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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하면, 요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떠올릴까?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를, 그리고 거주 수단으로보다는 부동산적 가치에 비중을 더 두지 않을까? 예전에는 단독주택에서 주로 살았지만 지금은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아파트에 살아야 수준 있는 것처럼 인식할 정도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는 정말 특이하다. 외국의 경우에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일반 서민들의 주거 수단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특히 고층 아파트나 주상복합 등에서 살아야 부유하고 잘 사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니 아파트 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심지어 프리미엄까지 붙어서 매매될 정도니 거주 수단보다는 부동산적 가치에 비중을 두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무슨 아파트에 사세요

택배 등을 신청할 때 주소만 이야기하면 반드시 '무슨 아파트 몇 동 몇 호냐'고 재차 물어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파트에 거주할 정도로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원래 아파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르 꼬르뷰지에(Le Corbusier)가 발명한 특수 공법이다. 철근과 콘크리트, 유리 등의 발명으로 가능해진 적층 공법인 아파트는 좁은 대지에 많은 주거 공간을 만들 수 있는 혁신적인 공법으로,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좁은 나라에서 그 효용성이 높다.

그래서 주택 보급률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던 시기에 정책 당국자들의 노력과 건설회사들의 상품화 전략으로 아파트는 급속하게 퍼졌고 이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주거 수단이 되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때 어느 여성지에 실린 아파트에 관한 글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에 처음 아파트라는 것이 도입되던 당시 어느 작가가 쓴 아파트 생활기로, 아파트란 도저히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어울릴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즉 된장, 김치 등 냄새 많은 우리나라 음식의 특성과 처가와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는 고정 관념으로 아파트는 도저히 우리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금 그러한 이야기는 한낱 어느 글쟁이의 우스갯소리에 불과하고, 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피워 최근에는 한국형 아파트가 외국에까지 수출되고 있을 정도다.

아파트가 그렇게 좋기만 한가

아파트는 참 편리하고 좋기는 하다. 콤팩트(Compact)한 공간 구성과 편리성으로 특히 주부들에게는 그만이다. 또한 도둑에 대한 염려도 적고 특별히 관리할 필요도 없다. 또 현관문만 닫아 놓으면 한 가족만의 아늑한 공간으로 이웃을 의식할 필요도 없으니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같이 좋은 공간은 없다.
지난 달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그리고 봉정사 등 전통 건축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의 건축을 돌아보는 내내 선조들은 이런 건축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지나치게 생활의 편리성과 쾌적함만을 추구하는 고정 관념 탓인지, 이렇게 추운 겨울 자녀 양육, 교육, 교통 문제 등을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그런 곳에 그렇게 훌륭한 건축을 하며 살았을까 의아하기까지 하였다.

진정한 건축은 약간의 불편함 가운데 느껴지는 만족이라는 말이 있다. 약간 부족하고 불편한 것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좋고 더 인간적이다. 지나치게 더운 것보다는 약간은 싸늘하고, 리모콘 등으로 가만히 앉아 모든 일을 하기보다는 직접 몸을 움직이게 하고, 손수 가꾸는 가운데 즐거움을 주는 건축이 더 좋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크게 움직일 필요도 없고 더욱이 고치거나 가꾸기보다는 콤팩트한 공간에서 편안한 생활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니 이러한 현대인의 특성에 아파트는 제격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산다는 것

사람이 산다는 것은 각자 취향이나 추구하는 바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나치게 편리한 것보다 인간적이고 취미 생활 등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살맛 나지 않을까?
살기 좋은 집이란 편한 것도 좋지만, 우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집일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살아가기보다는 가족 특히 자녀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활은 거의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다.

물론 가족도 중요하고 우리들의 자녀는 정말 중요하고 귀하다. 특히 요즘 사람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열성은 가정을 빠개기까지 하면서 기러기아빠를 양산할 정도니 실로 놀라울 정도다. 그러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먼저 가족의 승낙이 필수 조건이고 무엇보다 자녀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다. 이런 면에서도 아파트는 대부분의 주부들이 좋아하고 아이들 교육을 위한 학원 등이 아파트 단지 주위에 몰려 있어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 대부분이 언젠가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어하면서도 실제로는 가족과 아이들 때문에 답답한 아파트에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 단독주택에 살면서 강아지며 토끼, 병아리를 기르던 추억을 그리워만 할 뿐 그런 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예 상상도 못한다. 마당에는 철봉과 역기가 있어 운동도 했다. 텃밭에는 계절 따라 온갖 꽃을 볼 수 있었으며 상치나 고추 등을 길러 마당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저런 사정으로 그렇게도 하고 싶은 취미나 문화생활은 꿈도 못 꾼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사람들

이 외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엄청나게 값비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다. 아파트 값에 거품이 많다고 하지만 어떻든 60, 70평형 아파트 값이 수십 억을 호가한다. 차라리 그런 가격이라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몇 채나 더 짓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그 복잡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아파트에서 멋없이(?)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그런 곳에 살아야 수준 높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니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혼기가 찬 자식이 있는 경우 좋은 혼처를 구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곳으로 이사를 간다니 정말 요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긴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대붕(大鵬)의 뜻을 모르는 나 같은 사람보고 한심하다고 하겠지?

그런 아파트를 장만하는 방법을 보면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요즘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아파트는 주로 분양을 받거나 아니면 남이 살던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수천만 원에서부터 수십 억에 이르는 엄청난 값을 주고 사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에 별로 불만이 없다. 그러한 값과는 비교도 안 되는 옷이나 가구 등을 살 때 얼마나 꼼꼼히 살피고 비교해서 구입하는가? 입어 보고 살펴보고 색깔과 디자인 등을 위해 여러 매장을 둘러본 다음에 옷이나 가구 등을 고른다. 거기다 몸에 맞지 않는 곳이 있으면 수리를 해 달라고 요구할 뿐 아니라 흠이 있으면 아예 바꾸어 달라고 아우성까지 친다.
그런데 왜,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나게 비싼 아파트를 구입할 때는 건설회사에서 자기네 편리한 대로 일방적으로 지어 놓은 아파트를 그냥 사는가? 그 집은 자신의 취향이나 특성 그리고 가족 구성 등을 위하여 지은 것이 아닌데도 분양을 받은 아파트가 자신에게 꼭 맞는 것처럼 꿰맞추어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에서 자신들에게 잘 맞지 않아 복잡하게 살면서도 다 그런 거지 하며 거기에 맞추며 살아간다. 그것도 엄청난 분양가에 프리미엄까지 얹어 주면서…….

아파트뿐 아니라 주택을 구입할 때도 그렇다. 소위 집장사나 다른 사람이 지은 주택은 자신의 특성이나 취향과 맞을 리 없다. 그런데 그러한 구조에 자신을 적당히 맞추어 살아가고, 자신이 짓는 것보다 웃돈이 더 붙어 있는 가격을 주고 산다.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이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아예 돈을 더 주더라도 지어 놓은 집을 사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건축을 하면서 느낀 요즘 사람들의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들이다.

내게 맞는 집을 지어 살아보자

왜 그럴까?
옷이야 값도 그렇고 또 여러 벌이 있으니까 쉽게 생각해도 되지만, 집이란 하루 이틀 사는 것도 아니고 온 가족의 휴식공간이자 안식처인데…….
이제 어느 정도 조건-자녀 문제나 가족의 이해-이 준비된 사람들은 자신에게 꼭 맞지도 않아 답답하고 꽉 막힌 콘크리트 상자 같은 아파트를 떠나 자신의 특성과 취향에 맞는 집을 짓고 살아 보자. 특히 이제 어느 정도 자녀 문제가 해결된 사람이라면 이제는 '나'도 중요하지 않은가? 늙고 병들기 전에 제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을 때 남은 여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 보자.

그래서 자신과 가족의 특성이나 취향에 맞는 자신의 집을 지어 보자.
건축은 생각처럼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지 않다. 우리가 그 동안 살아오고 지내 온 집, 사무실, 학교, 병원 등이 바로 건축이다. 더욱이 주택은 공장이나 특수건물처럼 그 기능이 복잡하지 않고, 우리가 그 동안 살아온 공간이다.

주택은 건축 전문가보다 오히려 주부나 일반인들의 아이디어가 더 좋을 때가 있다. 건축 전문가는 기술적이고 건축법적인 고정 관념과 생각에 빠져 다양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그런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기발하고 특이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기도 한다. 이는 실제로 내 집을 짓는 동안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느낀 것인데 전문가가 아닌 생각과 아이디어를 건축 전문가가 기술적, 법적으로 조정해 주면 된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건축 전문가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렵지 않게 내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소원인 내게 맞는 집을 지어 거기서 꽃도 가꾸고, 강아지도 길러 보고, 연못도 만들고, 병아리도 까 보고, 대추나 감 등 열매도 따고, 텃밭에 상치나 고추를 심어 보고, 새나 토끼랑 같이 살아 보자. 그리고 온 가족이 일찍 일어나 마당에 나와 운동도 하고 마을 이곳저곳을 산책도 해 보며 아기자기한 삶을 살아 보자. 또 마당의 잔디가 계절 따라 변하는 모습과 이런 추운 겨울에는 고향 집 싸리울 같은 곳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행복한 삶을 살아 보자.

이렇게 살아가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돈과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서울이나 도시 근교에는 도시형 전원주택을 지을 만한 곳이 얼마든지 있고, 이런 곳에 집을 짓는 비용은 웬만한 아파트 값 정도면 가능하다. 또 직접 집을 가꾸고 다듬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바로 이런 집을 가족의 특성과 취향에 맞게 직접 구상하고 지어 보자!
그래서 그 동안 꿈꾸어 온 모든 것을 즐기면서 살맛 나는 나만의 삶을 살아 보자!田


김인환<건축사, TAS건축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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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에세이] 집에 대한 생각-내게 맞는 집을 지어 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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