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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도 넘었나 봅니다.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한씨아저씨네 밭에는 언뜻 보기에도 좋은 흙이 두어 차 옮겨와 쌓였습니다.
길 바로 옆이라 오며가며 보고는 객토할 것도 아닌 듯한데 밭에 웬 흙을 저리 가져다 놓았나 하고는 의아하게만 생각했습니다.
한참 뒤에야 한씨 아저씨가 자신의 산소를 그 밭에 쓴다고 흙을 준비해 둔 것이라 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설마 마을 한복판에 산소를 쓰겠나 했고, 마을에서도 한씨아저씨께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여론을 전달하기도 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흙은 그냥 쌓여 있었고 몇 달 뒤부터 한씨아저씨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추우나 더우나 자전거를 타고 좋아하는 술과 친구를 찾아 이웃마을까지 마실을 다니던 분이 갑자기 두문불출하고 누웠습니다.
그리고 불치병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왔고 일 년 가까이 가끔 헬슥한 모습의 한씨아저씨를 보았습니다.
한씨아저씨가 얼마 전 여든 해를 사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생전에 준비한 흙으로 '그런 법'으로 우리 집 옆 밭에 산소를 썼습니다.

아침.
한씨아저씨의 일방적인 '그런 법'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결정된 일.
일찍 나가서 장작불을 피우고 한참을 기다리니 운구행렬이 도착했습니다.
생전에 사시던 집과 묻힐 자리가 가까우니 상여도 없이 그냥 운구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관을 내려놓자마자 갑자기 어수선해졌습니다.
하관할 자리가 조금 빗나갔다는 것.
생전에 한씨아저씨가 지정한 위치에서 약 5미터 가량 뒤로 물러나 앉았다고 할머님이 지적하고 나선 것이지요.
하지만 어제 한씨아저씨의 둘째아들과 지관이 와서 자리를 잡은 것이고, 지관은 지관대로 자신이 가진 지식의 법대로 방향과 자리를 결정했고, 두텁게 얼어붙은 땅을 포크레인이 겨우 자리 잡아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한씨아저씨의 말을 지켜야한다는 할머니 역정은 모두를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두들 눈밭에 서서 할머니의 노기가 꺾이기를 기다렸고 기왕에 마련된 장소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하관. 그리고 회다지.
한씨아저씨의 술친구이기도 한 앞마을 재경이 아저씨의 선소리에 맞추어 머리허연 노인네들이 꼭꼭 밟아가며 회 섞은 흙을 다졌습니다.
보통 다섯 번하던 회다지가 세 번만에 마무리 되고.

봉분 쌓기.
다시 말이 많아졌습니다.

"이 한겨울에 떼가 살겠냐?", "괜찮다. 그냥 떼를 입히자"

"봉분만 입히고 나머지는 봄에 하자", "누가 봄에 다시 하냐, 그냥 하자"

"떼를 먼저 깔고 흙을 부어라", "봉분모양부터 내고 떼를 심어야지"

"에이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결국 마을 분들은 마을에서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들에 대해서 모르겠다고 손을 놓았고, 한씨아저씨의 먼 친척이라는 분이 나서서 봉분을 만들었습니다.
한씨아저씨의 자식과 사위들만 열심히 지시에 따라 산역을 했지요.
마을 분들과 자손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눈치 보며 젊은 몇몇은 대충 일하는 시늉만 냈지요.
어쨌든 봉분이 서고 떼가 입혀졌습니다.
장례문화로 대통령상까지 받았다는 친척분의 솜씨는 꽤 좋았습니다.
한겨울 꽁꽁 얼어서 덩어리진 흙으로 크고 멋있는 산소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보통의 무덤 모양인 작고 아담한 맛은 없어졌습니다.

***

충청도 촌놈이 강원도 바닷가로 장가를 갔습니다.
딸이 넷이라 사위도 넷.
첫째인 경상도 사위, 둘째인 주문진 사위, 셋째인 충청도 사위, 넷째인 양양 사위.

장인이 돌아가셨습니다. 기일이 되었습니다.
제사상을 차리는데 충청도 사위는 마련한 제사 음식이나 음식 놓는 순서가 평소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처가에서 잘 몰라서 그러나?'하고는 자기 방식대로 위치를 바꾸었습니다.
그러자 경상도 첫째 사위도 고개를 흔들고, 주문진 둘째 사위는 다시 위치를 정정했습니다.
절을 했습니다. 절하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자기가 익히고 해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지요.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습니다.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이 곧 세상의 모든 것에 우선하는 법이 아니었구나!
나의 예법이 동일한 예법지역을 벗어나면 남의 예법을 깨는 것이 되기도 하는구나!

그래서 충청도 촌놈은 처가에 가면 동해안의 예법에 익숙한 주문진 사위의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주문진의 예법이 우월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단지 그 지역의 관례를 인정해주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오늘 알았습니다.
오죽하면 참견에 대한 일침으로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냐?'는 말이 생긴 것인지.

정말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상을 받았으면 뭐합니까?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눈에 거슬리는 이질적인 산소의 모양만 보여준 것이라면.
한씨아저씨의 장례를 보면서 형식을 앞세우는 예법보다 마음을 앞세우는 예법이 아쉬워집니다.
또 나만의 예법이나 아집보다 다른 사람들도 고려하는 마음이 아쉬워집니다.
하긴 예법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닌 듯도 하고요.田


김태수

강원도 춘천 새낭골에 거주하는 김태수 님은 귀농 6년차 농부입니다. 춘천에서 감자 고추 토마토 등을 친환경으로 재배하고 있으며 얼마전 《연봉 5천이 부럽지 않은 귀농》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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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띄운 편지-일곱 번째 이야기] 어느 법에 맞추어야 하는지? 마음을 앞세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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