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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흙을 받기로 한 날입니다.
귀농 세 째해 우연히 보조 사업으로 받은 비닐하우스를
부모님이 내려오시게 되면서 부모님이 좀 편하게 농사짓도록 드렸지요.
하지만 내년이면 임대한 땅도 돌려주어야 합니다.
새로 땅을 구하기는 했는데 하우스를 옮기기엔 모양이 너무 안 좋아
길 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마을 공사현장에서 흙을 받기로 한 것입니다.
무려 100차.

 

아침도 못 먹고 일찍 나가서 차 시동을 켰는데
밧데리 방전으로 시동이 불발.
부랴부랴 어제저녁에 집에 온 다래네 차를 빌려 흙 받을 곳으로.
흙을 싣고 오는 덤프트럭을 기다렸다가 흙을 부어야 하는 위치를 잡아주고
열 시 가까이 되어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었습니다.
다래네와 아침을 먹는데 원웅이 아빠가 왔습니다.
차에 밧데리 충전시켜달라고 불렀습니다.
어렵지 않게 차에 시동이 걸려 차 문제는 해결하고 아침밥을 마저 먹었지요.

 

그리고 다시 내려가기 전 다래네 가족에게 일거리를 하나 맡겼습니다.
어차피 농사체험을 온 것이니 일거리를 주어야 했지요.
방아 찧어 창고에 쌓아놓은 쌀을 20㎏짜리 포대에 나누어 담아 포장하는 일.
무려 40개 가까이 옮겨 담아야 하니
잡아주는 이 없이 제 혼자 하기엔 꽤 시간이 걸릴 일이었습니다.
호미 들고 밭 매고 고추 따는 것만 농사체험은 아니지요.
농산물 포장도 체험이니께…….

 

차를 끌고 집을 나서는데 권역 위원장의 전화.
권역 커뮤니센터 짓는데 측량이 들어왔으니 가서 확인 좀 하라는 것.
측량하는 곳에 다 도착했는데 원철이 청양고추 가지고 온다고 전화.
청양고추 받아서 옮겨 싣고, 측량하는 것 확인하고
다시 원웅아빠한테 전화했더니 민재아빠하고 플래카드 매단다고 오랍니다.
마을 앞 국도를 가로질러 플래카드 매달고
직거래 장터 열 때 사용했던 몽골텐트 해체하러 팔각정으로.
백만 원도 넘게 주고 산 것이라 잘 간수해야 했지요.

 

몽골텐트 해체해서 바닥에 내려놓으니 점심때.
측량팀과 해체하던 사람들 모두 모아 점심 먹으러.
권역 위원장, 부위원장까지 모여 교육가는 일정 확인하고
역할 분담하며 점심을 먹었지요.

 

점심 후.
텐트 해체 마무리해서 고탄마을 회관에 보관하고
선배네 가족 막국수 먹는데 잠시 들렀다가
내일 시市농기계수리센터 들어오는 것 준비.
트랙터 작업기들 다 옮겨 공간 확보해 놓고는
집에 잠시 들러 선배가족 배웅을 했습니다.
요즘은 밤을 타서 오는 손님이 아니면 소주 한잔하기도 어렵습니다.

 

쌀 택배 보낼 송장 입력하러 송암리 마을회관 가는 길에
면 직원 만나 친환경인증 촉진비 신청서에 도장 찍고
통장사본 복사해주고
농협 들러서 면세유 얼마나 남았나 확인하고
고탄 이장 만나서 교육갈 고탄 부녀회 명단 받고
부위원장 주민번호 강원대 산학협력단에 전화해 알려주고 송암리로.

 

택배용지를 손으로 쓰다가 이번엔 스티커형 송장으로 인쇄를 했습니다.
한번 입력해 놓으면 계속 반복해서 출력만 하면 되니
한번이 힘들지 다음부터는 쉬워지는 것이라 짬을 내서 갔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 입력은 한참을 걸렸지요.
두 시간을 실수라도 있을까 바짝 긴장하고 내내 입력.

 

다 저녁이 되어서야 인쇄를 마치고 쌀 가지러 돌아왔습니다.
다래네가 포장한 쌀 포대에 스티커를 붙여서 차에 싣고 택배 집하장으로.
날은 벌써 어둡고 추워졌습니다.
흙 받은 것 어슴푸레 가로등불에 확인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가 고장 나 차 고치고 있는 민재아빠와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려 전화.
먼저 먹었답니다.
그래서 혼자 순댓국에 소주 한잔 마시고 돌아왔지요.

 

바쁘네요.
몸도 마음도 머리도 정신없이 바쁘네요.
내일은 시청으로, 생협으로 돌아다녀야 하고
밭에는 베어놓은 팥이랑 서리태가 언제 탈곡할거냐며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늘과 양파는 언제 심어 줄거냐며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스트레스는 별로 없습니다.
내가 마음먹는 순간에 손에서 놓을 수 있는 일들이라
평생을 이리 살아야하나 하는 암담함이나 불안감은 없습니다.
아직은 젊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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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띄운 편지 - 열두 번째 이야기] 오지랖 넓은 젊은 농부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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