)로 하고 시더 베벨 사이딩으로 마감하여 포인트를 준 점도 눈길을 끈다.



생활에 맞춰 각 실의 기능 강조


평면은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어 각 공간의 위치와 크기, 모양 그리고 공간의 연계성을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크게 좌측에서부터 안방, 거실, 주방 겸 식당 이렇게 세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안방은 현관에서 시선이 벗어난 곳에 자리하며 기능을 높이려고 1평 남짓한 욕실과 드레스-룸을 부속으로 두었다. 거실은 햄록으로 짜 맞춘 기둥과 보에다 더글라스-퍼(Douglas-Fir) 서까래, 홍송 루바(Red-Fine)로 마감함으로써 나뭇결은 시선을, 목향은 코를 즐겁게 한다. 거실 후면에는 반자 천장의 작은방을 배치하고, 그 위에 전면 고창으로 시원스레 펼쳐진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다락방을 드렸다. 노출형 벽난로를 설치한 거실은 한지 벽지로 마감하고 부분적으로 적삼목의 매끄러운 면을 노출시켜 아트-월로 꾸몄다.


이 주택의 특징은 대개 거실, 식당, 주방으로 이어지는 구조와는 달리, 거실을 독립시키고 식당, 주방, 다용도실을 한 덩어리로 묶어 일직선상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식당에서는 테이블이 놓인 전면 덱으로, 다용도실에서는 후면 덱을 거쳐 창고로 동선이 이어진다. 그리고 현관과 욕실은 거실과 주방·식당 사이에 배치했다. 욕실 앞에는 간이세면대를 설치했으며, 이 공간은 아트-월로 막음을 하여 현관이나 주방·식당에서 보이지 않는다.


각 실의 천장은 반자인 작은 방을 제외하고, 모두 서까래를 노출시켜 루바로 마감한 박공형이다. 내벽 마감은 황토벽돌 위에 코스모스 잎을 넣은 고풍스런 한지로 했다. 각 실의 문은 홍송 원목으로 만든 외여닫이이고, 창은 외부는 시스템창호, 내부는 홍송 원목창호다. 거실과 주방·식당 바닥은 자갈 20센티미터 위에 열선(씨즈 히타)을 깔고 자갈 15센티미터, 황토 모르타르 10센티미터, 온돌강화마루 순으로 마감했다. 그리고 두 개의 방에는 황토모르타르 위에 한지 장판을 깔았다.



건강주택에서 건강한 가족사를 엮다


이들 부부는 격식 없이 꾸민 정원이라지만, 천평루(天平樓)란 현판을 건 팔각정에서 바라보니 예사롭지 않다. 집터와 정원을 구분 짓기 위해 28톤 차로 7대 분량의 충남 보령산 오석(烏石)으로 쌓은 단 사이사이에는 꽃잔디가 빠끔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집을 감싸듯이 현관에 이르는 길에 놓인 답석을 거닐면서 하늘과 땅을 잇는 석탑과 석조(石槽)에 담긴 수련(睡蓮), 그늘막 아래 놓인 연자방아, 기괴하게 생긴 수석(壽石)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땅이 비옥해서 그런지 금년에 고추 80근, 콩 4말, 들깨 3말, 배추 500포기를 수확했다는 이들 부부.


“300평 밭에다 남들 하는 것을 보고 이것저것 심었는데, 농사 경험이 없다 보니 일이 여간 고되지 않았어요. 그 대가로 이렇게 수확의 기쁨을 누리면서 땅은 거짓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지요.”


살아서 숨을 쉬는 집이기에 직장에서 일에 치여 스트레스를 받거나, 밭일 후 몸이 고단할 때 그리고 어쩌다 술자리를 가져도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단다.
이들 부부에게서 집은 가족 생활을 충족시켜 주고, 내일을 위한 활력을 기르는 보금자리임을 떠올렸다. 건강한 집에, 건강한 가족사가 담기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田




글·사진 윤홍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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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벙커 탈출해 지은 영동 42평 통나무 황토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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