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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하게 보면 ‘살려줄까 말까’라는 문장에는 ‘죽여버릴까 말까’라는 의미가 등가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동형이의 그런 말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의지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발걸음이나 목소리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

앞집 막내둥이 동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도 벌써 한 학기가 지났다. 학교에 들어간 게 엊그제 같은데, 전보다 훌쩍 자란 모습이 대견스럽다. 한 살 위 오빠인 동형이도 제법 의젓해 보인다. 동완이가 오빠를 잘 따르는 모습은 전과 같으나, 동형이가 동생을 보살피는 모습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침착하게 인사하는 목소리에 제법 힘이 들어가 있다.

과일도 때가 되어야 익듯이 사람이 철 드는 시기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어린 학생들이 철드는 시기에 가장 큰 영향은 동생보다 자신이 상급학년이 되었음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부모 밑에서 다같이 응석을 부리며 자라다가 부모 손을 떠나 학교라는 공동집단 생활을 하게 되면서 나름대로의 규율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조숙해진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 주는 일도 있다.

이런 모습은 일기 중에서도 나타난다. 다음은 6월30일 동완이의 일기내용이다.
“밖에서 달팽이 두 마리를 잡았다. 달팽이 두 마리 이름을 ‘달순이’와 ‘달돌이’라고 지었다.”

동완이는 초등학교 1학년생이다. 그 사실을 감안하면 무척 잘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인 6월28일의 동형이의 일기를 보자.
“제목 : 딱정벌레/ 밖에서 놀고 있는데 딱정벌레가 있었다. 처음엔 아닌 것 같았는데 노란 걸 보고 알아차렸다/ 이름을 생각해 보다가 ‘임동철’이라고 지었다/ 산책시키는데 자꾸 불편하게 한다. 짜증나고 키우기 싫긴 하지만 키우고 싶어진다/ 살려줄까 말까?”

이 두 사람의 일기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점이 발견된다. 동생인 동완이의 일기에 비해 동형이의 일기는 제목이 붙어있으며, 문장이 길고 여러 단락으로 나눠져 있다. 학습이나 지력의 발달에 의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살려줄까 말까?’라는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담임 선생님의 강평은 환경일기라는 제목 아래 “잘 기를 능력이 없으면 살려주는 것이 자연보호예요.”라며 만점을 부여했다고 한다. 자연보호라는 관점으로 보면 올바른 관찰과 지도로부터 나온 결론이라고 본다. 하지만 필자는 이 부분을 동형이의 자신감 내지는 자아의 발견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싶다.

평범하게 보면 ‘살려줄까 말까’라는 문장에는 ‘죽여버릴까 말까’라는 의미가 등가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동형이의 그런 말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의지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발걸음이나 목소리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일기에는 어른들이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들어 있다. 그것은 동물을 잡아서 그것에다 이름을 붙여 준다는 점이다. 물론 도시의 아이들도 애완 동물에게 이름을 붙여 주고 사랑을 주며, 심지어는 같은 잠자리에서 잠이 들기도 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어디 다를 소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동완이와 동형이는 애완 동물이 아닌 달팽이나 딱정벌레 등 야생동물에게 이름을 붙여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가장 자연친화적인 행위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달팽이나 딱정벌레를 보면 우선 징그럽게 여기고 뒷걸음질 치거나, 심지어 울어버리는 아이도 있다. 이것이 도시 아이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이름 붙이기’는 인간과 동물의 생명을 동일시하는 행위와 사고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동형이와 동완이는 자연친화적 삶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 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살아가는 두 남매가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물놀이도 가고 그림도 그리고, 손톱에 예쁜 봉숭아꽃 물도 들이며 신나게 방학을 보내고 있다. 그런 중 내 아내와 함께 도자기를 만들기도 한다. 방학은 참으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에 내 어린 시절 방학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호기심이 많은 동완이는 즐거운 방학생활을 간단하지만 사실적으로 일기에 쓰고 있다.
“제목 : 도자기/ 이모랑 엄마랑 오빠랑 나랑 뒷집에 가서 도자기를 만들었다/ 도자기 흙은 참 부드러웠다. -7월29일”

“제목 : 그림/ 오빠랑 나랑 뒷집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 백일홍도 그리고 피망도 그렸다. -7월30일”

동완이의 이틀간 일기를 보면 방학 전과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일기를 쓸 때, 제목부터 쓰고 있는데 이는 일기를 쓰면서 발전해 가는 현상 중 하나다. 또 ‘도자기 흙은 참 부드러웠다.’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일기를 보며 점차 성장해 가는 모습을 찾는 것은 자연의 심오한 현상보다 더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형이는 방학을 맞아 신나게 노는 중에도 언제나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성숙해 가는 모습은 일기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제목 : 방학 5탄/ 달밤은 어두워/ 엄마, 동완이, 나를 세월천에 내려 주시고 아빠와 이모는 돌을 주우러 남한강에 갔다/ 그런데 어두워졌는데도 안 왔다. 엄마가 그냥 가자고 그래서 따라갔는데 아빠 차가 오고 있었다/ 엄마랑 아빠랑 싸움을 했는데 별로 안 시끄러웠다/그만 하시고 진정하세요. -7월30일”

동형이는 방학을 맞아 방학 첫날을 ‘방학 1탄’으로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방학 5탄은 방학 5일째를 맞이한 날이라는 뜻이다. 방학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으면 광고 문안에서나 쓰임직한 1탄, 2탄 등의 격정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동형이가 부모의 행동에 눈길을 모으고 있는 것 자체가 성숙해 가는 모습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의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같은 날인 7월30일, 두 남매의 일기를 보면 똑 같이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기의 내용은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동형이는 저녁에 세월천으로 간 이야기를 적고 있는 반면, 동완이는 낮에 그림 그린 일을 적고 있다.

이렇듯 일기의 내용이 서로 다른 것은 사실 당연하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듯, 하루생활을 같이 경험했다 하더라도 관점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다. 관점의 차이, 그 자체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인간적인가. 인간의 관점과 개성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동형이와 동완이는 이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개성을 키워가면서 자라고 있다. 그들의 일기가 비록 아직은 서툴고 어색하지만 자연이 함께 있고, 개성이 들어 있기에 그 어떤 책보다 가치 있다. 동형이와 동완이가 키가 자라고 생각이 자라 어른이 되고 나면 어린시절 일기는 소중함의 존재를 깨닫게 하는 큰 보배로 기억될 것이다. 田

■ 글 이기윤(시인·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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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완이와 동형이의 방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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