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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정情이 있어야 '살 맛'이 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너무나도 각박하고 여유가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독립적이고 개인주의적으로 변했다.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물론 부모도 잊은 채 살아가는 사람도 꽤 많다. 가족 간의 대화가 부족하고 형제 간의 우애도 예전 같지 않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정이 엷어진 원인을 꼭 집어서 한 가지로 말할 수 없다. 먼저 우리나라는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사고와 행동 방식, 정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한때 '빨리빨리병'이 우리 사회를 대표했던 것처럼 이젠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에 우리 모두는 익숙해졌다. 거기다 물질 만능주의, 일등 제일주의, 계층 간의 위화감, 프라이버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위기 등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를 서서히 허물어 온 것이다. 여기에 인간 삶의 일부인 건축이 한몫 더한다. 특히 집의 구조가 그렇다.


지나친 프라이버시 강조가 문제

예전 우리네 집은 쾌적하지도 못하고 살기에도 불편했다. 각자 방이 있던 것도 아니고 거실이니 식당, 부부 방이라는 게 따로 없었다. 한 방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고 모든 기능을 다했던 탓에 눈만 뜨면 온 가족이 다 함께였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한데 어우러지고 끈끈한 정을 나누는 것이 쉬웠다. 청소하거나 집을 고칠라치면 온 가족이 합세하여 해결하는 것도 흔한 풍경이었다.

집의 구조는 방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이웃의 얼굴을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인사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이웃에 재미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으면 금방 알 수 있어서 모른 체 하기도 어려웠다. 별식을 만든 날에는 으레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는 보기 좋은 풍습도 있었다.

오늘날과 비교하면 모든 게 부족하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시절이었음에도 가족 간에, 이웃 간에 서로 나누고, 그 가운데 정이 넘치면서 여유롭고 풍요롭게 생활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되레 이런 것들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듯하다. 아무리 한 가족이라도 그저 나만의 공간에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기를 좋아한다. 이웃과 교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생활을 보호받는 것, 소위 프라이버시(Privacy)를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이다.

서양 건축에서는 프라이버시를 대단히도 중요시 한다. 건축을 처음 공부하던 때, 서양 건축 영역에서 유독 프라이버시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서양 건축과 우리네 건축의 가장 큰 차이점도 이 프라이버시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집의 형태나 구조가 이처럼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하는 서양 것을 따라가면서 우리 역시 '프라이버시 옹호론자'가 되었고, 그 결과 삭막한 가족과 이웃 관계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프라이버시 하면 아파트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아파트는 사각의 꽉 짜인 틀 속에 '부부방', '아들방', '딸방' 등 가족 구성원 각자의 방으로 잘 구분되어 있다. 아무리 작은 평수라도 방 구획은 정확하게 이뤄진다. 이렇다 보니 프라이버시를 지키기엔 그만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족 구성원 간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파트인人'들은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식사시간 외에는 얼굴을 보기 어렵다. 어쩌다 거실에 가족이 다 모여도 텔레비전에 빠져 진정한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식구가 예전보다 적음에도 좀처럼 한 가족이 함께 할 기회가 없다.

이웃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구조는 현관문만 닫아 두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차단 효과가 완벽하다. 그러니 구만리 먼 동네에 사는 것도 아니고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이웃이 있는데도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남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눈치볼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게 어디 사람이 사는 것인가!

편 가르기를 조장하는 아파트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에 이상한 풍조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나친 '안전장치'다. 물론 사회가 험악해지고 정보 유출 등의 사고가 빈번해지다 보니 이해가 되기는 해도 사람이 사는 집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가 싶을 때가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마구 회사를 드나드는 것이야 정보 유출이나 근무 환경을 해치기 때문에라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사람 사는 집을 지나치게 엄격한 경비를 하거나 동 출입구마다 비밀번호 키를 설치하는 것은 사람 사는 맛을 사라지게 한다.

원래 우리네 인심은 그렇지 않았다. 누구나 집을 방문하면 따뜻하게 맞았다. 심지어 구걸하는 사람이 온다 해도 문전박대하지 않았다. 웬만한 것은 서로 나누어 먹으며 이웃 간의 정을 돈독히 하며 살아온 것이 우리들이었다.

그런데 단지團地 정문에서부터 건장한 청년들이 경비를 서고 동 출입구에는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고 또 세대 현관에는 이중의 잠금 장치까지 설치하였다. 그러니 이런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나 구식에 익숙한 부모는 작동 방법을 몰라 아예 아파트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촌극도 벌어진다. 그런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안전해지고 살기 좋아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렇잖아도 삭막한 사회를 더욱 삭막하게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네들 끼리만의 동류의식이 지나쳐 위화감까지 조성되고 있다. 아파트 값 결정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네들만의 성을 만듦으로써 사회적 위화감을 조장하는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지나치다.

이러한 일이 단순히 자기네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 등 모든 인간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혼기婚期에 찬 자식을 가진 부모는 일부러 전세를 얻어서라도 그런 동네로 이사를 가기까지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어른들의 행태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요즘의 아이들은 아예 자신들이 사는 동네나 아파트 평수에 따라 미리부터 계층을 정해놓기까지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도 요즘의 세상살이가 각박해졌다고 하는데 이 아이들이 만들어갈 미래 사회는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마당에서 가족과 한데 어울려 살아보자

나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며 정답게 살았으면 좋겠다. 일부러라도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서 살붙이기 하는 습관을 길렀으면 좋겠다. 사회가 복잡하고 삭막하다는 것을 핑계로 자기만의 문을 꼭 닫지 말고 먼저 '나'부터 가족과 이웃을 향한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실천을 해 봤으면 좋겠다.

이를 쉽게 실천하는 좋은 방법으로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과 일을 만들 필요가 있다. 또 답답하고 삭막함의 상징인 아파트를 떠나 보는 것이 좋을 성싶다. 단독주택의 삶이라고 없는 정이 저절로 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독주택은 우선 구조부터 아파트와는 달리 마당과 정원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건축에서 마당은 대단히 의미 있는 공간으로 친다. 마당은 거실과 같이 공동의 공간이기도 하거니와 '화합의 공간'이다. 마당에는 텔레비전 대신 개, 닭, 토끼가 있고 텃밭과 정원이 있다. 이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가족이 모일 수 있다.

온 가족이 마당에서 집을 가꾸기 위한 여러 가지 작업을 같이 하면서, 힘을 합하기도 하고 일을 분담해 한 가지 목표를 완성해 나가는 가운데 애정이 싹트고 정이 두터워진다. 부모는 자식이 땀 흘리는 것을 보면 도와주게 되고, 자식은 힘든 일을 하는 부모를 보면 안타까워 저절로 손을 주게 된다. 이런 공동의 시간은 아파트 거실에서 하는 딱딱한 대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단독주택에서는 화젯거리가 얼마나 많은가. 봄이면 마당에 꽃이 예쁘게 피었다고 다들 웃음꽃을 피우고, 텃밭에서 갓 뽑아온 상추와 깻잎이 올려진 저녁 식탁 머리에서는 무에서 유탄생시킨 그 신비로움에 가족이 몇 마디씩 거들면서 음식 먹는 소리에도 정다움이 더해지게 마련이다. 또 갓 깨어난 병아리는 온 가족의 경사가 된다.

답답한 공간이 생활을 삭막하게 한다

설계를 하다 보면 참 안타까운 때가 많다. 한정된 대지에 최대한의 면적을 뽑아내야 하고 정해진 공간에 갖가지 기능을 가진 방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도 복잡하기 그지없는 각종 건축 관련 법규에 맞추어서 살기 좋게, 아름답게, 안전하게 설계해야 한다.

그러니 때로는 '뭐, 획기적이고 기찬 아이디어가 없나?' 하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볼 때도 있다. 대지나 평면을 부풀릴 수도 없는 일이고……. 여하튼 한정된 공간에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일은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타이트한 면적의 아파트 설계는 더욱 그렇다.

아파트 구조도 시대에 따라 많이 변했다. 불과 십여 년 전에 지은 아파트와 최근에 지은 아파트의 구조-평면은 너무 다르다. 바로 얼마 전에 건설된 아파트도 최근에 지은 것에 비하면 옛날 냄새가 물씬 풍긴다. 물론 실내 인테리어 수준이나 각종 전자제품, 가구 그리고 건축자재와 공법의 발달 탓이기도 하겠지만 평면 디자인에서 차이가 엄청나다.

그만큼 최근에 지은 아파트 평면은 공간 하나하나를 주거자 입장에서 편리하게 설계했다. 자그마한 공간을 잘 활용하여 수납공간을 만들어 요모조모로 편리하게 꾸민 실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기발하게 잘 꾸민 공간이라도 그 면적이 그 면적이다. 그 평수에 모든 것을 다 집어넣어야 하는데 없는 공간이 새로 생길 수는 없다. 그러한 집도 처음에는 살기에 편리한 것 같지만 곧 꽉 차고 만다.

사는 것이 어디 처음과 같은가? 살다 보면 살림살이는 늘어나고, 아이들은 금방 성장한다. 못 쓰게 된 물건은 버리기 아까워 쌓아 둔다. 아무리 차곡차곡 잘 정리하고 구겨 넣어 보지만 한정된 공간에 정리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살다 보면 그냥 대충대충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저 이쪽에 던져 놓기도 하고 한쪽에 내팽개쳐 두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러나 아파트라는 타이트한 공간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런 공간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취미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끼리 함께 할 일도 없다. 온종일 하는 일이란 텔레비전 보기나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니 가족이나 형제 간의 정이 싹틀 리 없고 특히 답답한 공간 속에서의 생활은 마음의 여유도 앗아가 더 삭막해져만 간다.

공간부터 넉넉하고 여유롭게 만들자

아파트에 비하면 단독주택은 여유로움과 넉넉함을 선사한다.
널려 있는 것이 공간이니 안방도 넓게 하자. 거실은 운동장만하게 만들고 바닥은 이중 구조로 낮추어 아늑하게 하자. 주방도 좋은 위치에 넓은 식당과 카페까지 곁들이고, 특히 화장실은 넓고 여유롭게 하자. 용변과 욕실을 분리하고 욕조는 큰 것을 설치하여 집 목욕탕의 행복감을 만끽해보자. 옷 갈아입는 장소를 따로 만들고 … 무엇보다도 아이들 방은 크게 만들자.

아무리 대형 평수의 아파트라도 자녀 방은 작다. 요즘 아이들은 살림살이가 많다. 침대와 책장·책상은 필수요, 컴퓨터에 피아노에 또 옷은 어찌 그리 많은지. 그러니 아이들 특히 금세 커 가는 놈들의 방은 넓고도 밝게 만들자. 아이들 방은 전망도 고려하여 방에서 바깥 경치를 바라보면 좋은 위치를 고르자. 아늑하고 은밀한 다락방도 만들어 꿈의 공간도 만들어 주자.

단독주택이 좋은 것은 무엇보다도 수납공간과 다용도로 쓸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것이다. 창고도 여기 저기 널려 있다. 주차장에도, 옥상에도, 계단 밑에도, 옥탑에도 그야말로 널려 있는 것이 수납공간이다. 계단 밑도 한두 군덴가. 게을러서 그렇지 찾아 쓰기로 말하면 수도 없이 많다.

차곡차곡 애써서 구겨 넣을 필요도 없다. 특별히 정리할 필요도 없어서 좋다. 여기 저기 던져 놓고 발에 걸려 쓰면 되니 얼마나 속이 후련해지는지 모른다. 여유 공간에 헬스장도 만들자. 역기와 자전거 등 운동기구를 들이고 탁구대도 놓자. 그야말로 아파트, 아무리 넓고 화려한 아파트라도 상상할 수 없는 여유롭고 넉넉한 생활이 아닐 수 없다.

이 삭막하고 각박한 세상에 할 수 있는 것이나마 제대로 하며 살아 보자. 직장에 나가서는 내 마음대로, 여유를 부리며 일할 수도 없고 남의 눈치를 아니 볼 수 없다. 그런 데서야 별 수 없이 꽉 막힌 채 살아가겠지만, '우리집'에서나마 여유롭고 넉넉하게 살아 보자.田


김인환<건축사, TAS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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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에세이/열세 번째 이야기] '넉넉한 삶'에 대한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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