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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에 따르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언젠가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어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도 현실적으로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실행에 못 옮기고 있고, 실제로 그 꿈을 이루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다. 이런 사정은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건축전문가인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집은 잘도 지어 주면서, 그렇게 짓고 싶어 하던 내 집을 세월이 흐른 뒤에야 지었다. 평생의 소원인 내 집을 지은 것이다.


脫아파트 작전

나도 여느 도시인과 마찬가지로 결혼과 함께 줄곧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번 아파트에 살다 보니 계속 눌러 살게 되어 떠나기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항상 언젠가는 단독주택에서 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늘 어떻게 '탈아파트'를 할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며 지냈다.

특히 꽃나무와 동물 기르기 등을 각별히 좋아하는 성격인데다 좁은 콘크리트 상자에 갇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채로 평생을 지내야 한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직업상 남의 집을 설계하고 건축해 주다 보니 그런 생각이 더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그 꿈을 이루어 얼마 전부터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다. 평생의 소원인 내 집 짓기는 많은 세월 어려움을 수없이 겪은 뒤에야 이루어졌다. 어느덧 아파트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졌고 아파트를 떠나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부들의 살림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의 양육이나 교육, 그리고 관리·보안 등 생활 곳곳에서 아파트는 그 동안 우리 생활에 너무나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토끼 같은 아이들과 가정 생활의 주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아내와 같이 살아가는 형편이니 나만 생각할 수는 없다. 거기다 자금 문제까지 생각할 때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을 지어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별난 아파트생활

나는 아파트에 사는 동안 유별났다.
그 좁은 아파트에서 각종 분재며 꽃나무, 난 등을 길렀고, 거실에 수족관을 직접 만들어 열대어를 기르기도 했다. 심지어 베란다에 흙을 채워 텃밭을 만들어 상추와 꽃나무를 심었고, 한쪽에는 연못을 만들었고, 금화조와 문조 등 새까지 길렀다. 새털이 집 안까지 날아다니며 냄새가 난다는 불평이 많았고, 연못물을 갈아주고 새장 청소 등으로 쉬는 날이나 아침저녁으로 할 일이 많았다.

그 모든 일이 힘들거나 귀찮게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또 어느 아파트에 살 때는 싸기도 하였지만 옥상을 마당처럼 사용하려고 일부러 최상층을 구입하였다. 도시에서, 특히 콤팩트한 데다 공간의 여유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아파트에서 그 널따란 옥상은 얼마나 유용한 공간인가? 그런데 대부분의 아파트 옥상은 아무것도 없이 방치되어 있고, 심지어 사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폐쇄된 채로 있다. 그 공간이 아까워 분재며 꽃나무 심지어는 잠깐 동안이지만 강아지까지 기르며 마치 내 마당처럼 사용하면서 단독주택처럼 생활을 했다. 역기와 아령을 준비하여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하고, 산책하는 공간으로 그 같이 시원하고 좋은 곳은 없다. 물동이를 매일 아침마다 나르고, 무더운 어느 여름밤에는 동서들과 고기까지 구워 먹기도 했다. 그러니 그 아파트에 사는 동안 아파트 관리사무소와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많이도 벌였다.

땅 보러 다니는 즐거움

또 쉬는 날에는 당장 집을 지을 것도 아니면서 집 지을 만한 곳을 많이도 돌아다녔다. 주로 양평이나 이천 등지와 서울의 개발제한구역에 있는 취락마을 등을 찾아다녔다. 특히 이런 취락마을에는 50∼100여 호의 주택들이 구획되어 도시형 전원주택을 짓기에 좋고, 백화점이나 병원 등 편의시설이 가까워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이 없는 곳이다.

이렇게 경치 좋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집 짓기 좋은 곳을 많이도 돌아다녔는데 언젠가 지을 내 집을 위한 땅, 그런 땅을 보러 다닌다는 것은 어느 일보다 즐겁고 흥겨웠다. 비록 그것이 내 땅도 아니고 내 집도 아니지만 '아파트가 아닌 집', 특히 마당이 있고 조경이 잘 된 그런 집을 본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집은 주인을 잘 만나 행복한 집이 있다. 집을 예쁘게 지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당이나 텃밭 등을 보면 정말 그 집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애완견은 물론이고 연못이 있는가 하면 꽃과 조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진 푸른 조경, 그리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넝쿨장미 등은 집 주인뿐 아니라 보는 사람들에게도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좋은 조건을 가졌으면서도 전혀 그런 곳에 살 자격이 없는 사람도 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넓고 좋은 마당은 훼손된 채로 있고 꽃나무 하나 없이 방치되어 주인을 잘못 만난 그런 집은 불쌍하기까지 하다.

내 집 설계 연습하기

그래서 그간 돌아다니면서 보아 온 집과 땅 등을 떠올리며 내가 집을 설계해 본다. 우선 살기 편하고 예쁘게 짓는 것도 좋지만 취미생활 등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집을 짓고 싶다. 무엇보다도 애완견과 토끼, 병아리, 새장, 연못 등은 반드시 만든다. 마당에는 멋진 소나무를 현관 부근에 심는다. 철 따라 꽃이 피는 나무를 심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눈 덮인 겨울을 느낄 수 있는 전나무도 심는다. 나무는 이왕이면 대추나 감나무 등 유실수를, 그리고 마당은 잔디만을 심어 단순하게 푸르름을 느낄 수 있게 하고 텃밭은 주방 가까이에 만든다.

하여간 그동안 머릿속에 지은 집이 수십 채도 넘는다. 때로는 직접 토지 관련 서류를 떼어 실제 설계를 하기도 했다. 설계란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머릿속에 상상한 자신의 생각들을 도면이라는 곳에 표현하면 된다. 더욱이 남의 건축을 하다가 내 집을 구상하고 설계하는 일은 정말 홀가분하고 흥겨운 일이다.

우선 다른 사람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좋다. 건축주를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 복잡하고 어려운 조건을 맞출 필요도 없다. 공사비니 설계비 등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야말로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내 뜻대로 할 수 있어서 좋다.
물론 이것은 도면상의 이야기다. 도면은 실현되지 않으면 아무 쓸모도 없는 그저 아이디어요,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한 도면, 그야말로 그림 속의 우리 집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한 적이 있다.
어느 결혼기념일인가? 아내에게 미래의 우리 집 설계도면을 선물하여 감동(?)을 주었을 때다.

가족 설득하기

전원주택에 살기 위하여 우선할 일은 아내를 설득하는 것이라고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극히도 지당한 말이다. 나만 좋아서는 "너∼나 하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 뻔하다. 특히 아내들이 살림에서부터 자녀 문제 등 생활의 전반에 대하여 전권을 행사하는 이 시대에 어찌 나 좋은 것만 생각할 수 있으리요.
요즘 여자들 치고 아파트를 싫어할 사람은 없듯이 아내도 아파트를 떠난다는데 부담을 가졌다.

또한 태어날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아온 아이들도 일반주택에 산다는 데 그다지 탐탁치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 교통이 좋기를 한가, 가게나 생활편의시설 등이 가까이에 있는가, 또 친한 친구들과도 멀리 떨어져야 하니 좋아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아이들과 아내는 참으로 착하고도 고마웠다. 특히 아내는 자금에 문제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대과 없이, 아주 흔쾌히는 아니지만 못 이기는 척, 어쩔 수 없는 척, 모르는 척 그렇게 넘어갔다. 그리고 아이들이야 일찍이 가장이고 집안의 대표인 아버지가 결정한 극히 중요한 가정 시책(?)에 극력 반대까지 할 수 있겠는가.

특히 아내와 아이들이 심하게 반대할 수 없었던 것은 평소 유별난 나의 취미생활을 보아온 데다, 기회 있을 때마다 "앞으로 우리는 언젠가 전원주택에서 살 거다"라고 주지시켜 온 덕에 그렇게 결사적인 반대 없이 내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어쨌거나 그런 가족에게 감사할 뿐이다.

드디어, 내 집을 짓게 되던 날

그리하여 평생의 소원인 내 집, 바로 내 집을 짓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격스럽고 흥분되는 일인가. 그 누가 이런 심정을 헤아릴 수 있으리요.
아예,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그 정도 자금이면 차라리 대치동에 재건축 아파트를 살 일이지" 또 어떤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단독주택에 살라고 그래? 편한 아파트가 좋지. 쯧쯧―"

하여간에 초치는 이야기는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 그런 사람들이 어찌 인생을 알고, 살아가는 참 재미와 의미를 알겠는가. 아무리 부동산적 가치도 좋고 돈이라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제 우리도 사는 것 같이 살아야 하지 않은가.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즐거움을 느끼고 재미를 알 수 있을 때 삶을 즐기며 살아야지 언제까지 그런 것들에 얽매여서…….
드디어 건축허가니 복잡한 여러 절차가 끝나고 땅을 파던 날의 감격과 흥분, 그 날은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이 날,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다.
"∼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 짓세"(찬송가)
목사님은 어찌 그리도 이 날의 행사에 잘 어울리는 찬송가를 선택하셨는지 감사 찬송을 드리며, 날씨마저도 쾌청한, 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날. 그렇게 내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田


글 김인환<건축사, TAS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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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에세이] 내 집을 짓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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