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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공부하는 건축 과목 중에는 건축계획이 있다. 건축의 총론에서부터 모든 건축물의 설계 기초와 계획하는 방법에 관하여 공부한다.
이 과목에서 건축을 계획하는데 기본적으로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이 입지조건(立地條件)이다. 건물의 성격과 기능에 따라 건물이 위치해야 할 조건에 관한 것으로 백화점, 학교, 주택, 병원 등 건물에 따라 건축돼야 할 위치 조건을 말한다. 상식적인 이야기 같지만, 실제 많은 건물이 그 성격에 맞지 않는 위치에 있음으로써 불편을 느끼고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건물이 아무리 아름답고 쓸모 있게 잘 지어졌다고 해도, 그 건물의 성격에 맞는 위치에 있지 않으면 그 기능을 다하기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건축의 시작은 바로 입지에 관한 것부터라고 할 수 있다.

주택의 입지조건

주택에 있어서도 집이 위치하는 입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일반적으로는 푸른 초원에 공기 맑고 경치 좋은 한적한 곳이 단독주택지로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주택의 입지조건은 교통, 생활편의시설, 수해나 산불 등 방재, 일조나 통풍 등을 위한 향(向), 주변 환경 그리고 대지 조건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전원주택의 경우에는 이상과 같은 조건 외에도 안전 문제로 방범과 관리 등의 문제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부동산적 가치와 장래성도 빼 놓을 수 없는 요소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의 조건들은 각자의 특성이나 조건에 따라 우선 순위가 달라진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거나 도시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경우 등은 다른 어느 것보다 이런 점을 우선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입지조건을 잘 생각하지 못해 낭패를 겪는 경우를 흔히 본다. 입지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탓이다. 실제로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 중에는 그저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것만 생각하다가 막상 실제 살면서 느끼는 불편함 때문에 다시 도시로 회귀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신중하게 많은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자신의 생각과 조건에 꼭 맞는 대지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모두에게 좋은 땅은 그만큼 가격도 비싸고 그러한 땅을 내 마음대로 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충족할 만한 땅을 구하기란 불가능하다. 마치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조건을 갖춘 결혼 상대자를 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신중해야 할 땅 고르기

오랜 동안 아파트 살던 사람들은 전원주택에 살겠다는 생각만 하는 것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집에 대한 생각만 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모양으로 예쁘고 아름다운 집을 지을 것인지, 그리고 실내와 조경 등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앞선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아무리 예쁘게 잘 지은 집이라도 위치가 좋지 못해 사는데 불편하다면 곧 싫증이 날 것이다.
실제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에 주인도 없이 텅 빈 채로 있는 전원주택이 많다.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많은 전원주택이 급매물로 나와 있는데, 이런 것들은 바로 그런 연유다.
처음 얼마간은 그저 한적하고 여유로운 전원주택이라는 것과 경치 등이 좋아 재미있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이 엄청나게 소요되고 편의시설이 멀어 생활에 불편을 느낀다면 점차 짜증과 싫증이 나게 되고, 그때는 처치 곤란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 상상하던 것과 실제 살고 겪으면서 느끼는 현실과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땅을 구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갖고 자신과 가족의 특성이나 조건 등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집이야 마음에 들지 않고 불편하다면 다시 고쳐 지으면 되지만, 일단 지은 집의 위치를 옮기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 결정해야 한다.


과연, 단독주택지로는 어떤 곳이 좋은가

교통이나 생활편의시설 등을 고려할 때 집터로는 아무래도 도시가 좋기는 하다.
그런데 도시 어디를 가도 이제는 마당이 있고 동물 등을 기를 수 있는 단독주택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느 때부턴가 단독주택들이 부동산적인 영향을 받아 하나하나 다가구나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등으로 변해 버렸고 동네 도로는 자동차로 가득 차 버렸다.
이는 도시로의 인구 집중과 그에 따른 부동산 가격의 상승, 사업성의 우선 그리고 자동차의 증가 등 사회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도시에서는 그런 답답함이 싫다고 나 홀로 우아하게 단독주택에서 살기는 어렵다. 자신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지만 집을 둘러싼 모든 집이 다가구나 다세대주택화되고 있는데 나 홀로 그렇게 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가하고 여유로운 도시 근처의 전원주택지는 어떤가.
서울 근교의 경우 용인이나 양평 등에 많은 전원주택지가 있는데, 이런 곳은 경치도 좋고 공기도 맑아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직접 사는 데는 문제가 많다. 경치 좋고 한적한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살다 보면 식상하기 마련이다.

학교에 다녀야 하는 것과 출퇴근을 해야 하는 일은 현실이고 지극히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없고 출퇴근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병원이나 백화점 등 편의시설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생활하는데 불편을 느끼기 마련이다. 물론 행복한 삶을 위하여 한두 가지는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일상 생활인 출퇴근이나 학교, 친구 그리고 생활의 불편 등은 경치 좋고 한적한 것보다 현대인의 삶에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내가 선택한 곳-도시형 전원주택지

이런 문제는 각자의 특성과 조건 그리고 취향에 따라 다르겠는데, 나는 이런 점에서 도시형 전원주택지를 선택했다.
도시형 전원주택은 용인이나 양평 등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전원주택이 아니라 서울이나 과천, 성남, 김포 등 도시의 그린벨트지역에 있는 취락마을의 전원주택을 말한다.

개발제한구역은 소위 그린벨트라고도 하는데 서울 등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 대도시 주변에 분포돼 있다. 서울의 경우 강동, 강남, 서초구 등의 개발제한구역에 도시형 전원주택을 지을 만한 취락마을이 곳곳에 있다. 이런 취락마을은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하던 당시 개발제한구역 내에 흩어져 있던 집들을 한 곳에 모아 마을을 형성한 곳으로 개발제한구역의 보호 차원에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이런 곳은 학교나 병원, 백화점, 시장 등이 가까이에 있어 생활하는 데에 불편함이 별로 없다. 특히 교통은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시내로의 접근은 오히려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빠르고 좋다. 전철역이 가까운 곳도 있고, 시내버스나 마을버스가 잘 연결돼 있을 뿐 아니라 도로 사정도 양호하다.

특히 그린벨트의 취락마을은 대체로 50∼100여 호의 주택이 6미터 도로로 잘 구획돼 마을이 깨끗하게 정비돼 있다. 이런 곳에선 전원주택에서 염려되는 방범 문제도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 주변은 모두 논, 밭, 야산 등으로 둘러싸여 비교적 한가하고 공기도 맑다.
더욱이 중요한 점은 이 지역은 오직 단독주택과 상점 등 근린생활시설과 같은 건축만 가능하므로 주거 환경이 아주 양호하다. 대지 면적은 거의 100평 내외로 시내에 있는 대지보다는 넓고, 대부분 60∼90평의 2층 주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라면 시내에 있고 주거 환경이 양호한 도시지역이며 희소성 때문에 땅값이 일반 전원주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금액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어차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택이 거주 목적 외에도 부동산적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환금성이나 장래성에 한계가 있는 일반 전원주택보다는 유리하다.

특히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될 것이라는 예상과 한정된 지역으로 부동산적 장래성 또한 높다. 건축적으로나 실질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지나치게 거품이 많다는 아파트에 비해 이런 지역은 앞으로 거주성과 도시 내 취락마을의 희소성으로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고 있다.


살아 보니 역시 좋다

특히 내가 선택한 곳은 이상과 같은 점 외에도 다음과 같은 점이 좋다. 우선 올림픽대로와 바로 연결돼 강남이나 시내로의 접근이 아주 양호하고, 전철역이 멀지 않은 데다 마을버스 종점이 가까이에 있어 교통이 아주 좋다.
초·중·고등학교가 근처에 있어 아이들의 통학에 큰 불편이 없고, 대형병원이나 생활편의 시설이 가까이에 있으며, 백화점·시장 등 판매시설이 인근에 있어 편리하다.

무엇다도 그동안 다니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회와 가깝다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주변에 낮은 야산과 공원이 있어 공기가 맑고 아침저녁으로 산책과 운동하기에 좋다. 무엇보다도 한강은 걸어가도 될 정도로 가까이에 있다. 아침저녁으로 잘 가꾸어진 둔치를 산책하거나 자전거전용도로로 하이킹을 하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다.

또 중요한 것은 전원주택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지나치게 적적함이나 밤에 무서움에 대한 염려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넓은 대로에 접해 있어 가로등이 대낮처럼 밝고, 집 앞에 마을버스 승강장이 있어 늦게 돌아오는 아이들의 염려가 별로 없다. 아파트에서만 살아 왔던 가족이 처음 이곳에 집을 짓겠다고 했을 때, 무엇보다도 가장 염려한 부분이 바로 무서움과 적적함이다. 그런데 실제 살고 있는 지금은 전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 무엇보다 다행이다. 만약 다른 모든 점이 좋아도 무섭다거나 지나치게 적적하다면 해결하기 어려운 심각한 문제가 됐을 것이다. 이밖에도 개발제한구역의 해제 가능성뿐 아니라 대로에 접해 있어 부동산적인 가치가 높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이곳이 모두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땅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데,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입지조건의 우선 순위에서 한참 아래에 있어 무시할 만하다.
그동안 이곳을 물색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수시로 이 마을을 돌아보았고 계절마다 변하는 모습도 관찰해 보았다. 특히 장마철과 겨울 등 문제가 일어나기 쉬운 시기도 지켜보았다. 그런 탓으로 실제 거주하면서 별로 불편한 점이 없고 아내나 아이들도 아파트보다 더 만족해한다.

사실 닭과 병아리, 새, 진돗개, 연못의 물고기를 돌보며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곳이 서울, 그 어디에 있는가? 마당의 푸른 잔디와 텃밭에서 자라는 야채 그리고 각종 나무들을 돌보며 한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서울, 그 어느 곳에 있을까? 아침 일찍 일어나 시작하는 아침운동으로 더욱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이곳이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춘 곳이 아닌가 한다.田


김인환<건축사, TAS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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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에세이] 나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다 - 도시형 전원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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