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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를 따기에는 이르고 논에 심어 놓은 벼들도 성장기에 들어선 요즘 시골 마을은 농사일도 한숨 쉬어 가는 때입니다. 때 맞춰서 시작된 장마로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침개 부쳐 먹으며 노는 일에도 싫증이 난 한가한 저녁이었습니다.

우리 동네 여인들 중에서 ‘놀기’라면 한가락하는 네 명의 멤버가 모였습니다. 그날은 네 명 외에 동네 분의 친척인 중국 동포 2세인 김분녀(54세) 여사까지 껴서 한껏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모처럼 고향을 찾은 중국 동포인 사촌과 저녁을 먹던 동네 여인들은 김분녀 여사의 노래방에 가자는 제안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중국에서 온 사촌을 우리나라 60년대 농촌 풍경 속의 사람으로 대했던 김부자(55세) 여사도 놀랄 수밖에요.

김부자 여사는 중국에도 노래방이 있느냐고 물어 보려다가, 그동안 한국 사람들이 중국을 너무 뒤떨어지게 여긴다며 김상녀 여사가 기분 상해했던 터라 그만 접고는 노래깨나 한다는 동네 여인네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김부자 여사는 사촌 김분녀 여사가 노래방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으로 한국 사촌들에게 자격지심을 만회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김분녀 여사에게 동네 여인네들을 동원해 노래방의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고향을 방문한 동안 ‘노래방’이라는 문명의 혜택도 실컷 누리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음치에 춤치인 저까지 동원되어 준 것은 순전히 돌아오는 길에 음주를 하지 않은 운전기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김부자 여사와 김상녀 여사, 동네 여인 A, B, C와 운전기사이며 동네 여인 D인 제가 노래방으로 향했습니다.

“야, 중국산인 우리 사촌이 한국의 시골에도 노래방이 있느냐고 무시하더라. 서울에 있는 친척들은 노래방에도 자주 데리고 갔는데 시골에 있는 친척들은 밭일만 시킨다고 불만이라는 거 있지. 그래서 내가 오늘 노래방에서 우리 중국 사촌의 기를 팍 죽여야 하거든. 그러니까 분위기들 잘 잡아, 알았지.”

김부자 여사가 노래방에 들어가기에 앞서 동네 사람 A, B, C에게 단단히 일렀습니다.

“그리고 너는 우리 잘 데려다 줘야 하니까 술은 먹지 말고 안주만 먹어.”

동네 사람 D인 저에게는 이렇게 이르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아 참, 우리가 간 곳은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데가 아닌 ‘단란주점’이었습니다.
무대에는 은은한 조명이 흐르고 사람들은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노래 가사책을 뒤적일 무렵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거 안 봐도 번호를 다 외우지요.”

리모콘의 번호를 꾹꾹 누르던 김분녀 여사의 손에는 어느새 마이크가 들리더니 무대로 나가서 서슴없이 노래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최진희의 〈가져 가〉라는 노래를, 주현미 노래풍으로 부르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면서도 능숙한 몸 동작이 단련된 솜씨였습니다. 그렇게 연거푸 두 곡을 부르고 난 후에야 마이크가 김부자 여사에게 넘어왔습니다. 김부자 여사 역시 누구에게 지지 않는 노래 솜씨로 한 곡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 A, B, C도 차례로 노래를 불렀지만 어쩐지 중국에서 온 김 여사보다는 2퍼센트 부족한 느낌이었지요.

김부자 여사와 동네 사람들의 춤과 노래는 흥이 나서 부르는 노래 가락에 맞춘 막춤 수준이었지만 중국 동포인 김분녀 여사의 노래와 몸 동작은 살릴 때 살리고 꺾을 때 제대로 꺾어 주는 세련된 솜씨였습니다. 거기에 김분녀 여사는 우리가 흔히 다 아는 국민 애창곡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최신 트로트와 7080세대의 노래까지 거침이 없었습니다.

어느새 김분녀 여사는 마이크를 독점하고 무대를 장악해 버렸고 김부자 여사와 동네 사람 A, B, C, D는 할 말을 잃고 김분녀 여사의 팬이 되어 박수만 치고 있었습니다.

“혹시 중국 밤무대 가수 출신 아니야!”

“이제 한국 나온 지 두 달된 거 맞아?”

“우리가 월드컵도 떨어졌는데 중국한테까지 기죽어서 되겠나? 안 사장 오라고 전화 좀 해라.”

보다 못한 김부자 여사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젊은 날 한때를 관광 버스 가이드로 전국을 유람하고 다녀서 웬만한 가무는 다 섭렵하고 있는 매운탕 집, 안 사장이 한국 사촌 팀의 구원투수로 불려왔습니다. 그리하여 한국과 중국 사촌 간의 노래방 열전, 제 2라운드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안 사장과 김분녀 여사의 실력이 비슷해서인지 어느새 듀엣이 되어 어깨동무까지 한 채로 노사연의 〈만남〉까지 불러 제치며 오히려 김부자 여사와 동네 사람들에게 더 약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단지 ‘동네 사람 D이며 운전기사’에 불과한 제가 더 열이 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일단 맥주를 한 잔 들이키고는 김부자 여사와 동네 사람들에게 연거푸 맥주잔을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생각이 나는 국민 애창곡들을 찾아 예약 버튼 눌러 놓았습니다. 술기운에 제가 김부자 여사의 팔짱을 끼고 〈남행 열차〉를 신나게 부른 다음 동네 사람들을 무대 위로 끌어내 〈찔레꽃〉,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무조건 큰 소리로 불러야 한다고 쿡쿡 찔렀습니다. 다시 맥주잔을 돌리고 마시며 마이크를 김분녀 여사와 안 사장에게서 빼앗아 와 김부자 여사와 동네 사람들에게 안겼습니다. 노래가 끝나면 맥주를 권하고 마이크 들이대기를 반복하자 우리 팀에게도 승부욕이 되살아났습니다. 김 분녀 여사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노래에 취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한데 어울려서 주거니 받거니 노래의 주술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한 시간을 더 놀 것인지, 서비스 타임에서 끝낼 것인지 의견이 분분할 무렵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온 사촌 동상(동생), 중국 노래 좀 한번 해봐.”

김부자 여사의 한 마디에 김분녀 여사가 다시 마이크를 잡더니, 중국어 특유의 사성四聲이 간드러지는 무반주 노래 가락에 손과 발, 시선까지 완벽한 중국 춤사위를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너울너울 날아갈 듯, 치마자락이 살짝 들릴 듯 말 듯, 손목과 손가락이 따로 노는 듯 오묘한 춤이었습니다. 빠르고 요란한 노래 가락에 젖어 있던 사람들의 가슴에 짜한 전율이 흐르는 듯, 모두들 숨도 크게 못 쉬고 김분녀 여사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가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국적인 가락에도 그토록 가슴이 저며지는 듯 정한情恨이 밀려드는 일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김부자 여사도 동네 여인 A, B, C도 넋을 잃은 채 중국 가락에 젖어 들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남편이 돌아가고 내가 마음을 못 잡아서 춤을 좀 배웠습니다. 중국에서는 여자들이 춤 배우러 다니는 일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동네 사람들끼리 관광 다니며 흥에 겨워 멋대로 부르고 추던 가락과 제대로 배운 가무가 비교가 되겠습니까?

김분녀 여사의 중국식 가무에 실린 정서가 국경을 넘어 한국 여자들에게도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여자라서 서럽고, 여자라서 한이 많은 탓을 노래 가락에 묻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을 ‘음주가무에 능한 민족’이라고 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역시 음주가무가 생활화된 정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밤이 이슥해져서야 여인들은 노래방에서 나왔습니다.

“얼라라, 운전기사가 취해 버렸으니 우리는 누가 태우고 간댜!”

시골 마을에 대리 운전기사가 있겠습니까? 술 취한 운전기사의 남편이 한 밤중에 불려올 수밖에요.田


오수향(ocho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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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한국 사촌 vs 중국 사촌의 노래방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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