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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들이 집 짓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어하고 잠 못 이루는 날이 바로 집 짜기 전날이다. 크레인을 맞추어 놓
고 난 다음부터 치목해 놓은 부재들을 전부 머릿속으로 다시 그려봐야 한다. 잘못되었으면 수정해야 하기 때
문이다. 만에 하나 빠진 부재가 있거나 잘못됐으면 비싼 장비와 인력들을 모두 놀려야 하는 불행한 사태에 직
면한다. 또 대목수의 실력이 검증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내 집을 짓는 것이기에 잘못돼도 그만이지만 자존심
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글 황인찬

 

누차 강조해서 이야기했지만 자기 집은 손수 지어야 한다는 게 내
철학이다. 남에게 맡기면 쉽고 편하게 지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속상할 각오를 해야 한다. 심지어 형제 간에 집을 지어
도 원수로 결말을 맺게 되는 게 집 짓기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자식들
에게 유언으로"집 짓지 말아라!"하셨단다.
그래도 남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사람은 속상할 각오하고 남에게 맡
겨야 한다. 그래야 나 같은 목수도 일거리가 생기는 법이니.
이런 생각을 갖고서 내 블로그에 3년 동안 직접 집 지은 이야기를 자
세하게 올리기 시작했다. 집을 직접 지으려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정
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직접 못 하는 경우에는 최소한 집 짓는 공정을
하나하나 배워서 남에게 맡길 때도 결코 속임을 당하지 말라고.
그러자 엄청난 독자들이 블로그에 들어와서 글을 읽는 게 아닌가?
특별하거나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고 이미 모든 사람들도 다 알고 있
는 내용이려니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블로그에는 이런 댓글들이
달려 3년간 집 짓기로 고독했던 목수에게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다음 얘기가 넘 궁금해서 외출해야 하는 것도 미루고 단번에 읽고 있
어요. 꼭 제가 꿈꾸던 바였는데... 자연과 함께 하는 소박 단아한 모습
이 멋져 보입니다."- apn21
"저도 제 손으로 내 집을 꼭 지을 겁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즐
겨찾기 추가하였으니 자주 들러 글을 읽어 볼 테니 끝까지 올려 주십시
오."- 풍류
"하늘재님의 글을 보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욕심 하나… 집짓는 법을
배우면 여자인 나도 직접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입니다."- 도희맘
잠시 삼천포로 빠진 것은 독자들의 반응을 통해서 최근 들어 손수 집
짓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한옥 짓기 학교를 통
해 집 짓는 방법을 배우려는 사람이 점차 많아진다는 사실에서도 손
수 집 짓기 인구가 늘고 있음이 입증된다.
간단하게 주초 놓기
치목이 끝나면 지체할 겨를 없이 바로 집 짜기에 들어가야 한다. 집
짜기는 치목된 부재들을 짜맞춤 해서 집을 세우기 때문에 붙여진 이
름이다. 그냥 집 세우기라고 하면 의미가 좀 퇴색될 수도 있겠다.
집 짜기를 하려면 치밀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주초 놓기 계획은
주춧돌을 어떤 것을 구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요즘은 시멘
트로 통기초를 하고 나서 그 위에 주초를 세우는데 일단 친환경적인
주택이 목적이었기에 시멘트 작업은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한옥의
기초는 자연석이 제격이다. 하지만 직접 짓는 공정상 자연석을 구하
려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집터를 닦을 때 땅 속에서 채굴된
돌들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고 자연석 기초 위
에 기둥을 세우면서 거쳐야 할 작업들을 피하고 싶었다.
자연석 위에 십방 먹을 긋고 그렝이질(글겅이질 ; 기둥 밑 부분을
주춧돌의 표면에 맞게 깎는 것)을 해서 기둥의 높낮이를 맞추려면 기
둥이 33개인 우리 집 기둥 세우기(굤柱) 작업은 목수 서너 명이 매달
려야 3~4일 만에 마칠 수 있을 정도였다. 장마 전에 집을 세우고 지
붕을 완성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보다 편한 방법을 강구했다.
우리 집터는 돌이 50% 흙이 50%로 된 단단한 땅이다. 이런 땅에
는 따로 기초공사가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주춧돌 밑에는 굴삭기
를 동원해서 거대한 바위를 하나씩 묻어 놓고 잔자갈(콩자갈)로 수평
을 맞추고는 바로 그 위에 주초를 놓았다. 마침 근처에는 거대한 석
재광산이 있어 그것을 적극 활용했다. 높이 가로 세로가 각각 40㎝인
주초를 구입했다. 크기가 일정하니 수평을 맞춘 자갈 위에 돌을 그대수 있게 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비교적 쉽고도 간단한 방법으로 주초 놓기를 마치자 비용을 거의 4
분의 1 정도로 줄일 수 있었다. 만일 전통이 좋다고 고집했으면 주초
비용만 거의 500만 원 정도 들어갔을 거다. 한옥의 건축비용이 비싸
기 때문에 살림집으로 외면 받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런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우리 한옥은 서민들로부터 점점 외면 받을 게 분명
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지붕공사 과정에서 또 한 번 언급
할 예정이다.
하루 만에 집 짜기 완성하다
똑같이 생긴 가공된 주초가 수평에 맞추어서 기둥이 세워질 자리
에 놓여지니 기둥 세우기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때부터 본
격적인 집 짜기가 시작되는데 동료 목수들의 도움이 없으면 절대 불
가능하다. 후배 목수 일곱 명을 구했고 새벽 5시면 일어나서 그날 하
루 일정에 차질이 없나 준비를 하고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초긴
장상태에 돌입했다.
대목들이 집 짓는 과정 중에서 가장 힘들어하고 잠 못 이루는 날이
바로 집 짜기 전날이다. 크레인을 맞추어 놓고 난 다음부터 치목해
놓은 부재들을 전부 머릿속으로 다시 그려봐야 한다. 잘못되었으면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빠진 부재가 있거나 잘못되었으
면 비싼 장비와 인력들을 모두 놀려야 하는 불행한 사태에 직면한다.
또 대목수의 실력이 검증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내 집을 짓는 것이기
에 잘못돼도 그만이지만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기둥 세우는 작업이 속도가 붙어 반나절에 끝이 나는 것을 본 성질
급한 이웃 동료 목수가 구경 왔다가 그 자리에서 크레인을 주문하는
친절(?)을 베풀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후 나절 동안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바로 집 짜기가 진행됐다. 나는 밑에서 현장을 지휘하면
서 5톤 카고크레인은 그동안 치목해 놓았던 부재들을 번호에 맞추어
하나하나 들어 올리고 목수들은 떡메로 짜 맞추기 시작하자 순식간
로 놓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었다. 물론 주초를 고정시키기 위해서 시
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삼화토를 사용했다. 삼화토는 생석회, 모래,
황토를 똑같은 비율로 섞어 만드는데 묘지를 조성할 때 많이 사용한
다. 산짐승이 시신을 훼손하지 않도록 땅을 다지는 것이다. 삼화토는
시간이 오래가면 갈수록 점점 더 단단하게 굳는다.
주초 놓기는 혼자서 하루에 마칠 수 있었다. 실로 수평을 맞추는 전
통적인 공법을 사용했다. 주초가 놓이고 나자 아내가 한 말은 잊혀지
지 않는다." 여보, 집이 왜 이렇게 좁아?"
38평이나 되는 한옥을 짓는데 좁다니 이게 웬 말인가! 넓은 터 위
에 주초 놓은 집터는 상대적으로 아주 작아 보이는 착시현상 때문이
다. 그랬던 아내는 요즘 집이 너무 커서 청소하기 힘들고 동선이 너
무 길다고 불평한다. 아내는 벽체가 세워져야 비로소 집의 규모를 알
에 집의 모양이 나타났다. 기둥과 도리 창방 그리고 대들보 등이 짜여지고 나니
어둠이 깔리는 저녁이 되었다. 하루도 안 걸려서 집 짜기가 거의 끝난 것이다.
부재들이 말썽을 부리지 않고 머리카락 하나도 들어갈 틈새 없이 정확하게 제
자리에 들어맞았다. 그 기쁨을 누가 알랴? 지난 5개월 동안 혼자서 치목했던 땀
방울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하며 속으로 웃음 지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일들은 아직 산처럼 쌓여 있었기에 잠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일!
비 오는 날 상량식을 치르고
4월 25일 기둥을 세우고 다음날 드디어 마을 사람들을 모셔놓고 상량식을 했
다. 다섯 살짜리 아들과 나는 아내가 정성껏 차려놓은 상 앞에서"상량이오!"하
며 절하는 것으로 간략하게 식을 마쳤다. 그 날은 왜 그렇게 비가 많이 오는지 참
난감했다. 종도리까지 짜 놓은 상태에서 비닐덮개를 덮었지만 집터에는 물이 흥
건하게 괼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이사하는 날 비가 오면 부자 된다던데 상량
식날 비가 와서 우리도 부자 되려나 보다 억지로 좋게 생각하며…….
상량식을 마치면 목수는 비로소 두 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다. 사실 집 짜기
전에 모든 부재들을 설계에 맞추어 자르고 다듬었으니 이게 잘 맞아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 잘 모른다. 혹시나 잘못 자른 것이 없나? 혹시나 장부를 잘못 파지 않
았나? 잠자면서도 늘 해왔던 근심걱정을 이제부터는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상량식은 끝났지만 비를 맞히지 않으려고 다시 사투를 벌였다. 애지중지 자식
처럼 소중히 치목한 부재들이 비 맞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하루 정도 비 맞는
거야 목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그래도 그냥 있을 수 없는 게 자기 집을 짓
는 마음일 것이다. 만약 남의 집 지을 때 비가 오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내가 겪었던 실수를 한 가지 공개하고 넘어가야겠다. 지금까지 아무에게
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로, 공개하면 대목수인 내 자신의 이름에 먹칠하는 것이지
만 직접 집을 지으려는 이들에게 꼭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털어놓는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서로 잡아주는 부재를 창방이라
고 하는데 이것이 우리 집 뒤편에서 말썽을 부렸다. 기
둥을 세우면서 보니까 문제가 있음을 알았는데 급하
게 크레인을 부르고 여러 명의 목수가 집 짜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미처 수정을 못하고 그냥 떡메
로 내리쳐 끼워 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창방과 기둥 사
이에 한 푼(3㎝) 정도 벌어진 채로 집이 짜여져 버렸
다. 다시 뺄 수도 없이, 다른 부재들이 이미 올라간 상
태에서 발견하고 나니 가슴이 쓰렸다. 그 실수가 집의
하중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너무 보기 흉하다. 다행히
집 뒤편에 있어서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심지어 집
짜기 일을 했던 목수들도 모른다.
집 짓는 일은 급하게 하면 이렇게 잘못된 부분이 흔
히 발생하게 된다. 내 실수를 거울삼아 앞으로 독자들
은 집 지을 때 조급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田

 

글쓴이 황인찬 님은 네티즌에게'하늘재'
로 더 유명합니다. 인터넷 블로그'하늘재
(http://kr.blog.yahoo.com/hanuljae)'
를 통해 집 짓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습니
다. 대학에서 농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철학
박사과정까지 밟으며 학문에 경지를 넓혀
온 그는 어느 순간 한옥 목수가 되기로 결
심했고, 그가 거주하는 덕유산자락 개량한옥을 3년간 공들여 손수
지었답니다. 3월에는 그의 집 옆에서 한옥 학교를 오픈해 블로그에서 못다한 한옥 짓기 실전을 가르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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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이야기 Ⅸ _ 기둥 세우고 떡메로 내리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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