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보기
 

밤사이 살짝 다녀간 소나기 한 자락에도 그 동안 더위에 단련된 대지는 식을 줄을 모르는데 그래도 입추가 지난 시골마을에는 어제와는 다른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 바람에 벼에 이삭이 고개를 내밀고 시골 농부의 용돈이 될 고추들이 붉게 익어가고 있다.

가을이 묻어나는 바람을 맞으며 ‘쌀바위 전설’로 유명한 미암사米岩寺를 찾아갔다. 부여에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고란사, 무량사 등의 유명한 사찰이 많다. 그런 사찰들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 역사적인 유물과 오랜 전통으로 이름을 얻고 있지만 미암사는 자연적으로 우뚝 서 있는 바위와 최근 새로 조성한 흔히 ‘와불’로 알려진 석가모니 열반상으로 부여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사찰이다.

미암사에 이르자, 실내에 고이 모셔진 불상이 아닌 노천에서 모로 누워 세상을 달관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와불상부터 눈에 들어왔다. 흔히 사찰에는 사람을 압도하며 경외심을 강요하는 거대한 조형물들부터 만나기 마련인데 미암사의 와불은 학교에서 돌아온 자식을 낮잠에서 막 깨어난 얼굴로 맞이하는 엄마의 익숙한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누워있는 부처님에 앞에 서니 금방이라도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응, 너 왔구나’ 하며 일어나 앉으며 ‘밥은 먹었니?’ 해줄 것 같은 일상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부처님 모습이었다.

미암사를 돌아보는 동안 내 귀에는 ‘어라, 부처님이 주무시고 있네, 그 부처님 참 거시기하게도 누워있네’ 하는 소리도 들렸다. 휴가의 막바지를 즐기러 온 것 같은 한 떼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부처님한테 섹시하다고 하면 실례이겠지’ 하며 웃는 소리도 들려왔다. 쌀바위를 지긋하게 올려다보며 누워있는 와불상이 있는 미암사는 신선한 상상이 있는 절집인 것 같다. 더구나 미암사에는 따로 대웅전이 없고 눕혀 놓은 부처님의 몸속을 개방하여 법당을 모셔놓았다. 얌전하게 포개진 부처의 발바닥 쪽으로 돌아서면 바로 와불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몸속에는 일반 사찰과 다르지 않은 법당이 있어서 비로소 종교적인 신성성이 느껴졌다.

누워 있는 부처님을 보고 나오면 눈앞에는 ‘미암사’가 유래한 거대한 하얀 바위가 우뚝 서있다. 과연 막 바심(타작)을 해서 껍질을 벗겨 놓은 하얀 쌀알 모양의 바위는 전설이 깃들지 않을 수 없는 위용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전설의 내용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쌀 바위 전설과 다르지 않음은 아쉬운 점이다.

우리 나라의 바위에서 쌀이 나왔다는 전설들은 주인공이 한결같이 바위나 굴속에서 불공을 열심히 드렸더니 하루 먹을 양 만큼의 쌀이 나왔는데 욕심을 부려서 쌀이 나오는 바위틈이나 굴속을 파냈더니 피가 흘렀고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유형이다. 미암사 쌀 바위 전설의 주인공인 유씨 할머니만큼은 비슷한 유형의 전설의 내용에서 예외적으로 하루치만 나오는 쌀의 양에 만족하고 감사히 소박하게 살았더니 자자손손 잘 살았다는 해피엔딩이었다면 하는 역발상을 해보았다. 그랬더라면 지금도 미암사의 쌀바위 어느 틈에서 쌀이 나오고 있지 않을까?

지금에야 쌀에 대한 포한이 풀려서 쌀이 남아도는 세상이 되었지만 우리 민족에게 쌀은 종교였다. 미암사만 해도 쌀알처럼 생긴 바위가 산중턱에 있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유감 주술類減呪術로 공을 들이고 소원을 비는 신성한 장소에 부처님은 나중에 모신 경우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서려있는 쌀바위가 있어서인지 미암사가 위치한 내산면은 구룡 평야에서 생산되는 맛좋은 쌀이 나기로 유명한 곳이다.

요즘 미암사는 토속 신앙의 소박함과 정통 불교의 맥을 이어 불자들에게 의욕적으로 불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불사가 한창이다. 미암사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점심 국수 공양도 제공하고 있다. 이왕이면 쌀바위의 전설에 따라 하얀 쌀밥 공양을 제공하려고도 했지만 쌀밥에 따르는 반찬들을 준비해줄 인력이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절집이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서 환경오염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어서 간단하게 잔치 국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여는 백제의 찬란한 문화 유적과 잘 알려진 관광지가 많은 곳이다. 뛰어난 예술가의 솜씨가 느껴지는 불상들도 많은 곳이다. 하지만 때로는 권위적인 신성성에서 벗어나 장독대에서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비손을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문득 그리워질 때는 미암사의 누워있는 부처님과 쌀바위에 서린 염원을 찾아오시길.田


오수향(ocho290@hanmail.net)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전원일기] 신선하고 발칙한 상상이 있는 와불臥佛 보러 오세요-가을로 떠나는 여행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