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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는 우리 남매와 옆집 삼남매 이렇게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다. 옆집 완휘와 미래는 우리 제선이와 정선이랑 동갑이라서 친하게 지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 외에 동네에서는 서로 몸을 부딪치며 노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도시 아이들은 사교육 때문에 방과 후에는 학원을 전전하느라 맘껏 놀 수가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시골 아이들이 자연을 벗삼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연마하며 자라는 것도 아니다. 인구가 줄어들다 보니 친구들을 찾아 놀고 싶어도 한 마을에서 또래가 없고 … 몇 골짜기를 건너서야 만날 수 있는 친구가 과연 죽마고우가 될 수 있겠는가.

그렇다 보니 시골 아이들이 더 컴퓨터와 TV에 집착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들 제선이는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컴퓨터에 앉아 세월을 보내기 일쑤고, 딸아이 정선이는 TV 만화 삼매경에 빠져버린다. 어쩌다가 옆집에 사는 완휘가 놀러오거나 우리 제선이가 완휘네 집에 놀러가도 둘이 같이 컴퓨터 게임을 하며 놀뿐 다른 놀이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 어릴 적에는 동네 공터가 시끌벅적하도록 숨바꼭질이며 오징어, 사방치기, 고무줄 놀이 등으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하게 맺히도록 놀다가 해질 무렵에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불러야 집으로 돌아가던 풍경은 이제 빛 바랜 사진첩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다.
모처럼 동생 미래와 함께 놀러온 완휘는 우리 제선이와 붙어 앉아서 컴퓨터 게임에 한창이었다.

“얘들아, 게임 그만 하고 밖에서 놀면 안 되니?”
“뭐하고 놀아요? 막대기는 가지고 놀면 다칠 수도 있고, 흙으로 두꺼비집을 짓는 것도 하지 말라면서요?”
컴퓨터 화면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않은 채 이렇게 대꾸하는 아이들에게 할말을 잃고 말았다.

“그럼 우리 올챙이 잡으러 가볼까?”
“정말이요. 아줌마, 올챙이 잡으러 가요.”

며칠 전 고사리를 꺾으러 갔던 골짜기 묵은 논다랑이에 올망졸망한 올챙이들이 새까맣게 모여 있던 것을 보며 아이들을 데리고 올챙이 사냥을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들에게 비오는 날 신는 장화를 신기고 종이컵 몇 개와 못쓰는 주전자로 무장을 시키고는 골짜기를 향해서 올챙이 사냥을 떠났다. 그동안 시골에 살면서도 생업에 바쁘기도 하거니와 아이들도 어려서 이런 놀이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올챙이가 사는 골짜기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종이컵으로 올챙이 잡는 시범을 보일 사이도 없이 논가에 쪼그리고 앉은 아이들의 흥분된 목소리가 골짜기를 덮어버렸다.

“아싸, 한 마리 잡았다. 정선아, 주전자 가져와.”
“어디? 어디? 나도 좀 보여 줘.”
“야, 여기 뒷다리가 나온 올챙이도 있다!”

논바닥 색깔로 보호색을 띠고 있던 올챙이들이 하얀 종이 컵 안에 갇히자 눈곱만하게 나온 뒷다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기 위해서는 뒷다리가 먼저 나오는 것은 다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죠. 노래에 나오잖아요.”
“그럼 우리 다같이 올챙이 노래를 해보자.”

졸지에 나는 아이들의 지도교사 역할을 떠맡아 시골에 살지만, 시골 아이들 같지 않은 아이들에게 올챙이 잡는 법과 올챙이에서 개구리가 되는 과정까지 설명하며 나름대로 신이 났다.

“제선아, 완휘야. 올챙이 잡이가 재밌니? 컴퓨터 게임이 재밌니?”
“올챙이 잡는 게 더 재밌죠!”

아이들의 대답은 의외였다. 컴퓨터 게임이 더 재미있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올챙이를 잡으면서 희열과 성취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내가 올챙이들이 불쌍하니까 조금만 잡고 그만 돌아가자고 성화를 대도 올챙이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이 올챙이 잡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또 한 가지 놀이를 위해서 산밑으로 흐르는 조그만 개울 속에 돌을 들어내 보았다. 몇 개의 돌을 들어내고 맑은 물이 고이기를 기다려 살펴보니 역시 1급수에만 산다는 가재가 웅크리고 있었다.

“얘들아, 가재도 잡아 볼래? 여기 가재도 있다. 이리와 봐.”

올챙이에 빠져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개울가로 모여들었다. 내가 발견한 새끼 가재 한 마리를 보여주자, 아이들의 흥분은 극에 달해서 집게에 물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만져보려고 다툼이 벌어졌다.

“여기 개울에 있는 돌들을 이렇게 살살 들어보면 가재가 웅크리고 있거든. 가재가 집게발을 떼어놓고 도망치기 전에 잡는 거야, 알았지?”

그날 조용하기만 했던 골짜기에는 우리 동네 네 아이들의 침입으로 올챙이와 가재가 수난을 당하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울려 퍼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마냥 싫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가재 네 마리와 올챙이 한 바구니를 전리품으로 챙겨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돌아 온 아이들은 마당의 돌절구에 물을 담아서 올챙이와 가재를 키워서 개구리가 되는 과정을 관찰하기로 했다.

다음 날 오후, 나는 우리 집에 찾아 온 꼬마 친구를 보고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완휘의 동생 여섯 살짜리 미래가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고 모래 놀이를 하는 장난감 뜰채와 바구니를 들고 나름대로 완벽한 차림새와 장비를 갖추고는 올챙이를 잡으러 가자고 우리 집 현관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전날 잡은 가재가 올챙이를 다 잡아 먹어 버려서 새로 잡으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미래의 동갑내기 친구인 우리 딸 정선이까지 합세해서 김칫거리를 절여 놓고 김치 담기 준비에 한창인 내 치마 꼬리만 쫓아다니면서 조르는 데 당할 재간이 없었다.

“정선아, 미래야. 올챙이가 알을 낳았어. 이리와 봐.”

그래도 학교에 다니는 오빠들이라고 돌절구에 잡아 놓은 올챙이를 살펴보며 내 눈치를 보던 제선이와 완휘의 감동에 찬 목소리에 미래와 정선이가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런데 올챙이가 알을 낳을 수 있던가?’ 田


글 오수향(ocho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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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올챙이가 알을 낳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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