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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급변했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의 주거 형태와 사회 환경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주거 형태는 역사 이래로 단독주택이 주류를 이루다가 아파트생활로 대변혁이 일어났고, 사회 환경은 농경에서 산업시대로 급변했다. 이와 같은 주거 형태와 사회 환경 변화는 우리의 생활 패턴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스스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웬만한 것은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텃밭을 가꾸거나 된장과 고추장 등을 직접 만들어 먹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집 안의 어지간한 대소사 또한 온 가족이 힘을 합하여 해결했다. 그러나 아파트라는 협소하고 마당이 없는 공간에 살면서부터 된장 담그기는 물론 텃밭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아파트라는 곳에서의 생활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은 직장과 각자의 일에 매달려 한가로이 그런 일을 할 시간조차 없다. 그래서 D.I.Y. 즉 스스로 직접 만들 수 있는 제품까지 등장하고 있다.

DO IT YOURSELF!

아무리 아파트가 그렇고 세태가 바뀌었다지만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것인가!

자신의 일은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하고 또 가족의 건강과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을 남에게 특히 전문가에 맡기면, 편하기도 하려니와 잘 만들어 주기도 한다. 또 상치나 된장 등이 몇 푼이나 한다고… 그런 것을 직접 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건강이나 다른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직접 하면 좋은 점이 많다. 우선 돈을 절약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다. 꼭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직접 하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요즘처럼 인건비가 비싼 세상에는 그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불량식품이 횡행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또 D.I.Y.를 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다. 남에게 맡기면 순전히 제멋대로다. 도대체 '임기응변'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일을 하다 보면 이리저리 모양을 살펴가며 고치기도 하고 궁리해야 할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자신만의 생각과 아집(?) 탓인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싫어한다. 차라리 내 눈높이에 맞춰 내 생각대로 만드는 것이 편하고 좋다.

D.I.Y.의 즐거움과 가족의 화합

그러나 이런 것보다 D.I.Y.를 하는 더 크고, 중요한 이유가 있다. 뭐니뭐니 해도 'D.I.Y.를 하는 즐거움-낙樂과 가족의 화합'이다.
통나무를 자르는 유별난 취미를 가진 부시 대통령처럼 각자 자신이 즐겨할 만한 일이 있다. 음식이나 옷을 만들기, 집을 꾸미거나 간단한 가구 만들기, 텃밭이나 꽃밭·정원 가꾸기 등은 세상의 어느 즐거움보다 크다.

D.I.Y.를 하면 때로는 시간이 더 걸리고 약간은 어설플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손으로 하나하나 이루어 가는 일이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바쁜 일상 중에 시간을 내어 '무엇을 만들 것인가'하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어릴 적 소풍가기 전날 잠이 잘 오지 않을 때처럼 어서 일할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집에서 쓸 물건을 만들거나 꽃밭 등을 가꾸는 일은 가족 화합을 위해서도 좋다. 가족끼리 서로 도우며 함께 하는 일은, 가족 간의 정이 메말라 가는 삭막한 아파트생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가족이 함께 목재를 나르고 삽질과 망치질 등을 하다 보면 평소와 다른 가족애를 느끼게 된다. 함께 일하다 보면 서로 땀 흘리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힘든 일을 서로 하겠다며 챙기고 아껴주는 마음은 평소의 딱딱한 대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게 직접 만든 정자나 정원에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텃밭에서 가꾼 고추와 상추를 곁들여 음식을 먹는 일은 그 어떠한 즐거움이나 행복과 비교할 수 없다. 또 몸소 부대끼고 움직이는 일은 건강에도 좋다. 가족과 함께 즐거움으로 하는 작업(?)은 노동이 아닌 운동이요, 건전한 가족의 화합 시간이다.

닭장, 개집, 정자 등 만들기

어렸을 때 닭장, 토끼장 등을 만들던 추억을 되살려 닭장을 만들었다.
어느 해인가 닭장을 짓고 싶어 마음은 급한데 속히 봄이 오지 않았던 때와 언 땅이 녹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는 목재나 철망, 못 등 자재가 풍부하지도 못했고, 톱이나 망치 등 연장도 변변치 않았다.
그런 닭장을 아들과 함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만들어 보았다. 닭장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재비는 불과 몇 만 원에 불과하니 어린 시절의 용돈에 비하면 너무나 여유롭고 풍족하다.

또 금년 봄에는 진돗개네 집도 다시 만들었다. 처음 입주하면서 급하게 지은 개집이 제 위치와 어울리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바닥이 있는 개네 집을 지어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바닥(거실)만 만들어줄까 했는데 잠잘 곳을 만들어주는 게 좋겠다는 아내의 말에 따라 침실을 드리고 모양을 생각하여 핸드레일까지 붙였다. 완성된 모양은 너무 화려하여(?) 이런 개집은 본 적이 없다고 특허를 내야겠다고들 한다.
얼마 전에는 온 가족이 총 동원되어 정자를 건축(?)했다. 솔직히 정자는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가 할 수 있는 D.I.Y.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만들기를 좋아하는 성격에 별 것이 아닐 거라며 대들었다. 그런데 정작 일을 벌이고 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들과 딸, 아내까지 합세한 끝에 거의 한달 만에 완공을 보았다.

이 밖에 연못과 조경시설 등도 직접 만들었다. 이 모두를 기술자에게 맡겼다면, 아마 재미도 모양도 없이 자기 멋대로 대충 끝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의 의견을 반영하고 가족과 함께 땀 흘려 만든 탓인지 남이 만들어 준 것보다 더 좋고 마음이 뿌듯하다.

꽃밭, 텃밭, 정원 가꾸기

닭장 등을 만드는 것에 비하면 텃밭이나 꽃밭을 가꾸는 것은 장난(?)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정원을 가꾸고 텃밭, 꽃밭을 만드는 즐거움과 재미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이런 일들을 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밌다. 특히 텃밭을 가꾸면 고추, 상추, 배추 등은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더욱이 요즘처럼 환경 오염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직접 길러 먹으니 믿을 수 있고 재미도 있다. 웬만한 텃밭이라면 계절마다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채소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 텃밭 가꾸기는 여자들이 좋아하지만 땅을 갈아엎거나 힘든 일은 힘센 아들이나 내 몫이다. 새봄이 오거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씨나 모종을 사다 심다 보면 계절을 몸소 느낄 수 있어 좋다. 특히 계절마다 변하는 정원과 철마다 피는 꽃들은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준다. 봄이 막 시작되면서부터 설중매, 진달래, 앵두꽃, 개나리, 철쭉, 장미 등이 연달아 피어나고 지금은 나팔꽃, 채송화, 봉숭아가 한창이다. 이어서 분꽃, 과꽃, 도라지, 다알리아, 백합, 해바라기, 앵소화 등 이름도 모르는 여름 꽃이 만발하고 곧이어 코스모스, 국화가 가을을 알려줄 것이다. 이 같이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꽃들을 기르는 것은 색다른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주고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되살려 준다. 일부러 화원에 가서 계절에 맞는 꽃들을 사다 꽃밭에 심어 보면 스스로 계절을 만들어 계절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삶 즐기기

대학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해외 근무를 한 적이 있다.
그곳은 계절의 변화가 별로 없는 곳이었는데 귀국 후 곧 가을이 오고 겨울과 봄을 맞으면서 계절의 변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스럽게 깨달은 적이 있다. 당시 오랜만에 본 우리나라 가을하늘과 가을바람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또 오랜 겨울 끝에 맞던 새봄의 생동감이라니… 항상 이런 환경 속에서 사는 우리는 이 같은 계절 변화의 소중함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늘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저 때가 되니 봄이 오고 가을이 오는가 생각한다. 그렇지만 계절을 만들어 가면서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정말 삶은 힘들고 어렵다. 우리는 늘 바쁘고 각박하다.
나 자신보다는 아이들과 가족을 위하여, 진정한 삶의 즐거움보다는 생활과 돈만을 위하여 늘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집이라는 것도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보다는 그저 살아가기 편한 것이나 부동산적인 생각이 앞선다.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녀나 부동산은 귀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인생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길고 오래라고… 이제는 나 자신과 나의 삶도 중요하지 않은가?

정말 자녀와 돈도 중요하지만 그때 그때의 자신의 삶은 더 귀하고 소중하다. 아무리 아파트가 편하다고 해도, 부동산적인 가치가 높다고 해도, 우리는 그 곳에서의 삶이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가지만 포기하거나 용기를 낸다면 누구나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만들어 보라. 온 가족이 삽과 망치를 들고 우리의 집을 가꾸어 보라. 금방 가족의 표정과 웃음소리가 달라지고, 금방 이제까지와는 다른 가족 간의 사랑이 싹틀 것이니…….

SO, DO IT YOURSELF WITH YOUR FAMILY!田


글 김인환<건축사, TAS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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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에세이-일곱번째 이야기] D.I.Y로 인생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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