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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낙엽 아닌 쓰레기를 태우면서


그래서 생각난 것이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수필이다. 거기에는 낙엽을 태우는 냄새를 ‘갓 볶아 낸 커피 냄새’ 또는 ‘잘 익은 개암 냄새’라고 표현하고 있다. 어찌 보면, 농촌의 쓰레기는 낙엽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인다. 그 시대상의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생활의 핵심적 요소로 물과 불을 상정하면서 그것들의 상호 보완적 관계가 주는 인간생활의 윤택함과 멋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의 입장에서 볼 때, 그야말로 낭만의 극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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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슈퍼가 하나 있다. 바로 세월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한창상회’다. 거기에는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다. 여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빙과가 겨울에는 호빵이 김을 무럭무럭 낸다. 동네사람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품은 거의 다 갖추고 있다. 동네에서 서비스 업종의 대표라고 할 만하다.

세월리에서 이렇게 중요한 한창상회는 주인이 하루에 한 번씩 바뀐다. 낮에는 언제나 부인인 전금자(61) 씨가 가게를 보고, 밤이 되면 남편인 한천규(62) 씨가 본다. 그 이유는 한천규 씨가 낮에는 들에서 주로 농사일을 하기 때문이다. 교대로 가게도 보고, 또 농사일을 해 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 부부의 모습은 요즘 농촌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름답게 보인다.

그런 한천규 씨가 요즘 들어 쓰레기 이야기만 나오면 열을 올린다. 농사일에다 가게까지 보다 보니 생활폐기물이나 쓰레기가 어느 집보다 많이 나오기 마련인데, 얼마 전에 그것을 임의로 태우다가 적발됐기 때문이다. 물론 적발되면 해당 기관으로부터 고지되는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오늘밤도 담배 사러 가는 길에 ‘쓰레기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슬쩍 물었다. 물론 한천규 씨를 또다시 열 받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곧 나의 문제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적발되고 난 뒤 어떻게 됐냐’는 질문을 하자,

“어떻게 되긴요. 벌금 20만 원을 물 수 밖에요. 그렇다고 나 혼자 낸 것은 아니고, 과자장사하고 반반씩 냈지 뭐에유.”
라고 말한다.

“아, 그것은 알겠는데요. 도대체 어떤 법을 위반해서 벌금을 낸 것이데요?”
라고 재차 묻자.
“글쎄요. 아마 태우지 못하게 돼 있는 모양인데……. 아, 그 놈이 문제지요. 고발한 그 놈 말이유. 그 놈이 그런 놈이더라고요.”

쓰레기 소각에 대한 정확한 관련법규나 규제사항에 대한 해명에 앞서 소각 사실을 고발한 사람에 대한 원망이 앞섰다. 그리고는 ‘농사에다 가게에서 나오는 이 많은 쓰레기를 봉투 하나에 1700원씩이나 하는 것을 어떻게 사다 대느냐’는 말을 덧붙였다.

여기에서 쓰레기를 소각하는 일은 다반사인데 자신만 고발당해 억울하다는 심정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안다. 이제는 환경보전이 어떤 가치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이곳은 한강유역으로 상수원보호구역이 아닌가. 거기에다 양평군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농업에 대한 홍보는 마을 이장의 임무 중 하나로, 개개인이 알아듣기에 부족함이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사실, 고백하건대 나도 어제 쓰레기를 태운 사실이 있다. 오랜만에 이곳저곳을 청소하다 보니 이사 온 뒤로 미처 치우지 못한 쓰레기들이 상상외로 많이 나왔다. 그것을 대문 앞 공터에 쌓아놓고 보니, 막상 처리할 방도가 막막했다. 물론 재활용 가치가 있는 것들, 즉 빈병, 깡통, 페트병 등은 따로 모아 처리하기로 했지만 못쓰는 책이나 종이류, 더구나 옷가지 등은 당장 처리할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묻자니, 묻을 만한 공간도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이 곧 토양오염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태우자니 대기 오염이 될 것이 뻔했던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재활용품만 골라 따로 놓은 뒤 이리 쌓고 또 저리 쌓아보고 있는데, 뒷집아주머니가 와서 태우는 게 상책이라고 은근히 종용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나도 처음에는 거기에 찬성할 수 없어서, 매주 목요일 재활용품은 가지고 간다는데 박스나 종이 같은 것들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재활용품 외에 다른 쓰레기들은 태우는 것이 최선이라고만 강조했다. 쌓아두면 여름장마에 섞어서 흉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말을 한참 듣고 있노라니 유혹이 일어났다. 그래, 잠깐 태우면 그만이지 하고 말이다. 그래서 아주머니하고 둘이서 이것저것 모아다 쌓아놓고는 불을 붙였다. 그러자 날씨도 눅눅한 데다 물기가 채 마르지도 않은 잡동사니들이 타면서 나는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이거 안 되겠다며 바로 불을 끄려는 나를 그녀가 말렸지만 이내 반도 타지 않은 상태에서 불은 멈추었다.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바람에 양심이 또 한번 흔들렸기 때문이다.

결국, 농촌의 쓰레기나 생활폐기물은 현재에서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환경 관련 규제 사항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런 취지를 살리기에는 농촌의 실정이 아직은 열악하다는 것이다.

한천규 씨의 말대로 농촌의 쓰레기 양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을 폐기물 봉투를 유료로 사서하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다 소각 시설이 마을마다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농촌사람들의 폐기물 처리 실태를 무조건 잘못됐다고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진퇴양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수필이다. 거기에는 낙엽을 태우는 냄새를 ‘갓 볶아 낸 커피 냄새’ 또는 ‘잘 익은 개암 냄새’라고 표현하고 있다. 어찌 보면, 농촌의 쓰레기는 낙엽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인다. 그 시대상의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생활의 핵심적 요소로 물과 불을 상정하면서 그것들의 상호 보완적 관계가 주는 인간생활의 윤택함과 멋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의 입장에서 볼 때, 그야말로 낭만의 극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하면 낭만과 멋은 인생에서 하나의 목적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위해 생활의 수고로움과 애달픔도 참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농촌사람들이 그것을 더 깊이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진정한 물과 불의 현대적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농촌 사람들의 순박한 양심이 한낱 연기에 날아가 버리지 않게 말이다. 田

■ 글 이기윤<시인, 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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