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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서른한 살의 노총각 노처녀로 열 번도 못 만나고 두 달 만에 결혼한 우리 부부는 알콩달콩 사랑을 키울 만한 시간이 없었다. 그 흔한 티격태격 사랑싸움 한 번 못해 보고 많은 나이 탓에 어른들의 성화에 밀려서 서둘러 날짜를 잡았던 커플이다. 거기에 둘 다 성격마저 무덤덤한 편이라서 남들이 깨가 쏟아진다는 신혼마저 가을날처럼 따뜻하고 아늑하기만 했을 뿐 잔재미 없는 신혼생활이 지루하기만 했었다.

그런 분위기를 내가 먼저 바꿔 보고 싶어서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춰 베란다 테이블에 포도주와 멋진 양초를 장식하고 감미로운 팝 음악 CD를 골라 놓았다. 그때까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잡을 참이었다. 드디어 퇴근을 한 남편과 저녁을 먹고 베란다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미리 골라 놓은 음악 CD가 돌아가고 포도주도 잔에 채워지고 촛불이 켜졌다. 창밖에는 휘황한 도시의 야경이 우리의 분위기 있는 밤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어떻게 오리지널이 한 곡도 없어? 전부 다른 가수가 부른 복사판이잖아. 차라리 저런 음악은 안 듣는 게 좋아.”

갑자기 벌떡 일어난 남편은 오디오에서 CD를 빼내더니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가수가 불렀으면 어때? 어차피 분위기도 비슷해서 잘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CD를 그렇게 버리는 게 어딨어?”

“뭐라구? 어떻게 비지스(Bee Gees)의 ‘Be who you are’를 저렇게 부를 수가 있냐고? 그건 비지스에 대한 모독이라고.”

남편은 나를 팝에 대한 문외한 취급을 하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내었다.

“단지 원곡이 아니라고 CD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당신이야말로 비지스를 모독하는 거야?”

사실 그 CD는 월간 잡지를 살 때 부록으로 딸려 온 것이었으니 정품이 아닌 것은 사실이었다. 나한테는 오리지널 곡들이 아닌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 정서에 맞는 음악’이 중요한 것이었다. 아마도 당시에 그 월간지를 샀던 것도 부록이었던 그 CD에 있는 곡들이 내가 좋아하는 테마를 가진 음악들로 선곡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리바이벌을 하려면 정식으로 해서 원곡과는 다른 느낌이 있던가, 모창을 하려거든 분위기가 비슷하던가, 저런 음악은 ‘고속도로 뽕짝 메들리’만도 못하다고.”

“그냥 음악만 들어도 좋은 거지. 전문 지식까지 총동원해서 음악을 감상하면 더 머리가 아프지 않아. 나 같으면 그런 거 외울 시간에 공부를 했겠다.”

나는 남편이 팝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펼치며 신혼 초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으로 오해하고는 결코 지지 않는 입심으로 남편과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 논쟁이 밤 깊어 갈수록 언쟁으로 비화되었다가 급기야는 그날 서로 등 돌리고 자는 사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남편이 팝 음악에 조예가 깊은 DJ 출신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함께 차분하게 음악 감상 한번 못해 보고 만난 지 두 달 만에 졸속 결혼을 했으니 남편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단지 음악을 음악으로 듣는 나와 그 음악에 대한 배경과 가수에 대한 정보, 음악의 경향 등등을 두루 꿰고 있는 디스크자키들과는 당연히 음악을 감상함에 있어서도 ‘다름’이 있음을 신혼이기 때문에 더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었다.
신혼 초의 분위기 있는 밤이 그렇게 깨진 이후, 남편은 절대로 드라마에서 귀에 익숙한 배경 음악이 흐를 때에도 나 보다 먼저 ‘아는 척’을 하지 않는 배려를 해준다. 나 역시 음악에 관한 한 억지 논리로 남편을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그 음악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등, 가수 이름을 모르겠다는 등으로 남편이 나한테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을 기회를 주고 참을성 있게 들어주게 되었다.
남편은 대학 시절 내내 공부는 뒤로한 채 음악다방 DJ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시내 유명한 음악 감상실의 DJ로 소녀 팬 깨나 끌고 다녔던 모양이었다.

“우리 한참 학교 다닐 때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음악 프로를 당신도 알까?”
“어머, 나 중·고등학교 다닐 때 그 프로 들으면서 공부했고 엽서도 많이 보냈는데 그 걸 모를까봐.”

“그래? 내가 그 프로의 객원 DJ였잖아.”

“정말!”

“수요일마다 아마추어 DJ 클럽에서 음악을 선곡해서 틀어주는 코너가 있었어. 내가 그 DJ였잖아.”

“어쩐지, 그래서 ‘아마추어 DJ클럽’이 전혀 낯설은 명칭은 아니더라. 나도 그 프로를 들으면서 사춘기를 보낸 셈인데, 어쩌면 당신이 내가 보낸 엽서를 읽어 줬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에 우리가 만났더라면 당신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야, 그치?”

“……”

후환이 두려웠는지 남편은 내 억지 소리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웃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남편은 목소리만으로도 가슴이 저렸던 소녀들의 우상이었던 ‘음악다방 DJ 오빠’같은 모습은 아무리 뜯어봐도 없다. 휘날리고 다녔다던 단발머리는 어느새 다 빠져서 주변머리만 남았고 낭창하던 허리는 군살로도 모자라 둥글게 부풀어 오른 중년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시골살이를 하게 되면서 음악에 취할 마음의 여유도 없이 살다보니 남편과 DJ는 더 멀어지게 되었다.

“당신 DJ에 대한 미련 없어?”

“젊은 날 한때 객기였지, 미련은 무슨……”

“그럼 ‘아마추어 DJ클럽’ 활동을 하면서 제일 추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

“당시의 유명한 DJ였던 김광한 씨를 섭외해서 우리 클럽에서 발표회를 한 일이지.”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이라는 프로의 그 김광한 씨 말이야?”

“맞아, 그 김광한.”

“그 양반이 진짜 대전까지 내려와서 아마추어 DJ들을 한 수 가르쳤단 말이야. 그것도 당신이 직접 섭외를 해서……!”

“못 믿겠어? 어딘가 내 앨범에 그 사진이 있을 텐데.”

정말 남편의 말대로 당대의 유명한 DJ였던 김광한 씨가 있는 사진이 남편의 옛 사진첩에 고이 간직되어 있었다. 함께 살면서 한번도 ‘멋있다’고 여겨 본 적이 없는 남편이 그날은 달리 보였다.

“그런데 나한테는 한번도 당신이 멋지게 DJ 멘트를 날리며 음악을 들려준 적 없는 거 알아?”

“그랬나? 그럼 우리 집 마당에 낙엽이 떨어질 때쯤에는 음악 좀 한번 골라볼게.”

“당신 해마다 목련 꽃 필 때, 은행잎이 물들 때 찾으면서 몇 년이 흘렀는지 알아?”

“분위기가 돼야 음악을 틀지. 그러면 당신도 나한테 ‘오빠’하고 환호성을 질러줘야 하는데?”

“지금 그 나이에도 소녀들의 ‘DJ 오빠’ 소리가 그리워?”

어느새 우리 집 마당가의 은행나무 너머로 저녁놀이 내려와 있었다.田


글 오수향(ocho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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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내 남편은 한때 ''별밤 DJ''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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