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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늘가람에서의 색칠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말로 흰 도화지에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집에 와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갈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어찌 보면 나 자신을 위해 펜션 실내와 마당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그만 빠져 살고 있다.

처음에는 들뜨기만 했다. 남편이 은행 지점장을 지내며 꼬박꼬박 타 오는 월급을 받아서 돈을 쓸 줄만 알았지 벌 줄은 몰랐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이것도 사업의 일종이라고 욕심이 생겼다. 이미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을 대로 높아 있는 옆집 앞집 펜션들에 손님들이 와르르 몰려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꾹 눌러 다지면서 '그래, 아직은 시작이니까 몇 년 된 펜션을 따라가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야. 우리도 열심히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어' 하며 속엣말을 했다. 그래도 자꾸만 남의 집 손님 숫자를 헤아려 보려는 습관은 잘 버려지질 않는다.

이 욕심. 이런 욕심을 부리자고 이처럼 경관 좋은 데다 펜션을 지은 것은 아니다. 나도 이제 슬슬 나이가 들어가니 먼지 쌓인 도심에서 벗어나 공기 좋은 전원에서 편안하게 지내보고 싶어서 그랬다. 젊은 시절 도자공예 전공한 것을 살려 작품도 만들어보고 회화 습작도 좀 하면서 황혼기의 멋을 부려보고 싶었다. 펜션은 그저 나중을 대비해 용돈 정도 벌려는 생각에서였는데 용돈 조금 벌려다가 젊은날 다 써버리고 얼마 남지 않은 정력을 펜션 꾸리기에 죄다 쏟아 붇게 생겼으니 때로는 '내가 뭣하러 여기까지 왔나'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오픈했으니 이제 1주기가 다가온다. 남편은 분당 아파트에서도 앞뒤 베란다에 정원을 꾸밀 정도로 익스테리어에 재주가 남달랐고 나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으니 전문가를 부르지 않아도 각자 알아서 마당과 방 네 개를 그럭저럭 꾸밀 수 있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재주를 다 부려보았다.

손님들이 편안한 '내 집'에서 묵었다 간다는 느낌이 들도록 아늑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미겠다는 컨셉을 잡은 터였다. 이불 하나 커튼 하나라도 아무렇게나 제공하고 싶지가 않아서 인터넷 쇼핑몰, 백화점, 고속버스터미널 상가, 심지어 제조 공장까지 찾아다니면서 우리집에 꼭 맞는 제품을 사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인테리어 제품들을 마련하는데 거의 넉 달이나 걸렸다.

그렇게 열심히 발품을 팔고 생각을 했기에 간혹 '참 예쁘게 꾸몄네요' 하고 말해 주는 손님이 있으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눈물겹도록 고맙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워진다.

'손님이 마음에 들어 하니 내가 헛고생한 건 아니구나.'

네 개의 방은 핑크 옐로우 그린 퍼플 이렇게 컬러 컨셉으로 꾸며보았고 마당은 유럽의 프로방스풍으로 꾸몄다. 공간이 넓은 편이 아닌 대신 시각적으로 다채롭고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보라방 하면 생각나는 손님이 있다.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달에 한 번씩 열흘 정도 단체로 우리 펜션을 빌리는 귀한 손님을 얻게 됐다. 그 분들 덕에 평일에도 펜션이 영 쓸쓸하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온 9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으로 한국인과 일본인 반반씩인 걸로 기억한다. 그들은 각자 랩톱을 가지고 새벽 2시 3시가 넘도록 연구에 몰두하곤 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한 청년이 같은 그룹에 있던 한 일본 여성에게 프로포즈를 한 것이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전날이어서 로맨스의 극치였다. 이 사실을 미리 안 우리 아들은 퍼걸러에 촛대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고 조촐한 다과파티를 준비해 두 사람의 관계가 잘 이뤄지도록 도왔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론 두 선남선녀는 청년이 쓰던 방을 함께 사용했다. 그 방이 보라방이다.

사실 연인끼리 숙박할 때는 괜히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말도 잘 못 붙이겠고 봐도 못 본 척 하기 일쑤다. 그런데 가족끼리 오는 경우에는 180도 다르다. 그러고 보니 5월 5일에 묵었던 손님들도 기억난다. 한 방에 묵었던 모녀가 남편과 나에게 "사장님 사모님 술 한 잔 합시다" 하면서 말을 걸어온 것이 시작이 돼 각 방의 손님들이 한데 모여 마당에서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새벽녘까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어느새 형 아우 하는 스스럼없는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우리 형, 아우 하면 되겠네요, 허허허."

펜션지기로서의 재미는 바로 이런 데 있는 것 같다. 전혀 몰랐던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되고 짧게나마 사귀어 보는 것. 우리 얘기도 들려주고 그들의 얘기도 들어보는 것. 바로 사는 재미도 이런 데 있는 게 아닐까.

사람 만나는 재미를 알아가다 보니 금전적인 문제에 대한 걱정은 많이 누그러들고 '사람이 보고 싶다' '사람이 와서 이곳에서 쉬어 갔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연유로 미지의 그 누군가를 위해 오늘도 집 안을 단장하고 새롭게 꾸며보고 있는 것이다.

분당 아파트는 정리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직 펜션이 내 집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약간의 불안감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분당에 집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앞으로 펜션을 마련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방은 서너 개 정도면 알맞고, 돈에 연연하지 말라. 그리고 초기 비용이 많이 들지만 아깝다고 생각 말고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것. 무엇보다 손님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개방감도 중요하다. 일을 벌이기 전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많은 정보를 모으는 것도 필요하다.
아- 이제 청계호숫가에 불이 하나 둘 밝아지면 우리집 마당도 환하게 불 밝혀야지. 지나가던 나그네 우연히라도 만나 말이나 섞어보게.田


안성현<하늘가람 펜션지기> 031-536-0303 www.skygar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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