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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름은 고성1리.

원래는 그냥 고성리였는데 마을이 넓어서 일하기 어렵다고 1, 2리로 나누었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반대로 고성 1, 2리와 이웃한 고탄, 송암, 인람까지 합쳐서 '솔바우 권역'이 되었습니다.

권역으로 지정을 받으면 무려 수십 억의 자금이 지원되어 권역 사업을 도와줍니다.

언제는 크다고 나누고 이제는 작다고 합치고.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는 독립된 마을을 합치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정서도 내부 사정도 제각각이니 공동으로 사업을 한다는게 쉽지가 않고, 더구나 수십 억의 돈이 투입되니 각자의 마을에 유리하게 사용하려 난리가 납니다.

그 이해의 조정과 권역의 관점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게 추진위원회인데 각 마을 대표 간의 줄다리기 싸움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추진위원회의 사무장은 다섯 개 마을의 머슴이 되는 것이지요.

잘 못하면 다섯 상전의 등쌀에 못살 것이고 잘하면 다섯 개를 묶어내는 상일꾼일 것이고.

어찌하다 보니 그걸 맡았습니다.

임시라는 전제를 달고서.

본격적인 권역 사업을 하기 전에 워밍업.

솔바우 직거래 장터를 열었습니다.

우리 실력도 봐야 하고, 뭐가 부족한지도 알아야 하니 철저한 준비도 없이 그저 시작을 했지요.

문제를 발견하려고 시작한 것이니 문제는 늘 생기지요.

어지간해서는 무마하고 넘어가는데요 며칠 생긴 문제는 꽤나 아팠습니다.

월요일.

견학 때문에 며칠간 밀린 옥수수 택배 주문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양평에 도착해 견학을 하는데 전화가 한 통 왔지요.

"형. 옥수수가 없다는데?"

"뭔 소리??? XXX가 가져온다고 약속했어."

"그 집에 없대요. 다 팔았다는데....."

"그럴 리가? 내가 전화해 볼께."

약속한 당사자와 통화했지만 옥수수는 다 팔았답니다.

약속한 것이라 해도, 돈까지 받고 주문받아 둔 것인데 어쩌냐 해도, 팔았는데 어쩔 것이냐며 배 째랍니다.

그렇게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겨우 이리저리 전화해서 옥수수를 구하고는 보내라 했지요.

하지만 뒤통수 맞은 게 제대로 아팠는지 몸살이 났습니다.

돌아와 끙끙 앓고 있는데 문자가 들어옵니다.

"월요일에 옥수수 보내준다고 했잖아요. 아직 도착 안했습니다. 4일간 뭐했습니까?"

"잉???"

월요일에 보냈으니 화요일에 도착할 것인데 월요일 저녁에 안 왔다고 항의 문자를 보내고 그간 광복절과 일요일에 걸려서 못 보낸다고 사전에 알려줬음에도 4일간 뭐했냐고 하는데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오랜만에 공도 차고 몸도 풀었는데 갑자기 전화.

"옥수수 하는 분이지요?"

"네."

"옥수수가 이게 뭐예요? 이걸 먹으라고 보냈어요? 누가 이딴 걸 먹어요?"

"옥수수가 어떤데요?"

"다 말라서 왔잖아요. 누가 이런 걸 보내달라고 했어요!"

어제 보낸 옥수수가 말랐나 봅니다.

쩌렁쩌렁 전화기를 타고 울리는 소리에 옆에 있던 사람들도 놀랬지요.

제 속도 또 뒤집어지고.

그리고 오늘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참깨를 베는데 송암리 정보화 사업 사무장인 평이 엄마 전화.

"아이구 죽겠어요! 어제 옥수수 말라서 반품시켰다고 할아버지가 새벽부터 전화해서 난리예요. 당신들 농민이 맞냐고 하고, 펄펄 뛰어요. 어떻게 좀 해봐요."

어제 저녁에 택배 보낸다고 가져온 옥수수자루를 뒤집었습니다.

누렇게 마른 놈들이 있어 껍질을 까보니 손톱도 안 들어가게 말랐습니다.

마른 놈들을 골라내고 보니 주문량은 턱도 없이 부족하고 덜 마른 것들도 불안했지요.

결국 주문 취소시키고 반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랬더니 새벽부터 난리가 난 것입니다.

약속도 안 지키고 배 째라는 농민, 아무리 설명하고 이해를 시켜도 항의부터 하고 보는 소비자, 대충 말라도 괜찮다고 우기는 농민, 조금만 말라도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소비자.

목소리 큰 사람들 사이에서 머슴 중에 상머슴인 다섯 개 마을 머슴은 옥수수 팔다가 속만 뒤집힙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라면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암담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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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띄운 편지-열 번째 이야기] 당신들은 농민도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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