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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기르는 작은 즐거움

나는 어려서부터 새와 물고기, 애완견, 닭 등 동물 기르기를 좋아했다. 화사한 봄날에 어미 닭을 따라다니는 귀여운 병아리 모습을 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단독주택에 살고 싶었던 주된 요인 중의 하나도 바로 동물을 기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편하고 살기에 좋지만 어떻게 귀여운 병아리들을 기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랴? 그래서 탈아파트를 하여 내 집을 짓고 맨 처음 한 것이 닭장을 짓는 일이다. 지금은 처음 입양했던 놈들과 그 2세들을 기르고 있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닭을 기르거나 동물을 기르는 일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 그런데 닭이 알을 품어 병아리가 탄생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다. 살림에 보탬이 되지는 않지만 괜히 마음이 풍성하고 즐겁다.

서울이라는 데서 닭을 기른다?
나는 매일 아침 '꼬끼오∼' 하고 울어대는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난다. 복잡한 도시에서, 그것도 요즘과 같은 시대에 서울에서 닭 울음소리를 듣는 것은 생경하기도 하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시골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아득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닭들도 경쟁을 일삼는다. 새벽을 알리는 닭의 첫 울음 소리가 울리면 여기저기서 서로 더 큰 소리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마치 "야! 나도 일어났다∼. 모두, 일어들 나거라"는 듯이 목청을 높여 울어댄다.

하여간에 닭이라는 놈들은 부지런하다. 어떤 때는 새벽 4시경에도 울기 시작하여 주위에서 뭐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놈들은 전형적인 '아침형 동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저녁에는 7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잠자리에 찾아들고 새벽 5시경이면 어김없이 깨어난다.

그러니 놈들을 돌보고(모이와 물 주기) 간단하게 청소해 주려면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놈들의 노는 모습을 즐기기 위하여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일찍 일어나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놈들을 돌보다 보면 마냥 즐겁다.

닭에 관한 추억

아주 어렸을 때 넓지 않은 우리 집에서 닭을 기른 적이 있다. 지금처럼 닭이나 달걀이 흔하지 않던 그 시절에는 달걀은 소풍 등 특별한 때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 달걀을 어느 날인가 "이것은 엄마를 주어야 한다"며 막 낳은 달걀을 들고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막내동생이 큰 소리로 외치며 달려오던 생각이 난다. 어머니를 생각했던 그 어린동생이 갸륵하다고 지금도 이야기하곤 한다. 어린 마음에도 평소 가족이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던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또 닭을 보면 내가 어렸을 적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도 떠오르곤 한다. 달걀도 귀한 음식이었는데 닭이야 오죽했으랴. 당시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아버지를 위하여 닭을 잡았는데 오랜만에 고기 냄새를 맡게 된 온 가족과 특히 허기진 아버지가 부엌을 기웃기웃하시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아프다. 지금이야 닭을 언제나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시절이지만…….

이랬던 내가 당시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들어 직접 닭을 기르고 있다. 그것도 사치스럽게 잡아먹으려 하거나 돈벌이 목적이 아닌 취미로 말이다.


엄마 닭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

엄마 닭이 병아리를 낳기 위하여 알을 품는 모습은 가히 놀랄 만하다. 닭은 20일 동안 알을 품는데 그 동안 지극히 헌신적이다. 알을 까기 위하여 20일 동안을 거의 먹지도 않은 채로 꼼짝하지 않고 둥우리에 앉아 알을 품는다. 옆에서 다른 닭이 무엇을 하든지 심지어는 적이 나타나도 알을 품는 데 소홀함이 없다.

아침과 저녁으로 두세 번 자리에서 나와 식사를 하고 용변을 본 다음 온 종일 꿈쩍도 않고 알을 정성스럽게 품는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을 텐데 균등하게 온기를 전달하기 위하여 규칙적으로 방향을 돌려가며 품는다. 혹시 적이 접근하는 기미가 보이면 나름대로 무서운 자세를 취하고 앙칼진 소리도 지른다.

그렇게 20일을 정성스럽게 품으면 병아리가 한 마리씩 알을 깨고 나오는데, 그 나오는 모습 또한 경이롭다. 갓 태어난 병아리는 한 동안 자세를 잡지 못하다가 곧 일어나 엄마 품을 찾아간다. 엄마 닭은 병아리들을 아주 정성스럽게 돌본다. 이리저리 뒤적이며 모이를 찾아 엄마 특유의 소리를 내면 어느새 여러 병아리들이 엄마 주위로 몰려든다. 날씨가 차갑거나 적이 나타나면 얼른 날개 속에 병아리 자식들을 감추고 보호하는 모성 본능이 놀랍다.


닭네 집 건축하기

내가 집을 건축하고 처음 맞은 봄에 한 일이 닭장을 짓는 일이다. 닭장을 지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고 하루 속히 날씨가 풀리기만을 기다려 아들과 함께 닭네 집을 건축하였다. 거창한 설계까지는 아니어도 세 칸의 닭네 집을 만들었다. 101호에는 백자보, 102호에는 적자보, 103호에는 토종닭 그리고 202호에는 잉꼬네 집, 203호에는 토끼네 집이다.

어린 시절 좁은 마당 구석에 자재도 풍부하지 못하여 엉성하게 지었던 닭장에 비하면 초 호화판 닭 맨션이다. 종자가 다른 것들끼리 모두가 한 방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식구들끼리만 살 수 있도록 독립된 집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야 쾌적하기도 하고 혼혈을 방지할 수 있다. 위치도 거실에서 가장 잘 바라보이는 곳을 택하여 집에서 보기도 좋게 배려하였다.

빨리 닭 네 집을 지어 예쁜 닭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날씨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일과 목재와 철망 등을 준비하는 것은 여간 즐거움이 아니었다.


닭 관리

닭은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닭을 관리하는 것도 재미있다.
내가 기르는 닭은 30, 40마리였던 때도 있지만 지금은 백자보, 적자보 한 쌍씩과 금계가 있고 이번에 태어난 병아리가 10여 마리 있다.

숫자를 늘리려는 것은 아닌데 병아리를 낳으면 갑자기 가족이 늘어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잘도 자란다. 1년도 안 되어 알을 낳기도 하고 또 병아리를 까기도 한다.
닭은 종류가 다양하다. 흔히 취미로 기르는 닭들은 꽃닭이라 불리는 백자보, 적자보, 검은 꼬리자보 그리고 긴꼬리 닭, 동천홍, 백천홍 등 토종닭이 있고 꿩과의 금계ㆍ은계, 황금계, 백한 등이다.

특히 요즘에는 인터넷에 닭에 관한 카페와 동호인들이 많다. 그런 곳에 가입하여 활동하면 닭에 관한 질병, 관리 요령 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때로는 닭이나 병아리들을 교환하거나 분양도 받을 수 있어 초보자들도 쉽게 닭을 기를 수 있다.

닭을 기르는 일은 양계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관리하는 데 그렇게 힘들지 않다. 아침에 놈들의 모이와 물을 챙겨 주고 간단한 청소를 해 주는 일은 오히려 즐거움이다. 놈들을 관리하다 보면 배우는 것도 있다.

엄마의 자식 사랑과 자기 영역 지키기 그리고 식구 사랑이다. 아버지 닭은 먹을 것이 있으면 절대 먼저 먹지 않고 자기 아내나 아이들부터 먹게 한다. 특히 자기 아내를 다른 수컷이 잘못 건드렸다가는 난리가 날 정도로 혼내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사무실에 근무하다가도 가끔 놈들 생각이 날 때가 많다. 특히 요즘처럼 닭이 병아리를 낳을 때는 더욱 놈들이 보고 싶어진다. 어떤 때는 일부러 놈들을 보기 위하여 일찍 퇴근하기도 하는데 놈들을 생각하면 절로 흐뭇해진다. 때로는 아침에 놈들을 돌보고 바라보다가 출근시간이 늦기도 하고 놈들을 보지 못하고 출근해야 하는 것이 여간 아쉽지 않다.

놈들은 보고만 있어도 즐겁고 절로 웃음이 나온다. 특히 갓 태어난 병아리들의 모습을 보면 더욱 더 우습다. 놈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은 마치 노란 테니스공이 굴러다니는 것 같다. 놈들은 항상 바쁘고 그냥 걷는 법이 없다. 무슨 일이 있는지 이리저리 쉴 새 없이 뛰어 다닌다.

그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도 엄마가 부르면 쏜살같이 엄마 곁으로 다가온다. 엄마는 철없는 놈들을 돌보고 먹이를 찾아 주느라 쉬지를 못한다.
어린 병아리들은 걷다가도 눈을 감고 졸기도 한다. 날씨가 춥거나 어두워지면 엄마 품 속을 서로 차지하려고 한다. 그러다가도 바깥이 궁금한지 조그만 머리를 내밀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라니…….

또 엄마 등 뒤에 올라가 장난치기도 하고 굴러 떨어져 정신을 잠깐 잃기도 한다. 놈들은 겁도 없어서 내가 가까이 가도 도망치지도 않고 내 발등 위에 올라앉기도 한다. 놈들은 점점 자라면서 엉덩이에서 꽁지가 나오는데 이때부터는 귀여운 모습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꽁지 빠진 닭이라거나 미운 일곱 살이라고 놈들도 이때부터는 제 멋대로이고 엄마도 차차 마음을 놓는다. 역시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렸을 때가 제일 귀엽고 예쁘다. 이때부터는 서로 힘을 겨루려고 팔짝팔짝 뛰면서 싸움을 걸다가 갑자기 도망친다.

이렇게 놈들의 자라는 모습이나 노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이 세상의 어떤 즐거움보다 더 신비롭고 즐겁다. 그래서 아파트를 떠나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田


김인환<건축사, TAS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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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에세이] 전원주택과 닭-닭과 병아리를 기르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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