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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길 좋다!"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저절로 나오는 감탄이다. 산골 어디를 가나 아스팔트 포장된 넓은 길을 거침없이 달릴 수 있으니 후련하고 시원한 마음에 우러나오는 말이다. 대다수의 농가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으니 길이 차를 불러들이고 차가 길을 만든 셈이다.

요즘 시골의 도로는 수확한 과일 상자를 가득 싣고 지나가는 트럭으로 붐빈다. 이곳 청도는 감을 나르는 트럭이 줄을 잇는다. 씨 없는 반시로 유명한 고장임을 보여 주는 광경이다. 가까운 밀양 얼음골엔 사과를, 경산엔 포도를 운반하는 트럭들이 저마다 바쁘게 도로를 달린다. 시골길이 좋아야 하고, 정작 농가에 자동차가 있어야 하는 사정을 알 수 있다.

온통 발갛게 익은 감으로 뒤덮인 이곳 산골에도 주말이면 감을 따러 도시에서 온 자녀들의 자동차와 감을 나르는 트럭으로 골목이 비좁다. 먹음직한 감을 가득 따 담은 경운기는 힘찬 동력으로 잘 포장된 산등성이 농로를 누비고, 집집마다 마당엔 산더미처럼 감이 쌓여 있으며 검게 그을린 산골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이곳은 아주 깊은 산골이었다. 일흔이 된 아랫집 할머니가, 열아홉에 시집올 때만 하더라도 마을 앞의 도로가 좁은 산길이었다고 했다. 앓는 아가를 업고 마을 뒤 산을 넘어 읍내 병원을 다녀오는 데 하루해가 걸렸다고 하니 그때의 사정이 가늠이 된다. 도로가 넓어지고 자동차가 다니게 된 것은 불과 이삼십여 년 전이다.

도시를 떠나 산골에 집을 지어 살고 싶은 내 꿈이 잘 이루어 진 것도 길이 좋은 덕분이다. 한 시간쯤 달리면 부산에 있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고 모임에도 참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편리한 길을 따라 대처로 떠나간 사람도 있지만 나는 편리한 길을 따라 산골로 돌아왔다.

길이 불편하던 시절 도시로 나간 사람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면 사람들은 절망으로 바라보았다. 돌아온 이도 자신의 삶을 후퇴로 여기며 어깨가 쳐졌다. 도시로 나가 명절날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고향집에 들어서야 잘 된 것으로 보아주던 시절이었다.
고향 산골을 찾아 들어온 지금의 나를 도시 친구들은 부러움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고향 친구들은 반갑게 맞아주고 있으니 삶을 바라보는 의식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모양이다.

이제는 돌아오고 싶은 길, 그러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서성이는 걸음들이 있을 것이다. 고향의 집을 비워 놓고 땅을 놀리고, 도시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사람들은 빨리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이 결실의 계절에 진홍빛 감을 뚝뚝 따는 손맛이 어떤 것인지, 빨갛게 익은 사과를 따고, 탐스런 포도송이를 손에 쥐는 맛을 느끼지 못하고 노는 손은 아깝다.

몇 해 전, 절친한 사이였던 할머니 몇 분이 젊은 시절 마음을 모아 작은 아파트 하나를 공동으로 구입하여 큰 아파트로 평수를 늘리며 여가를 즐겁게 지내는 것을 TV로 보았다. 틈이 나면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해먹고 놀이를 하며 노년을 외롭지 않게 지내는 모습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모임의 장소가 도시의 아파트가 아닌 텃밭이 있는 시골집이면 어떨까? 흙을 일구고 나무를 가꾸며 사는 일은 생각 보다 훨씬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이다. 그것은 생명을 키우는 일이며 목숨을 이어가는 값진 노동이기 때문이다. 생산이 생명이 되는 이유다.

씨를 뿌리고 가꾸며 힘이 닿는 만큼 밭일을 하고 감나무를 돌보며 지난해보다 더 굵어진 감을 따는 나의 산골생활은 즐겁다. 내 노동이 알찬 결실이 되어 거둬들이는 이 기쁨을 어디에 비할 것인가.

한 무더기 감을 따놓고 훤하게 바라보이는 강줄기를 따라 산기슭을 돌아나가는 길을 바라본다. 잘 포장된 길을 따라 과일 상자를 가득 실은 트럭이 달린다. 내 이름이 적힌 감상자도 서울로 달려가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다.
도시와 시골이 공존이 되는 길은 편리함의 목적과 생산을 위한 의미로 위대하다. 저 길을 돌아오는 걸음은 아름답다. 田


장문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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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글밭을 일구며]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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