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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추위와 폭설이 한바탕 공포 영화처럼 지나간 시골 마을에는 봄날 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양지 녘 논둑에는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향긋한 냉이가 나물 캐는 촌로들을 반기고 있다.
시골 폐교에서 교실 한 칸을 엉성하게 개조해서 살아 온 지도 6년이 지났다.

“한 2년 만 여기서 살다 보면 무슨 수가 나겠지… 고생스러워도 좀 참자.”

도시에 새로 지은 아파트를 놔두고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폐교의 교실 한 칸에 살림을 풀어놓을 때만 해도 남편이 이렇게 한 말을 정말로 곧이 들었다. 그 2년이라는 기한 속에는 전원주택을 짓거나 교실을 아파트 구조로 개조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동안 ‘임시로 살자’는 뜻으로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폐교 살이는 2년이 지나고 6년에 접어들도록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짓든가, 개조하기까지 ‘임시로’ 라는 것에 발목이 잡혀 날이 갈수록 남루해지기만 했다. 장마철이면 천장에 비가 스며들어 양동이로 받아 내도, 아이들 등쌀에 방문 손잡이가 덜커덩거려도 남편은 어차피 ‘임시니까’ 하면서 항상 임시 방편으로 손보는 것으로 그치고, ‘새로’ 개선을 하는 일은 기약 없는 ‘나중에’로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가 막힌 해프닝을 겪기도 한다.

며칠 전, 아이들 방에 들어갔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안에서 문이 열리지 않아서 내가 꼼짝없이 갇혀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손잡이를 아무리 비틀어도 문은 갑자기 지하 감옥의 육중한 철문으로 변신이라도 한 것처럼 열리지 않았다. 한참 방문 손잡이를 돌리고 잡아당기며 씨름을 했지만 방문은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처한 상황이 거짓말 같았지만 내가 방문 바깥으로 나갈 수 없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바깥에는 남편과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청국장을 말리는 건조기가 돌아가는 소음과 가마솥에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나무를 자르는 기계톱 소리 때문에 내 구조 요청 소리가 전달될 리가 없었다. 내가 갇힌 방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하필이면 청각장애가 있는 아줌마였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한테는 들렸지만 안에서 내가 이렇게 황당하게 방에 갇혀 버린 사실을 알릴 방법은 없었다. 아이들 방에는 전화도 없었고 내 휴대폰은 거실에 얌전히 모셔 둔 상태였다. 나는 꼼짝없이 끈끈이주걱(식충식물)에 갇힌 한 마리 파리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복도로 향한 창문에 입을 대고 소리를 지르다가 지쳐서 아이들 책상 의자에 기대앉았다.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아이들 방에는 보일러를 돌리지 않아 냉골이었다. 누군가 화장실이라도 가기 위해 우리의 어설픈 공간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나는 꼼짝없이 추위에 떨며 갇혀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그 믿기지 않는 상황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당한 것이 다행이라고 자위도 하다가 시간이 더 흐르자 손재주 없고 세심하지 못한 남편에 대한 원망과 온몸이 얼어붙는 추위에 부르르 떨렸다. 그러다가 얼어 죽을 것 같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다. 남편에 대한 비난과 원망이 버무려진 내 텔레파시는 1시간쯤이 지나서야 통했다.

남편은 그 믿기지 않는 상황에 배꼽을 잡고 웃어댔지만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망치를 가져다가 방문 손잡이를 아예 부숴 버렸다. 그것은 잔재주가 없다는 핑계로 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남편에게 더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옆 동네에 사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내가 내 집에서 겪었던 그 날의 황당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도 언니는 변소간에 갇힌 것은 아니잖아.”

“그럼 자기는 재래식 화장실에 갇혔었어?”

시골 집 으슥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재래식 화장실의 문은 대체로 안팎으로 잠금 장치가 되어 있다. 안에 잠금 장치가 있는 것은, 물론 허술한 화장실 문이 행여 바람에 열려서 변소 안의 악취가 새나오지 않도록, 또 보이고 싶지 않은 꼴이 노출되지 못하도록 바깥문과 문틀 사이에 걸쳐지는 나무토막이 있기 마련이다. 변소간에 들어가는 사람이 어쩌다가 문을 세게 닫으면 그 나무토막이 내려져 안에서는 도저히 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시집와서 얼마 안 된 새댁인 그녀가 바로 그런 경우를 당한 것이었다.

“시어른들은 다 들에 나가고 나 혼자 있었을 때 그렇게 갇혀 버렸는데 환풍기가 있는 창문에 까치발을 딛고서 동네가 떠나가도록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는데요. 마침 바쁜 농사철이라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나타나는 거 있죠.”

내가 방에 갇혔던 일은 정말 웃을 일에 끼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변소에서 올라오는 가스요? 그거 정말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더구나 임신 3개월 때라 입덧을 할 때 그랬으니 그 고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거의 기절 일보 직전에 구조돼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왔다니까요.”

물론 그 사건 이후에 친구의 집은 화장실을 실내에 만드는 개조를 단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남편의 느긋한 성격은 어떻게 개조해야 하나?田


글 오수향(ocho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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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새댁, 재래식 화장실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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