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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의 ㅗ를 ㄸ 앞에 돌려 앉히니 '땅'이 되었다. 말의 소리와 글의 모양이 친근하게 닮았다. 똥이 땅으로 돌아가는 순리다.
생태 순환계에서 인간 영양분 순환계는 단절이 없는 완전 순환계로 보았다. 곡식이 자라고, 먹거리가 되고, 배설을 하고, 그 배설은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는 어김없는 이치다.

천연적이고 유익한 유기물의 대표적인 예가 동물들의 소화 작용을 거친 뒤 배설되는 분뇨라고 했다. 사람의 분뇨가 버려질 때, 그것은 위험한 환경 오염 물질이 되어 질병을 전염시키지만, 재활용하면 토양 영양분이 풍부하게 함유된 가치 있는 유기물 자원이 된다. 그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이치를 거스르며 산다.

똥을 물로 버리며 물을 오염시키고 고갈시킨다. 오염된 물로부터 감염되는 질병에 시달린다. 토양 영양분을 변기 속에 버리고 나면 우리에겐 화학 비료가 필요해진다. 과잉으로 사용된 비료는 땅을 얼마나 훼손시키고 있는가.

산골에 황토집을 지어 나도 집 안에 화장실을 만들었다. 한 평 정도의 넓이를 변소가 아닌 화장실로 아름답게 꾸몄다. 바닥과 중인방까지의 벽엔 마음에 드는 타일을 붙이고 상인방까지의 벽과 천장은 미장 황토로 마감하여 화장실에서도 서까래를 바라볼 수 있는 멋을 부렸다. 예쁜 용기의 화장품만 거울 앞에 놓고, 집 안에서 가장 예쁜 소품도 화장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만하면 쾌적하게 볼일을 볼 만한데 영 기분이 편하지가 않다. 부산의 아파트에서는 편하게 보던 볼일이 산골에서는 불편하다.

변기에 앉아서 올려다보는 서까래에서도 강물이 흐르고, 내려보는 바닥의 타일 위로도 강물이 흐른다. 푸른 산 그림자를 담아 맑게 흐르는 우리 마을 앞 동창강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다슬기가 자라는 강. 청둥오리 떼가 귀엽게 물살을 가르고, 때로는 백로가 짝을 지어 새벽 어둠을 털어 내며 물 위를 날아오르는, 고기잡이하는 마을 아저씨가 물개를 보았다는 강이다.

내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도, 우리 집에 들르는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감동을 하는 것도 저 강이 맑은 물빛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이면 은빛으로, 아침이면 황금빛으로, 오후 녘이면 산 빛으로 흐르는 강은 때로는 자욱한 안개로 나를 심산유곡으로 데려다 놓는다.

아무리 좋은 정화조를 설치했다지만 정화조의 기능은 한계가 있는 법, 어찌 저 강을 오염시키지 않을 것인가. 그 생각들이 나로 하여금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고도 몇 달 후에야(참 바쁜 이유로), 나는 몇 해 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뒷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집을 지을 때 목재와 함께 운반되어 온 땔감 판자로 얼기설기 삼면의 울타리를 만들었다. 아래 밭 한쪽에 그것들을 ㄷ으로 세워 놓고, 비워진 오일 스테인 통을 바닥에 단단히 놓아 이사 올 때 준비해 온 변기 뚜껑을 위에 얹었다. 집의 재목을 대패질할 때 모아 두었던 톱밥을 자루에 담아 옆에 두었다. 야외 변소 준비 완료다. 엉성한 솜씨지만(시간이 나면 더 잘 만들어 볼 생각이다) 강을 내려보며 미안하지 않게 편히 볼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톱밥을 덮어 두면 냄새도 나지 않으며, 통이 차면 한 곳에 모아 일 년 동안 숙성시키면 좋은 퇴비가 된다.

여러 책 중에서 조셉 젠킨스의 《인분 핸드북》을 몇 해 전 대학 레포트 제목으로 택한 것은 나의 전원생활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인분을 퇴비화한 내용 속에는 들통 퇴비화 변기를 간편하게 만드는 법이 잘 설명되어 있었다. 톱밥이나 왕겨를 즉시 덮어 두면 실내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

오늘날 인간의 생활 행태가 병을 일으키는 병원성 생물과 너무도 닮아 있다는 내용은 참으로 사실적이다. 인간을 미생물로 생각하는 차세대 양자 역학적 시각으로 볼 때, 사람은 지구에게 위험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지구의 건강과 안녕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자원을 소비하고 해로운 폐기물을 방출해대는 행태. 경제 성장, 소비 정가, 물질적 풍요, 물질적 이익을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는 오늘날 인간의 작태는 기주寄主 생물을 죽이고 끝없이 증식하는 병원 생물과 너무나도 비슷하여 소름이 끼친다는 것이다.

그의 책을 읽으며 나는 우리들 아버지가 그리도 부지런히 퇴비를 마련하던 때를 떠올렸다. 헛간의 퇴비 무더기로 땅 넓이를 가늠했다. 가진 땅에 비해 퇴비 무더기가 적을 때면 이웃에게 부끄럽게 여기던 어른들이었다. 인분과 건초의 적절한 배합으로 일 년을 숙성시켜 검은 빛깔의 좋은 퇴비를 마련하여 논과 밭을 기름지게 하던 아버지의 노동이 선연히 떠올랐다.

서양 세계의 농토가 수세기 동안에 황폐화한데 비해, 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 아시아의 농토는 수천 년을 비옥토로 유지해 오며 식량을 생산해 온 것은 인분을 재순환시켜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렇게 해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시골 같지 않게 잘 지은 양옥에 수세식 화장실이 갖추어 있고, 좋은 거름이 되는 똥은 냇물과 강을 오염시키며 넓은 세상 바다로 가고 있다. 대신 들에도 과수원에도 비료가 많이 뿌려진다. 과일과 여러 먹을거리들이 옛날처럼 맛이 없다는 것은 비단 입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맑은 공기와 오염되지 않은 좋은 물을 먹고 정원이 아름다운 집에서 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자연을 보호하고 땅을 살리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것이다. 시골집을 마련해 놓고 수세식 화장실이 없으면 아이들이 들르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뒷간을 모르는 우리의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만들어 놓은 뒷간 앞에서 나는 우리 아이들을 설득시킬 말에 골몰한다.

"인분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비료라는 것을 과학은 알고 있다. 이 퇴비 더미가 무엇인 줄 아는가? 바로 꽃들이 만발한 화단이며, 녹색 풀밭이며, 박하 백리향 세이지 같은 향신료이며, 밀이며, 식탁 위의 빵이며 우리 몸 속을 돌고 있는 따뜻한 혈액인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말을 아이들에게 들려줄까. 그 말이 엄마의 마음이라고. 그리고 저 강을 가리키며 아름다운 강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이것부터 실행해야 한다고 이를 것이다. 내 아이의 아이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단단히 가르칠 생각이다.田


글 장문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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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글밭을 일구며2] 똥과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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