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얼마 전 화천에서 귀농한 사람들만 세 명이 만나서 일을 했습니다. 정말 한적한 산골짜기 비탈 밭에서 2천여 평 넓은 밭의 곡식을 수확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지요.
혼자보다는 그리 모여서 일하는 게 쉽기도 하고 지치지도 않습니다. 아마 그래서 농사에 품앗이도 생기고 두레도 생기고 했나봅니다.

일하며 오고가는 이야기의 화제는 우선은 농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돌고 돌아 귀농자의 어려움, 특히 마을 일과 관련한 문제들까지 나아갔지요. 마을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마을 일에 개입을 하는 게 좋은지.
각자 놓인 상황과 경험에 따라 마을과의 거리는 제각각입니다.
집을 지어도 동네 한복판에 지을 것인지 따로 뚝 떨어진 외딴 곳에 지을 것인지도 제각각입니다.

아예 '마을과 마을 일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부터 '마을에서 일을 시키려해 피하고 있다'까지…. 각자의 경험과 상황은 달랐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그런 거리감에 대한 계산이나 판단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던 듯 합니다. 구해진 터가 있어 집을 지었고 이웃이 있어 마음을 나누었지요. 마을에 젊은 사람이 몇 없으니 마을 일이 있으면 당연히 힘 써야할 심부름도 하게 되고 능력이 되는 대로 맡겨주는 일도 했지요.
물론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닙니다.
저도 낯가림도 좀 하기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도 있었고 마을 분들도 '저놈이 싹수가 있는지 어떤지' 살펴보느라 서로 겉도는 시간도 있었지요.

다만 그 정도이지 다른 큰 어려움 없이 마을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시골의 텃세나 정착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제가 좀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별반 특별한 경험도 없었고 못 버틸 만큼의 어려움도 없었으니 할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시골이라고 특별한 곳이 아니니 사람 사는 상식만 지키면 큰 어려움 없을 것이란 말만 했지요.

저는 이웃이나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관계를 잘 풀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날은 마을 일에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된다거나 조심스럽다는 각자의 결론 앞에서 제 생각을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최근 저보다 먼저 귀농한 선배 분들이 현재의 귀농지에서 떠나고 싶어 고민 중이거나 떠나서 옮기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 또한 마을에 위성송신소가 들어서는 문제로 속을 끓이고 있기도 하구요.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돈의 위력 앞에 흔들리는 마을 분들을 보면서 가슴이 싸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화천 갔다 온 다음날.
집 뒤 밭에 일하러 올라가니 꼭대기 집 할머님은 어김없이 나타나셔서 일을 거들어 주십니다. 친자식 농사 거들어 주시듯 그렇게 정성스레 거들어 주시지요.
한창을 일하는데 할머님 말씀이
"밤에 그 집에 불이 켜 있으면 좀 안심이 돼.
불이 안 켜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서늘한지 몰라.
옆집 할머니도 그러던 걸.
밤에 나왔다가도 불이 안 켜있고 어두컴컴하면 마음이 설렁설렁 한다구… …."

갑자기 싸늘해져 가던 마음이 불에 덴 듯 뜨끔했습니다.
귀농 6년차도 끝나가는 요즘 농사외의 일로 좀 버거워지는 일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웃이 없이 제 혼자만 산다면 뭔 재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할머님들이 우리 집 창가의 불빛을 반가워하듯 저도 이웃들의 창가에 켜진 불빛을 반갑게 바라보고 싶습니다.田



글쓴이 김태수 씨는
강원도 춘천 새낭골에 거주하는 김태수 씨는 귀농 6년차 농부다. 춘천에서 감자 고추 토마토 등을 친환경으로 재배하고 있으며 얼마전 《연봉 5천이 부럽지 않은 귀농》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전원에서 띄운 편지] 이웃의 불빛이 반가울 때가 있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