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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눈은 다음해 농사에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다. 그 해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다음해 농사가 풍년이라고 한다. 그 풍년은 당장 보리농사에서부터 나타난다. 옛말에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다. 눈이 많이 내리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凍害)가 적어 보리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아침나절의 겨울내음도 익숙해져 버리고 길어져만 가는 밤의 길이도 ‘동지’라는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계절, 추수를 끝낸 황량한 들판을 보고 있으면 왠지 적막감과 외로움이 엄습하고 소복이 내리는 눈이 외로운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12월. 전원에 정착한 이들이 외로움과 적막함으로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다.

그러나 이 계절엔 이 계절 나름의 재미가 있는 법, 옛 사람들은 긴긴밤과 적막함을 함께모여 새끼줄을 꼬며 화톳불에 고구마, 군밤 등을 구워먹으며 사람들과의 유대로 계절이 주는 외로움과 밤의 지리함을 이겨냈다. 수정과, 홍시, 군고구마, 군밤 끝없이 나오는 군것질 거리와 사는 이야기로 밤 깊어 가는 줄 모른다. 이것이 겨울이 주는 따뜻함이다.

올 12월의 처음은 24절기 중 대설(大雪)이 맞이한다. 7일이다. 대설은 말 그대로 눈다운 눈이 이때쯤 내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해마다 눈이 고르게 오는 것이 아니어서 대설이라고 해도 어느 해는 11월 말에 있는 소설보다 적게 오기도 한다.

그리고 2003년의 마지막은 22일 동지(冬至)가 장식한다. 동지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긴 날이다. 이 날이 지나면 하루 낮 길이가 1분씩 길어지는데 옛 사람들은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날로 삼기도 했다고 한다.

동지 때는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는데 이 추위가 닥치기 전 보리밟기를 한다. 이때는 땅속의 물기가 얼어 부피가 커지면서 지면을 밀어 올리는 서릿발로 인해 보리 뿌리가 떠오르는 것을 막고 보리의 웃자람을 방지하기 위해 과거엔 겨울 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보리밟기를 하기도 했다.

12월인 음력 십일월부터는 농한기다. 이때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할 일이 더 많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기 위한 메주쑤기로 부산할 때다. 메주를 잘 만들어야 한 해 반찬의 밑천이 되는 장맛이 제대로 나기에 갖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잘 씻은 콩을 고온에서 단시간 익히는 것이 중요한데 손으로 비벼보아 뭉그러질때까지 충분히 익힌다. 삶은 콩은 소쿠리에 담아 물을 뺀 후 둥글넓적하게 혹은 네모지게 모양을 만든다. 모양을 갖춘 메주를 그대로 며칠 방에 두어 말린 후, 짚을 깔고 서로 붙지 않게 해서 곰팡이가 나도록 띄운다. 알맞게 뜨면 짚을 열십자로 묶어 매달아 둔다. 메주 달 때는 대개 짚을 사용하는데 이는 짚에 효소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좋은 나일론 끈이 많지만, 메주를 달 때 유독 짚으로 묶어 다는 이유는 푸른곰팡이의 번식을 양호하게 하기 위함이다. 잘 모르고 나일론 끈으로 달아 메주를 버리기면 장맛이 형편없어 진다. 메주를 띄울 때도 곰팡이가 잘 번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불 같은 것을 덮어 주는데 이때도 천연섬유로 된 이불이어야 좋지 나일론 등 합성섬유로 만든 이불은 좋지 못하다. 이는 곰팡이 균도 자연친화적이기 때문이다. 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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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세시기(歲時記)]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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