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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아직 나는 잠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밖에서 우리 개들이 짖는 소리가 꿈결같이 들릴 때는 우리 집에 누가 살짝 다녀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집 텃밭에 배추와 무 등의 김장 채소를 심은 옆집 할머니가 밤새 배추가 얼마나 자랐는지 벌레가 뜯어 놓지는 않았는지 보러가는 것입니다.

우리집 텃밭에 함께 농사를 짓기로 한 옆집 할머니는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텃밭을 오가며 우리 몫의 밭일까지 돌봐 주십니다. 놀고 있는 우리 텃밭에 김장거리를 심자고 앞장 선 옆집 할머니의 요즘 살아가는 유일한 낙이 이 텃밭의 채소를 손주 키우듯이 돌보며 무엇을 더 심을 것인지 구상하는 것이랍니다.

옆집 할머니는 농사일에서는 진작에 은퇴를 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모시를 짰습니다. (한산 모시장이 우리 바로 옆 동네이기 때문에 우리 근동에는 아직도 모시 짜는 아낙네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체력이 부쩍 떨어져 더 이상 모시 틀에 올라앉을 기력도 없어서 그나마 모시 짜기에도 손을 놓았습니다.

평생을 습관처럼 해오던 농사일에도, 모시 짜기에도 손을 놓은 옆집 할머니는 한동안은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으셨습니다. 그러던 차에 우리가 놀리고 있는 텃밭을 발견한 것입니다.
“밭에 또랑(도랑)을 안 쳐줘서 어제 밤 비에 씨 뿌린 거 다 씻겨 내려가는 줄 알고 잠도 설치고 새벽같이 나와서 또랑쳤다니께”

“아이 참, 병 나면 어쩌시려구요. 삽질 같이 힘든 일 할 때는 저를 부르지 그러셨어요.”
“농사는 아무나 짓는 줄 아남? 배추 심어놓고도 한 번도 안 나와 보구선…”
우리가 처음부터 농사일에 관심을 안 갖은 것은 아닙니다. 농사짓는 일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시골 마을에 첫 발을 디뎠던 5년 전, 우리는 천 평의 땅을 임대해 고추를 심었습니다. 시골 생활에 대한 적응의 한 방법으로 농사를 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농사일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동네 어르신 한 분을 스승 삼아 고추를 심고 따고 말려서 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무서리가 내리는 늦가을 고추 농사를 끝내고 손익 계산을 해보니 인건비에 농자재 값에, 임대료 등을 제하고 나서 우리 손에 남은 돈은 겨우 팔십여 만 원이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익숙하지 않은 일에 부대끼고 땀을 흘린 대가가 남편이 운영하던 회사의 직원들 한 달 급여보다 적더군요. 그 해에는 고추 농사가 풍년이라 유난히 고추 값도 쌌습니다. 인건비 안들이고 부부의 노동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농산물을 수확했을 때 남는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전혀 몰랐던 거였죠.

고추 농사의 허탈함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은 그 뒤에 일어났습니다. 빈 밭이 있다고 무를 심어보라는 동네 사람들의 말에 그대로 했는데 제법 수확이 좋았습니다. 시세도 나쁘지 않아서 무 농사에서 고추 농사의 서운함을 만회하나 했습니다.

한 트럭 가득 무를 뽑아 놓고 가격을 얼마나 받게 될지 즐거운 상상을 하며 잠든 밤에 갑작스럽게 닥친 한랭전선을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우리 무들은 장에 나가보기도 전에 트럭에서 다 얼어버렸습니다.

하루 밤 사이에 다녀간 냉해는 밭에 남아 있던 무들도 싹쓸이를 해서 그 해에는 오히려 무를 사서 김장을 하며 무의 시원한 단맛에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동네 창피해서 얼어서 못쓰게 된 무들을 몰래 처치하느라고 언 땅을 파고 묻느라 고생은 얼마나 했게요.

우리는 첫 농사에서 가격 하락과 천재지변 등 농민들이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난제들을 다 겪었습니다.

“농사일은 우리하고는 인연이 안 맞는 것 같아. 처음에 맘먹었던 대로 농산물 가공업을 해야겠어.”

첫 농사의 쓰라린 경험을 맛 본 남편이 그래도 좌절하지 않은 것은 낙천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농산물 가공과 유통업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보 농사꾼에게는 다시는 도전하기 어려운 참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나는 다시는 하늘과 땅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노력을 해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농사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땅과 몸이 하나가 되어서 농사일에 매달릴 자신이 생길 때까지는 돈을 만들려고 하는 농사일은 하지 않기로 했던 것입니다.

절대로 농사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했지만 시골에 살면서 땅을 그냥 놀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년에도 고추모종을 가져다주고 같이 심어주는 수고까지 아끼지 않는 동네 어르신들 덕분에 어거지로 고추 농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농약을 안 쓰고 우리 식구 먹을 만큼만 수확하겠다고 태평스럽게 고추밭을 관리했더니 온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 잔소리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배추가 얼마나 컸는지 궁금하기는 하던감?”
비가 걷힌 저녁 무렵 텃밭으로 나가보았더니 어느새 옆집 할머니가 오셔서 배추 모종 사이에서 벌레를 잡고 계십니다.

“그새 배추 싹이 상추만해졌네. 쪽파도 진짜로 싹이 텄네요. 저는 무슨 일을 할까요?”
“아무 일도 안 해도 되니께 하루에 한번 씩 만이라도 나와서 쳐다만 보고 들어갔으면 좋겄어. 농사일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해야 되는 겨. 밭에 주인네의 발소리만 들려줘도 자라는 게 다르다니께”

“……”
어쩌면 우리의 첫 농사의 실패의 원인은 우리가 짓는 농작물에게 애정 어린 발소리를 들려주지 않고 경제적인 수단으로만 대한 탓이 아닐까요?

■ 글 오수향 (ocho290@hanmail.net)

∴ 글쓴이 오수향은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 폐교에 살면서 글쓰기의 꿈을 좇아가고 있는 주부입니다. 공주 KBS,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수향의 시골살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메일을 보내보세요. 더욱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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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농사일은 몸으로 해야 되는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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