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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년 지나면 끝이야, 처음엔 발바닥에 땀 나도록 뻔질나게 드나들지."
"맞아! 처음엔 다들 그러더라고"
"그런데 땅 사서 왔다갔다 하는 것도 한두 해지 오래 안 가."
"절집 위에는 꽤 열심히 들어오시는 것 같던데요?"
"거기도 한 이 년 잘 됐지 아마… 이제 곧 졸업할 때가 거진 다 되어가네 그려!"

마을 공동작업이 끝나고 마을회관에서 부녀회 아주머니들이(사실은 할머님들이지요) 차려주시는 점심을 먹고 밖에 나앉은 아저씨들은 마을에 땅을 사놓고 오며가며 농사짓는 분들을 화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마을 땅은 상당수가 외지인에게 팔려서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멀리 사는 외지인도 있지만 시내서 땅을 사서 마을을 들락거리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꽤나 많습니다.

그리 밀릴 것도 없이 시내서 자동차로 30분 안짝의 거리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땅을 사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농부의 입장에서 어찌 보면 그렇게라도 땅과 농사일에 마음을 주고 직접 농사짓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땅을 사서 처음 농사지을 때의 그 마음이 오래 가지 않아 마을 어른들의 경험으로는 거의 3년 정도가 한계라고 합니다.

"처음엔 제 땅이 생겼다고 이것저것 다 하며 열성이지… 한 3년이면 다 졸업해."
"그렇지, 처음엔 땅 사고 곧 집 짓고 들어올 것처럼 그러다가 한 이삼 년이면 시들시들하지."

만일 저도 전업농부가 아니라 땅만 하나 사놓고 시내서 주말농장처럼 왔가갔다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집을 짓고 이사하지 않았다면 7년을 열심히 드나들며 농사를 지을 수 있었을까?
미루어 짐작컨대 그리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다른 일을 주업으로 하면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경제적 타산으로도 별로 맞지 않습니다.
오며가며 길에 쏟는 기름값이나 건지려나 싶습니다.
특히 마음만 앞서는 초보인 경우에는 가끔 와서 하는 농사로는 소출所出이랄 것도 소득이랄 것도 별로 없지요.
그렇게 한 2년에서 3년 몸으로 땅과 농사를 부딪혀보면 대부분 '포기'란 소리가 나올 듯합니다.

더구나 농민의 눈과 전원생활을 하려는 외지인의 눈은 다른 법.
농부에게 어렵고 힘든 곳이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에겐 좋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용하고 외지고 경사가 있어 훤히 트인 곳이 외지인의 눈에 차는 곳이라면 농부에겐 평평하고 일하기 쉬운 곳, 길과 접해 있어 왕래가 편한 곳이 좋은 땅이지요.
그러니 농사를 기준으로 보면 외지인이나 초보들은 농사로는 어렵고 힘든 곳을 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농사로는 힘든 선택을 한 것이니 초장에 설레고 들뜬 마음에 힘을 다 빼고 벌렁 누워버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지요.

또 주말농장 분양받듯 작은 면적이면 모를까 990㎡(300평)를 넘어서면 호미나 삽 괭이로만 농사짓기가 벅찹니다.
그렇다고 기계를 사기도 그렇고 빌리기도 마땅치 않고 몸으로 때우는 것도 한두 번이고 결국 지친 몸이 마음의 거리를 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난관을 넘기고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시는 분도 있습니다.
거의 인간승리라고 해야 할 듯합니다.

낮에 한창을 일하는데 하우스 자재를 빌리러 낯선 사람이 왔습니다.
제 하우스 윗쪽에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려는 분이 있는데 거기에 창고 겸 농막 겸 하우스를 지으러 온 전문업자였습니다.

업자가 자재 산출을 제대로 못해서 자재 빌리러 온 것이 마뜩찮았지만 농사를 지어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시내에서 온 땅주인을 생각해서 두 말도 않고 빌려줬지요.
새낭골 들어오는 초입새에 땅을 팔려고 내놨다기에 땅모양이 좁고 길기만 해서 '누가 살까' 했더니 시내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샀다고 합니다.

그리고 며칠 전 바람도 많은 날 하우스 파이프도 날아오고 뭘 짓는다고 너댓 명이 복작거렸습니다.
그날 저녁 서너 평 되는 비닐하우스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마무리 작업을 하러 들어왔나 봅니다.
오며가며 보니 전문업자가 총감독하며 열심히 짓고 땅주인 등은 옆에서 도와주는 보조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60만 원을 주고 업자에게 맡겼답니다.
속으론 한숨이 나왔습니다.

"에휴~!~~! 농사도 시작하기 전 돈 먼저 쓰는구나!"

자재비 30만 원 안짝이면 될 것인데 모른다고 업자에게 덜렁 맡기고.
잘 짓든 못 짓든 자기가 해가며 몸으로 익히고 배우는 것인데 힘들고 어렵다고 남에게 맡기려면 뭔 재미로 농사를 짓누!!!
민재아빠랑 이야기하며 우리가 업자로 나설까 농담을 하고 말았지요.
초장에 힘 다 빼고 포기하는 경우도 좀 그렇지만 처음부터 남의 손 빌려서 시골살이나 농사를 해결하는 것도 좋은 출발은 아닌 듯합니다.

농사나 시골살이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길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농사든 전원생활이든 오래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만 앞세우는 것도 몸만 내세우는 것도 아닌 몸과 마음을 조절하면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田


김태수

강원도 춘천 새낭골에 거주하는 김태수 님은 귀농 6년차 농부입니다. 춘천에서 감자 고추 토마토 등을 친환경으로 재배하고 있으며 얼마전 <연봉 5천이 부럽지 않은 귀농>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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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띄운 편지-다섯 번째 이야기] 시골에 첫발을 걸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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