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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편에 연못을 만들기로 한 것은 연을 심고 싶은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향집 장독대 옆에 있던 우물이 참으로 그리웠기 때문이다. 아무리 길러내어도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던 우물 안 돌담에 사철 청록빛으로 싱싱하던 이끼가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라女蘿라 불리는 이끼는 습기가 많은 음지에서 자라는 선태식물蘚苔植物이다. 줄기와 가지 잎의 구별이 없는 엽상체로 지상의 식물 중에서 가장 연약하며 생존 방식이 원시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끼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도 드물다는 것을 산골생활에서 알게 되었다.

눈도 비도 내리지 않던 지난 겨울, 이곳 산골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마당에 놓인 바윗돌에 낀 이끼 때문이었다. 오랜 가뭄에 까맣게 말라죽었겠구나 싶었는데도 물을 한 바가지 뿌려주면 금세 파랗게 살아나는 생명력에 감탄을 하며 즐겨 바라보았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도, 엄동설한에도 죽지 않는 생명.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생명의 신비가 아닌가.

물론 밤사이 내리는 이슬과 안개, 서리로 생명을 이어갈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건조했던 밤에도 이끼는 잘 살아 있었다. 불현듯 고향집 우물이 그리워진 것도, 연못이라도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옛날 아버지는 집안 아재들과 우물을 팠다. 천릿길도 한 걸음에서부터 시작되듯 한 삽의 흙을 떠내는 것으로 우물 파기는 시작되었다. 마을 어른들의 안목으로 물길이 가늠된 터에 넉넉하게 자리를 잡아 둥글게 파 내려가던 우물터. 삽과 곡괭이가 연장의 전부였으니 얼마나 힘든 작업이었을까. 삽으로 떠넘겨지던 흙을 줄을 매단 용기에 담아 퍼내기를 여러 날, 어지럼증이 나도록 가마득하게 내려다보이던 땅 속에서 물이 나온다는 아버지의 외침이 울려왔을 때 가족 모두 환호를 질렀다.

샘물이 솟는 바닥에 갓 베어와 껍질이 곱게 벗겨진 소나무 둥치 네 개가 적당한 넓이의 사각으로 틀이 짜여 놓여졌다. 우물 井자가 생겨난 연유다. 물론 우물이 완성된 땅 위에도 井자의 테두리가 놓여진다. 시멘트가 귀한 시절이다. 소나무의 수명은 물 속에서도 몇 백 년을 넘긴다고 하니 우물물엔 늘 솔 향이 깃들었음직도 하다. 바닥에는 깨끗한 자갈이 깔리고 소나무 틀이 놓인 둘레를 따라 돌담이 쌓아올려졌다. 둥글게 튼실하게 고르게 쌓아 올린 그 돌담에 언제부터 이끼가 자랐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그렇게나 무성하던 청록빛 이끼는 내 기억 속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한여름, 십리 길 오일장을 다녀오신 어머니와 들일을 하고 들어오신 아버지는 맨 먼저 우물물을 찾았으며 참 좋은 물맛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때로는 뭉게구름 떠 있는 푸른 하늘이 들어앉고, 가끔은 달님도 내려와 말갛게 몸을 씻고 가던 우물. 이른 아침 두레박을 드리우면 물안개 속에 참으로 싱싱하게 둘러 있던 이끼의 검푸른 몸. 그때는 몰랐다. 사람이 만든 우물이 자연과 얼마나 멋진 어울림이 될 수 있는가를. 한갓 부엌 가까이에서 먹을 물을 길러 올리기 위한 편리함으로만 알았을 뿐, 사람이 사는 집에 땅의 기운을 뿜어 올리고 생명을 이어 주며 집을 돋보이게 하는 가장 멋진 조형물임을 그때는 몰랐다.

무섭도록 엄한 어머니 곁에서 스무 살 내 젊음이 암울하게 느껴질 때마다 큰 대야가 넘치도록 우물물을 길어 올렸다. 흘러서 흘러서 대처로 나아가라고. 그곳엔 꿈을 펼칠 수 있는 길이 있고, 원하는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우물 안 이끼의 꿈은 헤아릴 줄 몰랐다. 햇살 아래 붉은 장미꽃만이 사랑과 열정이 아님을, 우물 안 여라의 꿈은 영원한 그 자리 석수石水의 사랑임을 깨닫지 못했다.

날을 잡아 연못을 팠다. 포크레인은 삽시간에 내가 원하는 넓이와 깊이로 거뜬히 흙을 떠내고 둘레에 바윗돌을 앉혀주었다. 우리집 연못 터는 가뭄에도 늘 물이 스며나는 곳으로 옛날 이곳에 살던 사람의 우물터였다고 하니 잘 한 일인가 싶다. 다행히 옆으로 언덕을 따라 산물이 흘러내리는 도랑이 있으며 연못 옆에는 고목이 된 모과나무 한 그루와 작은 시누대가 번식을 하니 보기 좋은 어울림이다.

이틀 동안 작업을 끝내고 포크레인도 일꾼들도 모두 돌아갔다. 때맞춰 비가 내린다. 연못가 바윗돌 위에서 우산을 받쳐 든 나는 사무치게 아버지가 그립다. 고향집에 우물이라도 남아 있으면 금방이라도 달려가 보련만 없어진 지 오래다. 시골마을에 양옥이 들어서고 수세식 화장실과 세탁기가 들려지더니 집집마다 우물은 메워졌다. 대신 산골의 물을 수도로 연결하여 입식부엌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며 유난히 세제를 많이 사용하는 시골사람들은 부지런히 세탁기를 돌리며 산다. 우물과 두레박과 냇가의 빨래터를 잊은 지 오래다.

우리집 연못 둘레에도 세월이 와서 머물고 검푸른 이끼가 자리를 잡을 것이리라. 이곳에서 나의 삶은 석수의 사랑을 기다리는 이끼의 열정과 강인한 생명력을 닮은 삶을 살리라. 그대 女蘿의 꿈이여.田


장문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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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글밭을 일구며] 女蘿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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