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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고통 받았던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던 한 해가 가고 다시 새해가 왔다. 세월은 그저 무심하게 흘러가지만 사람들은 그 속에서 희노애락 생노병사를 껴안으며 간다.

도회지에서 태어나 평범한 교육 과정을 거치며 표준적인 삶을 또박또박 걸어 온 우리 부부가 시골 생활을 시작한 지 6년째. 생동하는 자연의 숨결을 맡으며 내 글쓰기의 배경 화면만이라도 묘사해 보겠다는 꿈 하나만을 가지고 무작정 시골로 귀향을 한 꿈의 한 자락은 간신히 붙잡고 있는데....

시골 폐교를 허술하게 개조해서 살다 보니 우리 가족은 자연 상태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생물들과의 동거를 본의 아니게 하고 있다. 우리 집에는 밤이면 나타나는 박쥐와 두더지, 집에서 기르는 발바리, 청개구리, 뱀, 지네에 이르기까지 동물의 세계를 찍어도 될 만큼의 재미있는 동물들이 있다.

이런 동물들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게는 신기하고 호기심 가득한 것들이었다. 무섭고 징그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묘하게도 실체를 파악하고 싶은 존재들이었다.

두려움에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외면하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슬쩍 엿보고 싶은 관음의 욕구를 부추기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내가 썼던 글들에 그것들에 얽힌 이야기를 상상력 조금씩 보태서 잘도 써먹었다.

그렇게 울궈먹고도 우리 집에서 내 장단에 아직 춤추지 못한 녀석이 아직 남았다. 그것은 ‘돈벌레’이다.

‘공부벌레’, ‘일벌레’ 등은 공부나 일에 집착해서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 속에 숨은 의미가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은 다 안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돈벌레는 뭔가에 중독된 것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곤충인 돈벌레를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초록색 뱀과 박쥐, 두더지 등은 반갑지만은 않은, 두렵고 섬찍한 존재들로 우리 집에서 눈에 띄는 즉시 쫓겨나거나 유배되는 조치를 당한다. 그러나 오직 돈벌레만큼은 예외다. 어디선가 돈벌레가 나타나 우리 집안을 슬슬 기어다니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돈벌레가 놀라서 달아나 버릴까봐 텔레비전의 볼륨을 줄이고 아이들에게 밟지 않도록 주의까지 준다.

어린시절 내가 살았던 도시의 양옥집에도 돈벌레가 있었다. 지네의 삼분의 일 크기에 솜털같은 발이 수없이 많이 달린 돈벌레는 어떻게 보면 송충이를 닮은 것이 혐오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사람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알지도 못하고 학술적 명칭이 돈벌레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친정 어머니는 그 벌레를 ‘돈벌레’라고 불렀고 당신만의 주술까지 걸어 놓았다. 돈이 생길 때를 미리 알고 예고해주는 벌레라고 하면서 한갓 벌레를 신성하게 여겼다. 그 때는 어머니의 이상한 믿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교육 공무원었던 아버지의 월급날이 가까워진 어느 날 저녁 그 벌레가 안방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장면을 보자 내 무릎을 살짝 치면서 말없이 턱으로 그 돈벌레를 가리켰다.

그 뒤로 아버지 월급날 무렵이면, 의외의 돈이 생길 때라든지 하면 예외 없이 그 돈벌레가 우리집 안방 바닥이나 벽에 붙어 기어다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돈벌레를 향한 어머니만의 이상한 믿음에 안 믿을 수 없는 증거를 보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것 자체에 관심이 없어 신기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항상 빠듯했던 집안 살림을 맡아 하던 어머니에게는 집안에 서식하는 벌레의 이름이 단지 돈벌레라는 것이 희망이었던 것이다. 돈벌레라는 이름처럼 뭔가 돈과 연관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어머니는 그 돈벌레를 돈을 기다리듯 기다린 것은 아닐까.

후에 국문학을 하게 되면서 그런 믿음이 유감주술(類感呪術)이라는 문자를 쓴다는 것을 알았다. 시골 생활을 하게 되면서 집안에서 돈벌레를 처음 보게 되었을 때의 반가움에는 그런 연유가 숨어있었다.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면 술잔을 기울이며 반가와 하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게 살게 될 줄 알고 시작한 시골 생활은 곳곳에 난관이었다. 젖먹이 아이를 업고 막 걸음을 뗀 아이 하나는 걸리면서 흉가 같은 폐교에 발뻗을 공간 하나를 만들기 위해 고생했던 시간은 다시는 떠올리기조차 싫다.

농업을 목적으로 귀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골의 분위기에 떠밀려 고추 농사, 무 농사 등을 지었다가 손해를 본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다.

넉넉하진 않았어도 안정된 환경 속에서 고생을 모르고 자랐던 우리에게 연속된 시행착오는 한 발자국씩 험하고 높은 산으로 이끌었다.

주변의 말리는 소리를 귓등으로 들으며 남편이 농대 출신이라는 알량한 이력 하나만 믿고 감행한 시골행이라 터놓고 상의할 곳도 없었다. 힘들다고 여기저기에 신세타령을 늘어놓고 다닐 만큼 두꺼운 얼굴도 없었던 우리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었다.

그 즈음 예전에 친정 어머니의 행운의 마스코트였던 그 돈벌레가 내 눈에 띄였다. 진작에 그 돈벌레는 우리집 구석구석을 활개치고 다녔을 테지만 환경에 따라 보는 것, 느끼는 것이 다른 법이라 관심 밖으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저 해충이나 곤충으로만 보였을 그 돈벌레에게 나도 어머니가 그랬듯이 되거나 말거나 희망의 주술을 걸어 보았다.

그런데 그 돈벌레에게 걸었던 주술이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녀석이 나타나 집안을 한번 휘젓고 다닌 날에는 어김없이 거짓말처럼 돈이 들어왔다. 녀석의 크기에 따라 돈의 액수도 비례했다. 녀석이 싱크대 설거지통에 빠져 있는 날은 더 이상 재수가 좋은 날이 없었다. 어느새 내가 돈벌레에게 거는 기대는 예전의 어머니보다 한 술 더 뜨고 있었다.

살짝만 건드려도 자지러져 죽은 시늉을 하는 돈벌레의 생태에 지장이 있을까 항상 집안에서도 발걸음을 살피게 되었고 모기약 뿌리는 것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청소기를 돌리면서도 구석을 유심히 살피는 일은 이제 습관이 됐다.

곤충도감을 뒤져서 돈벌레의 생태를 샅샅이 파악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희망은 언제나 한 겹쯤 환상에 싸여있고 한 발자국 떨어져 있어야 붙잡기 위해, 다가가기 위해 더 땀을 내기 마련이다.

의지할 구석 하나 없는 타향에서 돈벌레와의 만남은 내게 비빌 언덕이었다. 좌절의 문턱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작은 돈벌레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 마음을 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돈벌레는 내가 강하게 원하면 나타나 주었고 돈이나 행운도 함께 끌고 와 주었다. 강하게 염원하는 힘이야말로 돈벌레도 불러다주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원천이었다. 사람이 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돈벌레를 향한 혼자만의 주술에 의지해 시골살이에 익숙해지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며 이제는 요령도 늘었다. 여러 번의 고비도 넘겨왔다.

다시 새해가 시작되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나락에서는 미신 같은 상식 밖의 믿음인 유감주술이 힘이 될 수도 있다. 진흙탕에서 새해를 맞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분들은 자기만의 마스코트를 정하는 것으로 첫 달을 시작해 봄이 어떨는지… … .
‘전원’ 이라는 어감에서 오는 환상을 주지 않기 위해 ‘시골살이’ 라는 말을 더 많이 쓰겠습니다. 올 한해 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때론 구수하게 때론 달콤하게 여러분들에게 속삭여 드리겠습니다. 田

■ 글·오수향(주부)

* 글쓴이 오수향은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 폐교에서 살면서 글쓰기의 꿈을 쫓아가고 있는 주부입니다. 공주 KBS,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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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돈 벌레와 함께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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