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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어서 아직 산에 고사리가 안 올라왔을겨. 양지쪽에 이른 고사리는 올라왔을까? 오늘은 산에 좀 올라가 볼까.”

아직 나무에 물도 오르기 전부터, 산에 진달래가 피기 전부터 옆집 할머니는 뒷산을 바라보며 고사리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작년에 맛보았던 쫄깃하고 향긋한 고사리 맛을 기억하는 나도 덩달아서 고사리가 땅속에서 머리를 들어올리고 나올 날을 고대했습니다.

날이 따뜻했던 지난 주 어느 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집안일을 대충 해놓고 옆집 할머니에게 휴대폰을 걸어 보니 할머니는 벌써 산에서 고사리 꺾기에 한창이었습니다. 저한테 한 마디 귀띔도 없이 할머니는 올해 첫 고사리 찾기 원정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당장에 할머니의 뒤를 쫓아 산으로 향했습니다. 이제 시골살이 6년차인 저도 근동에서 고사리가 많이 나는 곳을 두루 꿰게 되었습니다.

철이 이르다 싶었는데 의외로 산에 오르자마자 기다란 고사리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머리에 흙을 이고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린 고사리들도 많았습니다. 누군가 뒤쫓아 올 것처럼 정신없이 고사리들을 꺾었습니다. 산들바람도 살살 불어오고 잡풀들도 아직 없어서 고사리를 찾아내는 일은 어렵기는커녕 콧노래까지 나올 것 같았습니다. 아직 산에는 다른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없어 올해 첫 고사리들이 저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어쩐지 고사리 무림의 최강자가 된 기분에 으쓱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많은 강호의 고사리 고수들이 아직까지 고사리 원정에 나서지 않은 것이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수풀 더미에서 내 움직임 소리와는 다른,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너구리나 산토끼가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는 부산한 소리가 아니라 조용한 움직임 소리였습니다. 행동을 멈추고 조용한 인기척을 향해서 귀를 기울이며 둘러보았더니 뒷골 할머니였습니다. 올해 일흔여섯 살 뒷골 할머니는 지팡이에 의지해서 간신히 걸으면서도 고사리를 찾아서 산비탈을 힘겹게 헤집고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뒷골 할머니도 고사리 무림의 강자 중에 한분이었습니다. 작년부터 관절염 때문에 무릎이 아파서 고사리계 은퇴를 선언했던 분이지요. 그러면서 우리 옆집 김경희 할머니에게 굵은 먹고사리가 많이 나는 곳에 대한 정보를 비밀리에 전수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김경희 할머니를 사부로 모시고 뒤따라 다니면서 제법 고사리를 꺾어서 친지들과 잘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산에 다니시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시려구요.”
“그러게, 우리 아들이 고사리 꺾다가 다치면 큰일난다고 성화를 대는데도 몰래 나와봤슈.”
“고사리는 많이 꺾으셨어요?”
“이제 눈도 잘 안 뵈고 지팽이까장 짚고 다니는데 꺾으면 얼마나 꺾겠슈. 그냥 운동 삼아 나와 봤지. 젊었을 때는 이 산에서 고사리깨나 해서 장에 팔아서 애들 학비도 주고 했는디…”

고사리는 몸이 불편한 사람도 밖으로 끌어낼 만큼 혀끝에 감기는 맛에서나 시골살이에 보탬이 되는 환금성에서나 매력적인 나물입니다.

“이 산에 고사리가 그렇게 많아요?”
“아까 보니께 저쪽 응달에서 돌아댕기대유. 거기는 가는 고사리만 있는덴디. 조기 모퉁이를 돌아서 묵은 밭 있는디부터 가봐야지. 거길 가야지 굵은 먹고사리들을 꺾지. 아까 식전에 숙자 엄니가 한 보따리를 해가는 것이 오늘은 가봐야 틀렸슈.”

내가 첫 고사리라고 좋아했던 것은 강호의 고수들한테는 관심 밖에 있는 고사리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시골 살이 6년차에, 고사리 찾기 원정 3년차인 주제에 조금 전까지 고사리 찾기 고수가 된 것처럼 우쭐했던 나는 기가 팍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땡이가 굵고 검정색이 나는 먹고사리가 나는 곳은 따로 있슈.”
“거기가 어딘데요?”

저는 뒷골 할머니 곁으로 바짝 달라붙어서 할머니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나는 이제 이렇게 조금만 걸어도 숨까정 차서 고사리 찾기는 다 틀렸슈. 거기 발 밑에 고사리 하나 있네유.”

정말로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 보이는 뒷골 할머니였지만 젊은 날 고사리계의 강자였던 열정만은 남아 있는지 한탄처럼 말을 하면서도 고사리를 찾는 눈빛은 멈추지 않더군요. 그러더니 아예 판판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서 지팡이로 고사리가 있는 곳을 저한테 가리키기 시작했습니다. 뒷골 할머니가 가리키는 대로 고사리를 꺾은 것을 그냥 내 보따리에 넣을 수가 없어서 할머니의 보따리에 넣어 드렸습니다.

“뭘 그런대유. 안 그래도 되는디…”

말은 이러면서도 뒷골 할머니는 내가 꺾어 주는 고사리가 싫지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뒷골 할머니의 비위를 맞추면서 굵고 실한 먹고사리가 많이 나는 곳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우리 동네 고사리계를 평정할 야심을 품었습니다.

“고사리는 말유, 너무 응달도 아니고 양지도 아닌 곳에서 많이 나지유. 그리고 그렇게 멀뚱하게 서서 찾으면 안 보이는 것이 고사리유. 앉아서 아래에서 위를 보고 찾아야 언네(어린 아이) 손처럼 오므리고 있는 고사리가 보이는거유.”

비법을 전수 받을 고수를 찾아 무림을 헤매던 협객은 드디어 비범한 도인을 만나 물지게부터 지게 되었어도 머지않아 칼날을 번뜩이며 강호에 군림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비법 전수의 길은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그 후로도 한참동안 뒷골 할머니의 지팡이가 가리키는 대로 고사리를 꺾어 드렸지만 쉽게 비책을 가르쳐줄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중간에 그만 두겠다고 하기도 어려워서 그 날만큼은 마음을 비우고 은퇴한 고사리의 달인을 위해서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얼라, 여태 여기서 뭘 한디야. 내가 작년에 제선 엄마랑 같이 다녔던 저 뒷고라당(뒤골짜기)으로 오라고 했쟎여. 하도 안 오길래 내가 옴방진 고사리는 다 꺾어와 버렸쟎여. 이것 좀 봐. 아까 진작에 나를 따라 왔으면 제선 엄마도 많이 꺾었을 텐디.”

어느새 나타난 우리 옆집 김경희 여사의 보따리에는 정말로 굵고 검은 먹고사리가 한 가득이었습니다. 정작 고수는 옆집에 살고 있었는데 먼 곳을 헤매면서 헛꿈을 좇았습니다.

“낼 모레 비 오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고사리가 나올규. 그 때는 아침 일찍 와서 꺾어유.”

뒷골 할머니는 이 말을 남기고 한손에는 지팡이를 다른 손에는 내가 꺾어 준 고사리 보따리를 들고 총총히 산을 내려갔습니다. 田


글 오수향(ocho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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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시골살이 6년 만에 고사리계의 최강자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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