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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희 몰라?”

남편의 대학 동기들 모임을 우리 집에서 갖기로 한 날, 낯선 얼굴의 한 사내를 남편이 유난히 반갑게 맞고 있었다.

“저기… 그 사람?”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이나 줄었는데 알아보겠어요. 저 많이 좋아졌죠?”

박인희 씨는 남편의 대학 동기다. 그는 우리가 부여로 귀향을 결심하면서 부여에서 만난 첫 연고자였다. 그는 충남농업기술원 부여토마토시험장 육종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내가 그를 첫 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동안 너무 달라진 외모 때문이었다.

3년 전, 그는 위암 3기 환자였다. 친구들로부터 그가 위암에 걸렸다는 전해 들었을 때는 문병을 가기도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박인희 씨의 가족은 환자가 받을 충격 때문에 친구들이 문병 오는 것조차 꺼린다고 했다. 친구들 역시 선뜻 그를 문병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한국인 사망 원인 1위라는 위암을 한창 나이인 40대 초반에 걸려 버린 친구를 만나는 일은 누군들 자화상을 보는 것 같지 않았으랴.

그해 겨울, 우리 가족이 새로 생긴 찜질방에 갔을 때였다. 찜질방의 아늑한 조명 아래서 유난히 빛나는 민머리가 눈에 띄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가 주위에 있는 사찰에서 온 스님일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남편이 그와 반갑게 악수를 하는 것이다.

“야, 인희야. 좀 어떠냐, 치료는 잘 되고 있는 거냐?”

그동안 수술 후 항암 치료를 하는 중이라 머리카락이 다 빠져 버린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스님이었다. 그는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답지 않게 표정이 밝았다. 우리가 실제 암 환자인 그 앞에서 ‘암’이라는 병명을 쓰기가 뭣해서 우회적인 표현을 쓰는 동안 그는 거리낌 없이 ‘위암’이라는 단어를 쓰며 그동안의 투병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가 암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보험사에서 해 주는 건강 검진 서비스를 받던 중에 이상을 발견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암은 자각 증상이 없어서 조기 발견이 어렵다고 한다. 박인희 씨의 경우도 자각 증상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건강 검진을 받지 않았더라면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찜질방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우리는 그의 완치에 대해서 반신반의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5년 전, 그들의 후배 중 한 명이 같은 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전력이 있었고,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는 암으로 마흔 살도 되기 전에 세상을 버린 사람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 암에 걸려서 완치된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박인희 씨의 암 극복기에 특별한 비법이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친구들 사이에서는 박인희 씨의 암 투병기는 단연코 화젯거리였다. 이제 40대 중반에 들어선 대한민국 성인 남자들에게 암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이야 말로 두려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날 그와 즉석에서 이루어진 일문일답 내용을 정리한다.


오 : 그동안 투병을 하시면서 암에 이르게 된 원인을 분석해 보셨나요?

박 : 2003년 7월 25일에 건강검진을 통해 발견을 했고 8월 8일에 수술을 했는데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당시에는 스트레스를 안고 살았던 것 같아요. 직장에서의 직위와 진급 관계로 고민도 많았고, 석사 학위 논문을 쓰던 중이였던 것도 그랬고……. 병원에서 진단받을 때 의사가 당시 3년간 크게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었냐고 물었던 것을 보면 스트레스가 암의 가장 큰 발병 원인인 것 같아요. 내 성격 자체가 그런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를 못해서 술을 많이 먹었던 것도 한 원인이었겠죠.

오 : 어쨌든 현재는 위암이 완치된 상태인데요. 그동안 건강관리를 하신 비법이 있다면요?

박 : 처음에 병원에 있으면 문병 오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한 보따리씩 싸 가지고 와요. 온갖 좋다는 약재는 다 구해 와서는 먹어 보라고 하죠. 그것들을 순서대로 먹다 보면 하루해가 저물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발병 초기에 조심해야 할 것은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이에요.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왔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가족, 친지들과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갖고,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하고, 활동 범위를 더 넓혀야 합니다. 좋다는 것을 다 섭취하기보다는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 : 고기는 전혀 안 드시고 친구들한테 구워 주기만 하던데, 고기는 절대로 드시면 안 되나요?

박 : 오늘 삼겹살 딱 세 점 먹었어요. 고기류는 되도록 적게 먹어야 하지만 골고루 먹는 것도 중요합니다. 채식과 과일, 잡곡 위주의 식사가 좋아요. 위의 원상 회복에 도움을 주니까요. 특히 콩 종류는 식단에서 빠지지 않죠. 된장과 콩조림, 콩밥 등이 제 주식입니다.

오 : 발병의 원인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면 지금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찾으셨나요?

박 : 주말마다 등산을 다녀요. 처음에는 온 가족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차츰 환자 아닌 사람들이 싫증을 내서 요즘엔 혼자 다녀요. 집과 가까운 등산 코스를 개발해서 혼자 산을 다니다가 모르는 사람들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요즘 터득한 즐거움이죠.

오 : 현재 병원에서 완치 판정을 받은 건가요?

박 : 6개월마다 한 번씩 정기 검진을 받고 있거든요. 모든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지 않았으니까 완치라고 봐야겠지요.

오 : 투병을 하시면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하신 적이 있나요?

박 : 죽음이 두렵기는 했지요. 하지만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내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어요. 남겨진 가족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현대 의학에서 ‘암은 치료가 가능한 만성병’이라는 의사들의 말을 굳게 믿었어요. 투병을 하면서 그 말은 제 신조가 되었지요.

오 : 마지막 질문인데요. 그간 치료비는 얼마나 들었나요?

박 : 병원 입원비와 수술비 등이 가장 많이 차지했지만 각종 건강 보조제 구입 등으로 들어 간 비용이 5000만 원 정도인 것 같아요.


그날 남편의 대학 동기들 중에는 졸업 후에 처음 얼굴을 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제는 풋풋한 젊은 날은 다 가고 삶에 연륜이 깊어지고 노련한 눈매로 나타난 중년의 사내들은 캠퍼스를 뒹굴던 20대를 추억하며 마음만큼은 밤을 새워 소주잔을 기울일 작정이었다.

박인희 씨의 암 극복기가 아니더라도 친구들 중 몇몇은 이미 술, 담배를 끊은 지 오래라며 분위기를 띄우지 않았고, 당뇨가 있다는 친구는 초저녁부터 피곤해하며 모임을 이끌지를 못했다. 그래도 그 분위기를 주도하며 웃음을 이끌어 내는 사람이 박인희 씨였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원래 유머가 풍부한 편이라 학창 시절에도 친구들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곤 했던 그였다고 한다. 그의 유머가 풍부한 성향이 긍정의 힘을 이끌어내 그를 암으로부터 자유롭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원동력인 40대 남성들은 오늘날 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질병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순서겠지만 박인희 씨의 위암 극복기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田


오수향(ocho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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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대한민국 40대 남성 박인희 씨의 위암 극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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