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충화면 가화리 SBS 드라마 오픈 세트장 완공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논과 담배밭이었던 가화 저수지 주변은 그동안 기초 공사가 끝나고 넓은 터로 닦여져 고풍스러운 옛 건축물들이 세워지고 있다. 그냥 그대로 두었으면 자연미는 있을지언정 지성미는 겸비하지 못한 어딘가 부족한 미인처럼 남아 있었을 땅이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다시 태어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도 없고 참조할 문헌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외에는 없는 상황에서 천년 전 삼국시대의 건물을 재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유난히 더운 여름 날씨와 잦은 비로 인해 공사가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제궁의 골격이 웅장하게 완성되어 가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문자의 기록과 유물이 많이 남아 있는 시대의 역사는 재현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백제, 신라, 고구려 삼국시대의 역사는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당시의 일본과 중국 등 주변 국가의 기록까지 참조해서 유추해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드라마 ‘서동요’ 오픈 세트장 역시 그런 절차를 통해 설계도가 완성되었다.
그런 식으로 복원한 건물이 부여의 ‘정림사지 역사관’ 건물인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일본의 사찰 건물을 모방한 것 같다고 불평을 한다. 그것은 우리 정서에 뿌리박힌 일본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일본이 백제로부터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21세기에 역으로 일본의 전통 건축물에 밴 백제의 흔적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무조건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는 9월 ‘서동요’ 드라마가 방영이 되면 시청자들은 최초로 백제 시대 궁궐을 재현해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주고 세트장의 건물들이 일본풍이 아니라 백제의 원래 모습을 일본 건축물에서 찾아 온 것임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드라마 서동요는 백제 무왕이 된 서동과 신라 선화 공주의 사랑이야기가 근간이 되겠지만 백제의 수준 높은 과학기술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연구소라고 할 수 있는 ‘태학사’를 짓는데 한층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술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인 ‘하늘채 마을’은 지붕을 너와로 올린 것이 가화저수지 풍광과 잘 어울려 정말 멋진 그림으로 지어지고 있다. 다른 촬영장과 달리 ‘서동요’ 오픈 세트장은 한번의 촬영을 위한 건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앞으로 5년 동안은 촬영을 계속해도 문제가 없도록 튼튼하게 짓고 있다.
부여에 드라마 오픈 세트장 설치가 결정된 이후에 부안에 있는 이순신 촬영장에 서둘러 다녀왔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물결이 파도가 밀려오듯 계속되는 것이 과연 인기 드라마의 촬영지임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촬영장이 부안에서도 4곳으로 분산되어 있어 관광객들의 집중도를 높이기가 어려웠고 가는 곳마다 ‘부안’을 알릴 수 있는 특별한 장치와 부대시설이 부족해서 불편한 점이 있었다. 방송에서 본 것보다 훨씬 보잘 것 없는 거북선이 떠 있는 채석강 관광지에 집중된 음식점들 역시 전라도의 맛을 느낄 수 없는 비슷한 메뉴들이 대부분이었고, 우리 일행이 들어갔던 음식점에서는 ‘뜨내기 관광객용’ 성의 없는 밑반찬(단무지, 콩나물 무침, 오뎅 볶음 등)이 첫 번째 실망을 안겨주었다.
부안의 촬영장에 대해서 소문에 비해 기대치를 높게 잡았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눈에 안 찰 수도 있다. 하지만 부여 사람들이 가화리 오픈 세트장에 걸고 있는 기대치를 맞추기 위해서는 부안의 경우를 눈여겨봐야 한다.
이미 부안은 격포와 채석강의 절경으로 이름이 난 곳이라는 기본 점수를 얻고 촬영장이 세워졌지만 부여의 가화리는 그야말로 동네 사람들만 알아주는 오지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가화리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물론 부여에서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유적들도 많이 있고 유명한 음식점들도 많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좀 더 편리하고 수준 높은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한다. 불행하게도 가화리 세트장은 서천군과 경계되는 지점에 있고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서천은 서해안 시대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가화리 세트장을 보러 왔던 관광객들이 부여군의 관광 서비스가 부실하다고 느끼면 서천군 쪽으로 발길을 돌릴 수도 있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부여군이 부안의 이순신 촬영지 같은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은 드라마가 시청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어야 하겠지만 부여군의 준비된
마케팅도 필요하다.
개발을 통한 관광객 끌어들이기 전략보다도 서동요 촬영장이 들어선 곳은 전형적인 농촌이며 때 묻지 않은 인심이 아직도 살아 있는 곳이라는 장점을 살리는 마케팅이 우선됐으면 한다. 그리고 ‘서동요’ 촬영장은 관광지마다 판치는 상업성보다 시골 마을의 정서를 충분히 느껴볼 수 있고 백제의 찬란했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서동요’ 촬영장에서는 그냥 둘러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 ‘서동요’라는 백제의 4줄짜리 가요를 이해하고 직접 배워서 불러 볼 수 있게 하는 체험 행사도 필요하지 않을까.
‘부여’라는 지명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백제의 옛 수도라는 것, 정림사지, 최근에는 금동대향로 등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유산만 가지고는 요즘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을 잡기에는 한계가 있는데 이제는 부여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백제의 옛 모습을 드라마 ‘서동요’세트장에서 만나 보게 될 것이다.
다음 주에는 부여의 세트장에서 주연 배우와 보도진, 스탭들을 초청해서 직접 제작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드라마 '서동요'의 성공으로 가화리 오픈 세트장이 부여의 새로운 명소로 부상하기를 기대해 본다.
글 오수향(ocho2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