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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처럼 변덕스러운 날씨는 처음 보았다. 진달래와 벚꽃이 더디 피도록 기온이 낮았고, 살랑살랑 봄바람은 구경도 못하고, 강풍이 불어 그나마 늦게 핀 꽃들마저 산산이 흩어 버려 꽃구경에 취할 틈도 없이 봄이 훌쩍 떠나 버린 것 같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시골 마을에, 이런 날씨는 치명적이다. 농작물의 생육에 지장을 줌은 물론이거니와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는 야생 식물들마저 빛과 향기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고사리가 그랬다. 봄 날씨가 싸늘해 고사리가 늦게 올라오기도 했지만, 5월 초부터 시작된 이른 더위로 잎이 금새 피어 식용으로써 가치가 떨어지기도 했다. 거기에 잡초들의 성장은 고사리와 나물들의 자라는 속도를 추월해 통통하게 물이 오른 고사리들의 품질마저 떨어뜨려 놓았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홀린 것처럼 산으로 들로 나물 뜯으러 다니는 재미에 봄날이 가곤 했는데, 올해는 고사리 꺾는 손맛도 제대로 못 볼 만큼 고사리 흉년이었다.

“언니, 고사리 꺾고 싶으면 우리 산으로 와 봐.”

어느날 저녁 무렵, 옆 동네에 사는 빈이 엄마가 인심 쓰듯이 걸어 온 전화에 나는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산으로 차를 몰았다. 평소 자기네 산에는 올라가기만 하면 고사리 두 포대는 거뜬하게 꺾어 온다며 자랑을 일삼으면서도 어디인지는 안 가르쳐 주겠다며 약을 올리던 빈이 엄마였다. 무슨 마음에 변화가 생겨 고사리 고수(?)인 나한테 인심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변하기 전에 현장에 도착해야 했다.

3년 생 밤나무가 자라는 산자락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가만히 보니 고사리 반 잡초 반이었다. 잡초를 깎아 주고 관리를 한 탓에 다니기도 좋았지만, 완만한 산자락이라 그동안 고사리를 찾으러 다녔던 가시덤불 우거진 험한 산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아한 고사리 원정이었다.

빈이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밤나무를 심고 가꾸느라 잡초도 베어 주고 가지치기도 하는 동안 밤나무 그늘 속에서 야생으로 조금씩 자라던 고사리까지 생육 조건이 좋아져 밭이 된 것이었다. 이전에는 새벽이면 어르신들이 다니며 고사리를 채취해 용돈을 마련해 쓰셨지만, 올해는 봄이 짧아 농사일에 바빠서 도저히 고사리를 꺾을 틈이 없다는 것이다.

“도시 사람들한테 입장료를 받고 고사리 꺾어 가는 ‘고사리 투어’를 모집하면 좋겠다. 요즘에는 단순하게 고사리를 장에 내다 파는 것보다 시골로 불러 들여서 체험하며 정서까지 끼워 파는 것이 유행이야”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 어르신들이 그럴 능력이 있나?”

“그럼 고사리 꺾으러 오고 싶어하는 내 친구들이 있는데 우선 오라고 해서 입장료라도 받아 드리면 안 될까?”

그날 나는 즉석에서 도시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연휴였던 다음날 득달 같이 달려온 친구들은 가지고 간 시장 가방에 난생 처음으로 가득 고사리를 꺾는 희열을 맛보았다. 나 역시 온 산을 헤매고 다니며 고사리를 찾아도 2킬로그램을 넘게 꺾어 본 적이 없는데, 그날은 무려 5킬로그램의 고사리를 팔이 아프게 들고 내려왔다.

고사리를 찾기 위해 풀숲을 헤치고 다니다 보면 징그러운 뱀과 마주치기도 하고 가시에 긁히는 일은 예사로 발생한다. 그래도 고사리 찾기를 멈추지 못 하는 것은 중독성 짙은 게임 같은 묘미 때문이다. 고사리 꺾기의 마력은 발견의 재미에 있다. 보물찾기를 하듯 때론 잡초 속에서, 때로는 찔레 넝쿨 속에서 고고한 허리를 쭉 펴고 여린 잎을 앙 다물고 있는 고사리를 찾아내는 희열이란…….

친구들은 난생 처음으로 시장에 내다 팔아도 될 만큼 꺾어 온 고사리를 펼쳐 놓고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 집은 제사도 안 지내는데, 이 많은 고사리를 언제 다 볶아서 먹으려고 욕심을 부렸나 몰라.”

친구 중에 하나가 발견의 재미만 좇아 너무 많이 꺾어 온 고사리 앞에서 감탄인지 한탄인지를 내뱉었다.
대체로 고사리는 삶아 말려서 보관했다가 다시 불려서 삶은 다음 볶아서 나물로 먹는 방법과, 육개장에 넣는 재료 외에는 요리법이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봄철 누구나 욕심을 내는 나물치고는 요리법이 다양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고사리를 볶아서만 먹는다는 편견을 버려. 고사리도 초고추장에 회무침으로 먹었더니 씹히는 맛과 향이 얼마나 좋은데.”

이것은 내가 개발한 요리법이 아니라 산에 다니면서 만난 고사리 고수들한테 전수 받은 것이다. 내가 고사리 회무침을 반찬으로 내놓으면서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드는 지인(知人)들한테는 정평이 나서 우리 집 특선 반찬으로 자리 잡았다.

산에서 채취해 온 고사리는 우선 가는 것과 굵은 것을 선별해서 삶는다. 이때 고사리는 끓는 물에 데치는 식이 아니라 줄기를 눌러 보아 충분히 물러질 때까지 삶아야 말린 후에 다시 불려서 먹어도 질기지 않다. 그리고 삶아서 회무침으로 먹을 때는 삶은 다음 찬물에 1시간 이상 담가서 쓴맛을 빼서 쓰는 것이 좋다.

삶아서 쓴맛을 뺀 고사리를 초장에 찍어 먹거나 오이와 버섯 등의 야채와 함께 초고추장에 버무려 놓으면 봄철 입맛 나는 밥상이 된다. 거기에 머위 쌈밥을 주식으로 내놓았더니 지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 집에 찾아와 요즘 나의 봄날은 고사리 회무침과 머위 쌈밥과 함께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골살이를 하는 재미 중에 하나는 산과 들에 나는 야생의 재료들을 이용해 요리를 만들어 지인들을 불러 들여 함께 즐기는 것이다. 매일 먹는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재료를 이용한 토속적이며 질박하면서도 눈이 즐거운 요리는 내 시골살이의 중심이 되고 있다.田


글 오수향(ocho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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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시골살이의 중심 '고사리 초무침, 머위 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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