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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선생님께

선생님, 이렇게 불러보는 것이 얼마만인지요.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는 누군가를 ‘선생님’으로 부르기보다 직책이나 직위로 부르는데 익숙해져 버리기도 했지만 진심으로 가르침을 마음에 담을 스승 같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지 못한 탓도 있겠지요.
또 선생님께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는 아마도 여고시절 스승의 날에 억지로 쓰던 편지 이후로 처음이지요.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던 대학시절에도 문안편지 한 장 써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헤아리기도 아득하게 흘러버린 과거가 되어버린 대학시절의 지도교수였던 선생님을 갑자기 떠올린 것은 얼마 전 방송에서 선생님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가정의 일상이 그렇듯 낮에 있었던 사소한 일로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다보니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는데, 브라운관을 등지고 앉아 있던 남편 뒤로 나타난 낯익은 얼굴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낯익은 인상에 은발이 진행 중인 잿빛 머리카락, 기름기가 빠지고 구워진 통닭 같은 피부에 드문드문 검버섯까지…….
제 기억의 저장고에서 막 튀어나온 선생님이 분명히 맞았지만,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바로 선생님이셨습니다. 정지된 세월로 저장되어 있던 선생님과 15년 세월이 더해진 모습의 선생님 사이의 간극은 차마 말이 막혀버릴 것 같았습니다.

재학 시절, 첫 강의 시간에 ‘교수님’보다 ‘선생님’이라 불러 달라고 하시고는 거침없이 속어를 날리며 바로 우리 곁으로 다가오신 당신. 부조리한 시대에 아프고 사랑에 목마르던 젊은 날의 막걸리와 생맥주에 비틀거리는 초상들을 유연하게 받아주시던, 푸르른 당신의 모습 대신 한 노신사가 앉아 계시더군요. 차라리 당신의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자막으로 뜬 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아니라고 우기며 외면해버렸을 것을.

세월의 더께를 앉고 나타난 선생님을 뵙고 이렇게 흥분하는 것은 저한테도 비껴가지 못한 펑퍼짐한 아줌마가 된 세월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흔히들 그러지요. 마음은 항상 젊은 날 거기에 있는데 몸은 말을 안 듣고 거울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고…….
졸업하고 몇 년간은 어쩌다 한 번씩 선생님의 소식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관심 밖으로 밀어내는 데는 세월을 당할 수가 없는지라 그 사이 저한테는 동기들 소식도 다 끊어져 버렸습니다. 서울에 남아 있었더라면 연락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제가 고향으로 내려와 버렸고 그나마 결혼이 늦어져 친구들을 제대로 챙기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제주도라니요?

어떤 곡절이 있어 제주도까지 내려가셔서 강의를 하고 계신지요?
남편과 투닥거리느라 선생님의 인터뷰를 자세히 듣지 못했습니다만 출연하신 프로그램은 미술을 다루는 문화 프로였지요. 소설을 쓰시는 선생님께서 미술 프로에, 모교를 떠나 멀리 제주도에 계시다니. 목까지 차오르는 궁금증과 그리움과 반가움에 그 날은 일상의 피로마저 잊었습니다.

이렇게 끄적이며 이십 대의 시간을 불러오기를 해보니 문득, 선생님께서 풍을 맞으셨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혹, 그런 연유가 있어 제가 당신의 가르침을 받던 시절의 스마트하셨던 풍채가 그리되신 것은 아닌지요?
선생님, 우리들을 데리고 학술조사를 하러 갔었던 해변가 시골마을에서 만났던 무녀를 기억하시는지요?

순전히 재미삼아 심심풀이로 선생님과 우리들은 점을 봤었지요. 창백한 얼굴에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신비한 분위기가 있던 그 무녀는 우리들에게 오방기를 내밀며 하나씩 뽑으라고 했었죠. 모두들 싱글거리는 웃음을 감추고 있었지만 재수가 가장 좋다는 붉은 깃발을 뽑아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때 우리들 중에 누구도 붉은 깃발을 뽑아내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뽑으셨지요.

“교수님은 정말 훌륭한 교수가 되시겠구만요.”
아마도 그 무녀는 교수님께 이런 덕담을 했었고 우리들은 그 무녀로부터 각각 다른 색깔의 운명의 암시를 받았었죠. 장학금을 휩쓸던 선배에게 공부를 못할 거라는 점사(占辭)를 했던 무녀를 보고 우리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지만 후에 그 선배가 연거푸 대학원 시험에 떨어지자 다섯 가지 색으로 펄럭이던 우리들의 운명의 깃발을 떠올렸었죠.
오방기의 예언의 유효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선생님의 건재하신 모습을 매체를 통해서라도 뵙게 되었군요.

전 여전히 글쓰기의 갈증만 안고 세월의 긴 끈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를 이끄는 끈이 바짝 조여지는 날, 제주도로 선생님을 뵈러 갈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기억 속에서 한참 불러오기를 해야 화면에 떠오를 것 같은 제자가 불쑥 선생님을 찾아간다면 바로 저일 것입니다.
빨리 그 날이 오면 제주도의 유명한 노오란 유채꽃 길을 선생님과 함께 걷겠습니다.

■ 오수향 배상

∴ 글쓴이 오수향은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 폐교에 살면서 글쓰기의 꿈을 좇아가고 있는 주부입니다. 공주 KBS,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수향의 시골살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메일을 보내보세요. 더욱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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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5월에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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