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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학교


시골생활에 뜻을 둔 분들의 발목을 잡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교육 문제가 아닐까요.

어디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분들도 막상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하면 그 단단하게 먹었던 마음도 슬며시 물러지게 되나 봅니다.

우리 교육의 문제가 여러 가지겠지만, 실제로 학부모들이 겪는 건 사실 교육이 아니라 대학입시 문제가 아닐까요. 정말로 아이들의 교육적 성과를 이야기한다면, 어린 아이들에게 치열한 성적 경쟁과 온종일 학교와 학원에 묶어 놓는 도시의 교육환경보다는, 들꽃과 반디불이와 천렵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 훨씬 교육적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법합니다.

몇몇 앞서가는 분들이 풀무학교나 간디 학교 같은 대안학교를 만들고, 또 그곳에서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현실은 자녀들을 대학이라는 괴물로부터 떼어놓게 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학력이라는 하나의 잣대만으로 본다면, 아무래도 그 경쟁의 분위기가 뜨겁고, 교육활동이 주로 성적 평가에 집중되는 도시학교들이 시골학교를 능가하는 건 현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적 올리기 경쟁을 토대로 또 하나의 경쟁인 대학 입학에서도 유리한 결과를 얻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내가 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을 젖히고, 앞서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싸움판이 아니라,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나가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기를 바란다면, 아이들의 교육 문제는 오히려 시골 학교의 성과가 올바르다고 봅니다.

교육정책이 다양한 입시 방안을 마련하고,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가 명문 학력 중심, 많이 배운 이들끼리의 기득권을 주장하고 있는 분위기에서는 부모들은 선뜻 아이들을 그런 낭만적인 시골 학교의 교육에 내맡기기 어려워하는가 봅니다.

말로는 인성이 제일이고, 성적보다 올바른 인격이 중요하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막상 내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들면 행동발달보다 성적 석차부터 살피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이런 공부를 시키면서도 이게 아닌 데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고심하는 분들도 많지요.

제가 아는 분이 딸을 풀무학교에 보냈는데, 첫 수업이 분뇨 치우기였답니다. 동장군을 나르며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아마 불평을 했겠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그 인상적인 첫 수업을 통하여 자연과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분뇨를 치우는 일이 대학 입시에 어떤 평가에도 반영되지 않고, 어느 시험에도 출제될 문제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지혜와, 노동의 신성한 즐거움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영어 단어 몇 개와 수학 공식 몇 개 차이로 줄을 세우는 우리의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가르침은 당장은 드러나지 않아도, 아이들을 전혀 다른 삶의 길로 인도해 나갈 것입니다.

우선 시골학교는 규모가 적어서 선생님들의 정성어린 가르침과 세심한 지도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 학교가 적다 보니 아이들끼리의 만남도 인간적이고, 충분히 깊이 있는 교제를 키울 수 있습니다. 대규모 도심학교의 경우, 같은 반이 아니면 말 한마디 못하고, 같은 학교 다니는 지도 모르는 아이들 사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요.

또한 소규모의 시골학교는 지역의 어른들도 손바닥 보듯이 아이들 하나 하나의 행동을 살피게 됩니다. 누가 누구하고 싸움을 하고, 누가 공부시간에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죄다 알려지지요, 도심의 아이들이 길에서 담배를 피워도 남의 일처럼 외면하는 거와는 비교가 되는 장점입니다.

또한 읍면 단위의 경우,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등록금이 면제되고, 고등학교도 상대적으로 수업료가 저렴하지요,

물론 농어촌 학교의 재정이 어렵다 보니 교육시설이 떨어지고, 지역에도 극장이나 전시장과 같은 문화공간이 미흡하긴 하지만 그 대신 운동장까지 노루가 내려오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친구들과 여름이면 개울에서 천렵을 하고, 겨울이면 산토끼를 몰러 뛰어 다니는 자연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훌륭한 문화공간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그러나 시골에도 최근 잘못된 도심의 교육열이 강박적으로 밀려와 오히려 도심의 아이들이 다양한 특기적성교육에 열중하는 반면 뒤늦게 입시 학원이 성황을 누리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선 어중간한 도농 복합의 교외지역보다는, 아주 깊은 오지의 학교들이 교육적으로는 더 훌륭하다고 봅니다.

대개 이런 학교의 경우, 선생님들도 학교 부근에 사시며 한 곳에 머물러 계시는 곳이 많기 때문에 방과후에도 지속적인 지도가 이뤄지지요, 대개 분교의 아이들이 본교보다 더 학력이 우수하다는 것도 눈 여겨 볼만한 일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도 학교 폭력, 왕따, 신문에 보도되는 각종 청소년 비행, 그리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들려오는 교통사고에 노심초사하는 도심의 학부모들보다 아카시아 하얀 꽃잎이 떨어지는 교정에서 선생님과 풍금을 내다 놓고 노래를 부르는 시골학교의 아이들.

시간이 나면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학교 앞개울에 나가 집에서 한 숟가락씩 가져온 고추장을 풀고 쉬리나 피라미를 끓여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는 학교, 삼삼오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넘어 오며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정말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 주어야 할지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야간자율 학습과 보충, 그걸로도 모자라 특별보충이라는 이름으로 밤 열시까지 딱딱한 학교 의자에 붙잡아 놓고, 그걸로도 모자라 학원에다 과외공부로 한창 뛰어 놓아야 할 아이들의 발목을 붙잡아 놓는 진흙탕 속에 우리의 사랑스런 아이들을 떠밀어 넣어야 할 것인지 고심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소위 명문대학이 곧 인생의 행복을 보증하는 인증서인지도 깊이 있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시골생활에서 교육문제는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라는 걸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田

■ 물골안에서 이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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