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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우리 집 앞 신작로에는 둔중한 무게를 느끼게 하는 차량들의 질주가 이어지는 것이, 집 안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만 들어도 누구네 차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한적한 시골 마을인 우리 동네에 뭔가 새로운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비록 흙먼지를 날리고 고요를 삼켜버리는 덤프트럭이 주종을 이루고는 있지만 마을에 ‘사람이 제대로 사는 것’같은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여느 시골처럼 우리 동네도 풍경 속에 묻혀버릴 것 같은 정체 속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불편함마저 반갑게 여겨진다.

첩첩이 앉은 낮은 산들 사이에서 주로 담배와 논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뻗어봐야 토끼발 같이 짧은 거리에서 옹기종기 사는 우리 마을에 드라마 촬영장이 생기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난 달, 부여군과 서울 방송이 협약을 체결하고 백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50부작 드라마 ‘서동요’ 촬영지로 내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내정지가 바로 내가 사는 동네의 바로 옆 동네인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 가화 저수지주변이었다.
그 곳은 우리가 처음 이사 왔을 때, 저수지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서 머지않아 적어도 이국적인 전원주택 단지가 들어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본 적이 있던 곳이었다. 내 예측은 ‘겨우’ 전원주택 단지가 아닌, 백제 시대 궁궐과 백제인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드라마 오픈 세트장으로 들어맞은 셈이었다.

세트장을 유치하기 위해서 익산시와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과정이 있었지만 부여의 여러 면에서도 미처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작은 오지 마을인 우리 동네가 매스컴의 중심부인 드라마 촬영지로 떠오르게 되었다는 것은 한때 방송작가 교육원을 기웃거렸던 내게도 왠지 설레는 일이다. 또 국문학을 전공했기에 한글창제 이전인 이두체로 기록되어 삼국유사에 전해져 내려온 4구체 향가인 ‘서동요’를 원문으로 공부한 나한테는 굳이 인연이라고 꿰맞추면 인연인 셈이었다.

거기에 드라마 ‘대장금’으로 해외에까지 한국의 궁중음식 문화의 위상을 드높이고 ‘한류’ 열풍에도 한 몫을 한 김영현 작가와 이병훈 감독이 손을 잡고 그동안 조선 시대가 주무대였던 사극에서 벗어나 백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고대 백제 땅이었던 우리 동네에서 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역사책에 기록된 ‘대장금’이란 단어 한마디를 소재로 상상력을 발휘해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김영현 작가가 이번에도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 4줄짜리, 당시의 유행가였을 ‘서동요’를 50부작 드라마로 구성하겠다고 한다.

원문 ‘서동요’에 대한 학문적 해석은 학자들마다 분분하지만 경쟁 국가였던 백제의 무왕과 신라의 선화 공주의 젊은 날의 러브스토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원수지간인 몬테규가와 캐플릿 가문의 다툼 속에 희생양이 되고 말았던 서양의 대표적인 커플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에 비해서 우리의 서동과 선화의 러브 스토리는 낭만이 좔좔 흐른다.
백제 왕가의 혼외 자식이었던 서동은 감히 신라의 공주였던 선화를 넘보고, 색시로 삼기위해 노래를 지어서 퍼트린 기지가 있는 남자였다. 말하자면 로미오가 줄리엣의 2층 방 창문 아래서 가슴을 조이며 세레나데를 부를 때, 서동은 선화와 자신의 거짓 로맨스를 은근히 야하게 직접 작사 작곡해 서 온 장안의 꼬마들에 가르쳤다. 여러 사람의 입은 그 당시에도 요즘 인터넷처럼 무서웠던 모양인지 구중궁궐 요조숙녀였던 선화는 졸지에 저속한 유행가의 주인공이 되어 궁에서 쫓겨나고 기다리던 서동의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만다. 후에 이 커플은 백제의 왕위를 이어받았으니 우리 역사 상 가장 해피엔딩 러브스토리의 주인공들이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던 백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시청자들한테는 새로운 입맛을 선보이는 것과 동시에 우리 동네 가화 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광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같은 고대 국가의 도읍지였지만 신라의 도읍지 경주의 발전상에 항상 비교당해 왔던 부여군은 이번 드라마 촬영을 계기로 ‘관광 부여’의 이미지를 새롭게 다지겠다는 각오도 대단하다.
한여름 폭염이 물러가고 9월부터 방영되는 SBS 드라마 ‘서동요’가 백제 시대에 대한 새 지평을 열고 국민 드라마로서 각광 받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田


글 오수향(ocho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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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서동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우리 동네에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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