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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거기 막대기 두 개짜리. 그게 부서지고 나면 그 옆에 눈사람도 떨어지쟎여.”

“여기요? 거리가 좀 있는데 떨어질까요?”

“된다니께. 어째 젊은 사람이 눈 밝아서 잘 할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구먼. 나는 오늘 빵빠레를 두 번씩이나 울렸다니께.”

이것은 우리 옆집 할머니가 제가 하고 있는 컴퓨터 게임에 훈수를 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 30대이며 인터넷 세대인 제가 옆집 74세 김경희 할머니한테 인터넷 블록 맞추기 게임을 배우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게임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던 제가 요즘엔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블록 맞추기 게임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옆집 할머니 때문입니다.

서울에 사는 작은아들네 집에 한동안 머무르면서 할머니는 저녁이면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인터넷 게임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았답니다. 저녁마다 온 가족을 열광하게 하는 인터넷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손자의 어깨 너머로 구경하던 할머니는 당신도 인터넷 바다에 빠져 보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손자를 통해 처음 배운 것이 블록 맞추기 게임이었습니다. 아들네 집에서 모두가 잠든 사이에 뒤늦게 배운 도둑질(?)로 꼬박 날 밤을 새던 할머니는 시골로 내려와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해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그런 마음을 헤아린 것은 역시 가까운 곳에 사는 큰며느리였습니다. 할머니의 큰며느리 역시 게임 마니아라서 할머니의 심정을 이해한 것이지요.

“어머니, 밤을 새우지는 마시고, 이제는 고스톱도 인터넷으로 치셔요.”

성격이 시원시원한 할머니의 큰며느리는 컴퓨터를 들여다 주더니 바로 인터넷을 연결해 드리고, 고스톱 게임에 할머니를 회원 가입까지 시켜 놓았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할머니는 인터넷 세상으로 들어가는 길목 길목을 찾기 위해 저를 뻔질나게 불러댔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인터넷 세상으로 한발씩 안내하게 되었지요. ‘오마이뉴스’를 찾아서 읽는 법이며,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인터넷 검색을 하는 법 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넓고 넓은 인터넷 세상에서 할머니가 가장 관심 있어 한 것은 역시 게임이었습니다. 게임은 하면 할수록 묘하게 사람의 내면에 있는 승부욕을 자극시키고 중독에 이르게 하는 마력이 있지요. 하지만 모니터에 깨알처럼 나타난 글씨를 일일이 읽고 이해하는 데는 74세의 연세가 부담스럽기도 하거니와 돋보기를 써도 눈이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에 할머니의 마우스는 게임 쪽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급변하는 세상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기보다는 과거 한창 때에 정립된 사고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세대 간의 언쟁이 생겼을 때는 그 간격을 좁혀 보려는 소모전 대신에 ‘세대 차이’라는 말로 그냥 누그러뜨려 버렸던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연세 드신 분들의 단단해진 사고와 마냥 신지식을 받아들이기에 바쁜 세대 간의 이해와 타협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지요.

그렇지만 김경희 할머니는 연세답지 않게 열린 사고를 가진 분입니다. 그 나이에 인터넷에 도전하는 용기를 내는 것만 봐도 그렇지만 할머니의 며느리들이 컴퓨터를 들여 주고 게임을 적극 권유하는 데에는 시어머니를 향해서 마땅히 하는 의무로서가 아닌, 더 깊고 끈끈하게 통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시골살이에 익숙하지 않아서 아직도 우왕좌왕 실수를 연발하는 우리와 할머니가 지난 6년 동안 이웃으로 지내면서도 작은 마찰 한번 일으키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 것은 할머니가 그 연세답지 않게 세련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자 양반, 우리 동네 세트장 생긴 거 인터넷에 올려서 선전 좀 많이 해야 할 텐디……”

할머니 집에서 저를 만난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제게 이렇게 말을 걸었습니다.

“벌써 나왔슈. 두 번씩이나 나왔는디. 내가 찾아서 보여드릴께유.”

그러더니 할머니는 동네 어르신을 모니터 앞으로 모셔다 놓고는 돋보기를 쓰고 더듬더듬 ‘오마이뉴스’를 찾아서 인터넷 세상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할머니는 아직은 게임과 고스톱, ‘오마이뉴스’ 밖에 모르지만 앞으로도 할머니의 인터넷 세상에 대한 도전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할머니의 인터넷 강사 노릇을 하면서 게임 맛에 들어 버린 것입니다. 컴퓨터만 켜면 블록 맞추기 게임 사이트부터 들어가 블록을 깨고 싶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아들 녀석에게 게임 좀 그만 하라고 수시로 면박을 주던 제가 요즘에 반대로 아들 녀석에게 ‘엄마도 블록 좀 그만 깨’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답니다.田


글 오수향(ocho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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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74세 할머니, 인터넷 게임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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