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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무더위 속에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갔지만 한껏 달아올랐던 열기는 쉬이 가라앉지 않고 여전히 더운 바람을 몰고 다닌다. 그래도 시골마을에는 눈길을 한번 돌리면 푸른 들판이 있고 잠시 더위를 피해 찾아들 수 있는 큰 나무그늘이 많아서 아직은 선풍기 한 대 만으로도 10년 만의 무더위를 견딜 만하다.

오늘은 장날이다. 너무 더워서 장보러 나가기도 겁이 났지만 버스회사의 파업으로 그나마 다니던 버스가 운행을 중단한 상태라 내 눈치만 보고 있는 동네 할머니들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어서 태우고 장으로 나섰다.

무더위는 사람냄새 나는 시골장터의 정겨운 풍경까지 앗아가 난전을 벌인 상인들도 장꾼들도 확 줄어버렸다. 게다가 과일이며 채소 값은 얼마나 치솟았는지 동네 할머니들은 치마 속바지에 차고 있는 쌈짓돈 주머니를 움켜잡고 망설이며 열지 못했다.

그런데 장터 입구부터 상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장악하는 것이 있다. 눈에 뜨이게 ‘○○부동산’이라는 간판 서너 개가 한꺼번에 생겨 있었다. 그것은 조그만 시골동네에 어떤 조짐이 일고 있다는 것일 게다.

※ 신행정수도에 출렁이는 시골 사람들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연기·공주 쪽으로 발표되자, 그 인접 지역인 우리가 사는 부여지역의 땅 값까지 출렁거리고 있다. 거기에 부동산 가게들의 난립은 순박하게 땅 밖에 모르고 사는 시골 사람들을 흔들리게 하고, 우리처럼 도시와 문명에 회의를 느껴 시골로 피난해 온 사람들을 비감(悲感)에 젖게 한다.

“요즘 왜 그렇게 뜸해? 뭐 하느라고 바쁜데?”

장터에 생긴 부동산 가게들의 간판을 보고 울적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요즘 좀 바빴어. 친정에 일이 있어서 여기저기 다니느라고…….”
“무슨 일인데? 안 좋은 일이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공주와 부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의 부여 톨게이트로 예정된 지역이 고향인 그녀의 친정 동네에 불고 있는 뜨거운 부동산 투기 바람을 그녀도 맞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10년 전에 아버지가 사서 농사짓던 밭의 가격이 열 배도 넘게 튀어 올라 부동산 업자들이 친정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다고 한다.

당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을 아버지가 밭을 장만하는데 보태 주었기 때문에 그녀도 어느 정도는 그 밭에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쇠해진 몸으로 농사를 계속 짓기에 힘에 부친, 친정 부모들은 땅값이 한껏 부풀었을 때 팔아서 노후생활을 하겠다고 그녀에게 정보를 수집해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집안 일을 제쳐두고 고향집으로 관공서로 바쁘게 뛰어다녔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정부의 신행정수도 계획이 발표되고 난 후에 부여지역에 우후죽순 격으로 부동산 중개소가 생기기 시작하고 군청 민원실의 업무가 폭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 요즘 복부인이 된 기분인 거 있지!”
비감에 젖어들던 기분을 추스르려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나는 덤터기까지 뒤집어쓰고 말았다.

농사짓고 소를 키우느라고 한창 나이에 멋도 못 부리고 거친 일을 해야 하는 그녀의 형편을 생각하면 친정 부모님이 그 땅을 팔아서 한 몫 뚝 떼어주기를 함께 기원해 줘야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한적한 시골마을인 우리 동네에서, 내 눈 앞에서 투기의 바람이 닥친 것을 보니 솔직히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진작에 땅 몇 평 더 장만해 놓지 못한 회한이 더 앞섰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친구의 친정집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기분까지 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 땅을 알면 돈이 보인다
얼마 전에 모임에 나갔다가 백 억 이상의 재산이 있다고 자랑하는 한 여인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재테크를 하는 특별한 비법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나 어릴 적에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히곤 돈이 생기면 땅에다 묻어둬라 그러셨지. 그런 소리를 듣고 자란 나는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어른들이 돈을 주면 봉숭아꽃이 피는 화단에 땅을 파고 묻어두곤 했어. 여고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아서 조금씩 서울 변두리에 땅을 사 둔 것이 이렇게 된 거지 뭐.”

그때 당시,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가 마냥 부러워서 어릴 적부터 재테크 하는 법을 잘 가르쳐주지 않은 우리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기까지 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부동산 투기는 나한테는 전혀 거리가 먼 일이라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살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코앞에서 10여 년 전에 천 원 주고 산 땅이 삼만 원을 호가하고, 벌써 땅을 팔아서 자식들에게 나눠줬다는 등의 소문들이 자고 일어나면 무성한 동네의 들뜬 분위기에 따라 나도 어떻게 가슴이 부풀어오르지 않을 수 있으랴.

무더운 여름 뙤약볕에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고추를 따고 말려도 겨우 인건비 정도를 건지던 내 이웃의 밭이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는데 다시 땡볕으로 나가고 싶겠는가.

모처럼 그동안의 살인적인 폭염을 잠재우고 태풍을 부르는 비가 내리고 있다. 나도 오늘부터 어린 아들, 딸을 무릎에 앉혀 놓고 돈이 생기면 무조건 땅에 묻고 보라는 재테크 교육을 시켜야겠다. 田

■ 글 오수향 (ocho2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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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나, 요즘 복부인이 된 기분인 거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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