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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재두 씨는 청송 심씨 가문의 후예로서 이 마을에서 태어나 오직 한 곳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흔치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요즘 생각은 대부분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아무데서나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투 하나하나에서나 행동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삼거리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집 옆에 집터로 좋은 땅이 있는데 팔아서 농협 빚이라도 좀 갚았으면 한다고 했다. 자신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조상들에게도 미안한 듯이 어물거리며 이야기한다. 나는 그 날 저녁 내내 그 마음의 삼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현실과 미래, 그리고 자존심의 삼거리를 말이다. **

세월리에는 두 개의 도로가 교차하는 삼거리가 있다. 하나는 곤지암에서 세월리를 거쳐 양평에 이르는 98번 지방도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양평에서 세월리를 지나 이포 방향으로 향하는 88번 지방도로다. 양평 쪽에서 보자면 이 길들은 세월초등학교 앞에서 갈라져 각각 제 방향으로 향한다. 물론 거꾸로 말하면 거기에서 하나가 되어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세월초등학교 앞에는 삼거리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다릿골 다리에서 곤지암 방향의 갑을빌리지 앞으로 새 도로가 나는 바람에 그곳 앞에도 새로운 삼거리 하나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세월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많이 서성댄다. 그곳에서는 아랫마을, 윗마을 그리고 다릿골 사람들이 하나 둘 정담을 나누기도 하고 이포나 곤지암 방면으로 가는 사람들이 길을 묻기 위해 잠시 정차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포 방면으로는 휴게소가 없기 때문에 그 쪽으로 가다가 삼거리에 있는 슈퍼에서 간단한 음료수 등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아예 전북리 강가에서 놀기 위해 라면 등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마을 청년들은 이런 모습을 조금 떨어진 마을회관 앞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기 일쑤다. 주로 지나다니기만 하는 이런 사람들과 한데 서성이는 것이 어딘가 어색하기도 한 것이다. 나그네로 지나가는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른 자신들의 정체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어디론가 놀러가는 사람들에게 가지는 색다른 감정에서도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이 마을 청년들이 그 삼거리에서 서성이는 것을 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마을 청년들 중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눈을 지닌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심재두(43) 씨다. 심재두는 마을회관 앞이나 이장이 일을 보는 삼흥중개사 사무실에서 그 쪽을 바라보며 가끔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 사람들 참 팔자 한번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그 눈빛과 혼잣말 속에는 바로 농삿일을 하는 요즘 청년들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정도와 색다른 감정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사실 심재두 씨는 청송 심씨 가문의 후예로서 이 마을에서 태어나 오직 한 곳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흔치 않은 사람이다. 2대 독자인 그는 비록 영광의 계급인 육군 병장으로 제대하지는 못했어도 6개월 방위로 국토방위의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기도 했다. 3년 전에는 아버지를 여의고 지금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거기에다 자손이 귀한 집안의 외동아들답게 중3, 중1, 초등학교 5학년생 등 3자녀를 두고 있으니 여섯 식구가 한 가족을 이루고 사는 전통적 농촌 가족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심재두 씨의 요즘 생각은 대부분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아무데서나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투 하나하나에서나 행동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내가 약간 걱정스런 말투로 1년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 농토는 얼마나 되며 어떤 작물을 주로 재배하느냐,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이냐 등을 물으면, “뭐 그런 걱정을 다 하느냐” 는 식으로 받아넘기기 일쑤다. 그러나 그 받아넘기는 말 속에는 농촌 청년들이 지니고 있는 비애를 찾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술이나 한잔 합시다”라는 말속에서 말이다.
그래서 어느 날 그의 집과 농사짓는 모습을 보기 위해 차를 같이 타고 갔다. 아랫마을에 있는 그의 집은 1980년대 중농의 전형적인 가옥으로 비교적 현대식으로 잘 가꾸어져 있었고, 살림이나 농사짓기 위한 공간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 옆으로 약 1500여 평의 밭이 있는데, 그곳에는 오이와 호박이 비닐하우스 속에서 수확기를 맞고 있었다. 수확기가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이라 그런지 조금은 어수선한 하우스 속의 오이, 호박 넝쿨들이 재두 씨의 마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옆에 폐허가 되어 가는 비닐 하우스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버섯재배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수지가 맞지 않아 몇 년 전에 그만두고 그냥 방치시키고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랑곳없이 논농사가 5, 6천 평 있으니 먹고살기에는 걱정 없다고 강조한다.
어수선함과 방치된 감정을 일부러 숨기면서 먹고살기에는 걱정 없다는 그의 말 속에서 단순한 낭만주의자의 그늘을 넘어 깊은 비애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런 그를 얼른 부추겨서 내친 김에 강가로 가자고 했다. 느티나무와 비석거리를 지나 남한강과 용문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세월리 강가로 향했다.
통나무 전원주택을 지나자 갈대밭이 나왔다. 때마침 불어오는 저녁 바람에 갈대들이 몸을 흔들며 어린아이들처럼 ‘와와’ 함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가장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국악박물관(건축 중)까지 갔다가 돌아 나오는데 마침 개를 몰고 산책하고 있는 소설가 김민숙 씨를 만났다. 간단한 수인사를 하고는 갈대밭 속 길을 향했다. 찻길인데도 무척이나 구덩이가 많고 물이 고여 있어 시골길의 베테랑 기사인 재두 씨도 운전하기에 그리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이 길이 바로 모래채취를 위해 만든 길이라고 한다. 원래 세월리 강 가운데는 모래톱이 서너 개나 있었고 강가에는 넓은 모래밭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어디선가 모래와 골재를 파가기 위해 이 길을 만들고 또 그 바람에 모래섬들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파인 길을 비틀비틀 나아가면서도 재두 씨는 “허허…….” 소리를 내며 연신 강 쪽을 바라본다. 사라져버린 섬들이 기억에 떠오르듯이 어렸을 때의 뛰놀던 모습들이 갈대들의 몸짓에서 묻어나는 듯이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세월천과 용담천이 어우러져 강물로 들어가는 어귀에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놀고 있다. 낚시를 하는 사람, 천렵을 하는 사람, 그리고 불을 피워 무언가 구우면서 연기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재두 씨는 그런 것과 자기들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다만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몰지각한 사람들만 없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쓰레기 더미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장마가 지고 물이 불어나면 그것들은 버리고 간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또 흘러가겠지.
삼거리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집 옆에 집터로 좋은 땅이 있는데 팔아서 농협빚이라도 좀 갚았으면 한다고 했다. 자신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조상들에게도 미안한 듯이 어물거리며 이야기한다. 삼거리를 지나자 이장 사무실 앞에는 몇몇 청년들이 나와 있다. 소주 한잔하면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고 한다.
나는 그 날 저녁 내내 그 마음의 삼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현실과 미래, 그리고 자존심의 삼거리를 말이다. 田

■ 글 이기윤(시인·육군사관학교 교수)

* 글쓴이 이기윤은 시인이자 육군사관학교 교수이며, 현재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에 살고 있다. 1997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1999년 시집 《자전거와 바퀴벌레》 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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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리에도 삼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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