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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03년도에 쓴 ‘팔매 던지기’라는 기사(전설이 되어 버린 팔매 던지기)가 있다. 그후 방송까지 타게 돼서 공연히 나는 동네 어르신들을 동원하느라 애를 먹었다. 당시 동네 어르신들이 촬영에 협조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여러 가지로 힘들었고 촬영하면서 깬 저수지 가 음식점의 유리창 값까지 변상해 주면서도 연신 굽신거리느라 힘겨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그 ‘팔매 던지기’가 방송에 나간 후로 해마다 가을 무렵이면 종종 타 방송사로부터 다시 방송 의뢰를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당시 촬영에 비협조적이던 어르신들의 태도도 180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사실 방송이 나간 후 ‘팔매’가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이 유명인사가 되었다. 장에 가도 ‘6시 내 고향’에 나왔다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고 전국에 흩어져 사는 친지들의 빗발치는 전화를 받으며 졸지에 연예인 취급을 받게 되었으니 어르신들이 달라질 수밖에…….

“기자 양반, 나 다시 한번 테레비에 나가게 좀 해주면 안 될까?”

“이런 게 있는데 취재 좀 안 할랑가?”

과거 도시에서 굴러들어 온 풋내기로 취급하던 마을 사람들의, 우리에 대한 태도가 변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취재거리 제보에도 적극적이 되었다. 나 역시 그 당시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 기사를 썼는데, 이젠 시골살이에 적응하다 보니 ‘팔매’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생겨서 보충 기사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었다.
사실 우리 동네에서는 ‘팔매 던지기’라는 말보다 ‘팽개치기’라는 말을 더 많이 쓴 다는 것도 방송이 나간 후에 알았다. 그리고 동네에 ‘팽개바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 일상 언어 속에서 ‘팽개치다’라는 동사가 주로 쓰이지 ‘팽개치기’라는 명사형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은 ‘팽개치기’라는 용어가 언어로 잘 쓰이지 않음을 뜻하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어 가는 가을이면 어린 시절 ‘팽개치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산다.

무엇인가를 힘있게 던지는 행위를 뜻하는 ‘팽개치다’라는 뜻 그대로 ‘팽개치기’는 들판의 참새들을 쫓기 위해 돌을 쉽게 날리도록 만든 ‘팔매’라는 기구를 말한다. 전에 쓴 기사에도 팔매 기구들을 자세히 소개했지만, 그때는 사진기가 없어서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을 이번에는 사진과 함께 설명을 다시 해보려 한다.

팔매 기구에는 흙팔매, 줄팔매, 망팔매, 후리채 등의 4종류가 있다. 이 4종의 팔매기구들은 보기에는 어설프지만 사용자의 연령순으로 배열을 한 것이다. 또 이 팔매 기구들에는 나름대로의 과학적 원리가 있고 그 위력도 대단하다.

흙팔매는 대나무 막대기 끝을 열십자로 쪼개서 논둑의 흙을 찍어서 던지는 것으로 힘이 약한 어린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구였다. 일손으로는 부족하고, 가을 농사로 바쁜 어른들에게 방해만 되는 아이들에게 흙팔매를 쥐어서 들판으로 내보내서 새를 쫓게 한 기구였다.

줄팔매는 Y자 모양의 휘어지는 나뭇가지에 노끈을 걸어서 그 사이에 돌을 넣어서 멀리 튕겨 나가도록 하는 기구인데 조금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처음 접하는 사람은 몇 번의 연습을 거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기구다. 이 기구는 순수하게 새를 쫓는 용도 이외에 높은 가지 위에 달린 열매를 따거나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편지를 담 너머로 배달하는 데에도 알맞다. 돌이 날아가는 성능이 위협적이어서 상상력을 더 확대해 보면 철제 무기가 발달하기 전 고대 부족들 간의 전쟁에서도 요긴하게 쓰였을 것 같다.

망팔매는 긴 대나무 막대기 끝에 모시 끈으로 망을 엮어서 돌을 집어넣고 원심력을 이용해 공중에서 휘휘 돌리다가 목표물을 향해 던지는 것이다. 먼 거리에 있는 표적을 맞히는 용도로 쓰였다. 이 망팔매에 돌을 넣어 던지면 적어도 120미터쯤은 가볍게 날아간다고 한다. 제법 힘깨나 쓴다는 사내들이 이 망팔매를 어깨에 둘러메고 들판으로 나서서 한바탕 팔매질을 하고 나면 동네 참새들이 한동안 조용했을 것이다.

후리채는 막대기에 굵은 새끼줄을 길게 꼬아서 연결한 것으로 채찍처럼 생겼다. 이 것을 머리 위에서 휘휘 돌리다가 반대 방향으로 내리치면 요즘 과수원의 새를 쫓는 대포 소리를 녹음한 소리만큼이나 위협적인 소리가 난다. 4가지 기구 중 유일하게 돌이나 흙을 사용하지 않고 기구 자체로만 이용하는 것이며 웬만한 테크닉이 없이는 절대로 위협적인 소리가 나지 않는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 허수아비만 외롭게 서 있게 되는 겨울이 오면 동네의 피끓는 사내들은 용골 모퉁이 팽개바위 아래에 모여서 줄팔매와 망팔매에 돌을 장전해서 팽개바위를 넘기는 시합을 했다고 한다. 또 멀리서 팽개바위를 향해 돌을 던져서 맞히거나 넘기는 시합도 했다. 팽개바위가 마주 보이는 건너편 길 아래에는 커다란 돌이 하나 놓여 있어서 거기 서서 팽개바위를 향해 팔매를 던졌다. 그 거리는 대략 200미터 이상이 되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신작로가 생겨서 그 돌이 없어졌는지 풀숲에 묻혀져 버렸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팔매로 팽개바위를 넘기는 시합은 마을과 마을 간의 대결로 발전해서 긴 엄동설한을 즐겁게 보내면서도 다음해 농사를 잘 짓기 위한 체력 단련의 한 방법으로 이용되었다.

“그것 뿐만이 아녀, 계백 장군이 군사들을 훈련시킬 때에도 저 팽개바위에다 팔매로 팽개치기를 했다고 하는 걸. 계백 장군 고향이 우리 동네인걸 보면 모르겠남.”

우리 동네 어르신들은 이제 앞을 다투어 내게 정보를 주는 정보원들이 되었다. 실제로 팽개바위는 산 중턱에 불쑥 튀어 나와 있는 것도 예사롭지가 않은데 새의 부리처럼 생긴 생김새마저 지상에서 돌팔매를 던져서 넘기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보면, 어르신들이 굳이 계백 장군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 팽개바위가 있는 아래쪽에 부여군에서 ‘계백 장군 무예촌’이라는 체험 학습장을 건립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계백 장군의 정기가 팽개바위에 서려 있다는 어르신들의 말을 믿어야 할 것 같다.田


오수향(och0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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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팽개치기' 한번 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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