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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원일기

“그래도 임철승 씨는 나무를 심는다”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단순히 식물 하나를 땅에 심는 것이 아니라 자연 사랑과 인간 사랑의 정신을 심고 키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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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숲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 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다.

나무와 숲이 없는 산을 한번 상상해 보자. 그것으로 인해 물질적 곤란을 겪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황폐함이 인간에게 주는 정신적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단순히 식물 하나를 땅에 심는 것이 아니라 자연 사랑과 인간 사랑의 정신을 심고 키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월리에 본격적인 봄이 찾아 왔다. 봄이 오면 꽃들이 만발하는 세상을 그리기도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할까’ 하고 궁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인 1960년대부터 대대적으로 나무심기 행사를 벌여온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식목일 행사를 꾸준히 한 지가 오래되어 그런지 식목일이 되었는데도 동네가 조용한 것이었다.

하도 이상하여 이장님께 물어보니 연례적인 마을 차원의 식목 행사는 이제 없어진 지 오래고, 다만 상급기관에서 묘목을 주면 마을에서 가끔씩 심는 경우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실 심을 데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내가 의례적인 식목 행사에 길들여져서 그런가, 아니면 이제 누구도 식목 행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현실이 올바른 것인가. 한동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국민들 중 40대 이상 정도 되는 사람들은 식목일에 관한 특별한 추억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이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쯤의 식목일에는 누구나 다 삽과 호미를 들고 학교로 나와 그 주위에 나무를 심었으며, 오후에는 마을로 돌아가 마을 이장들의 선도 하에 너도나도 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나무를 심는 동안 학교에도 마을에도 ‘내 나무 네 나무’가 자랐고, 모두들 자신들이 심은 나무에 애정을 가지는 동안에 학교 사랑도, 마을 사랑 정신도 스스로 자랐던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식목일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날이다. 역사적으로는 1910년 4월5일 순종황제가 친경제 행사 때에 나무를 심은 사실에서 비롯하여 식목일로 정하였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때에는 4월3일로 되었다가 다시 해방 이후 4월5일로 환원되었는데 1949년부터 공휴일로 정해졌다.

또한 자연림이 울창한 남미나 오세아니아, 그리고 북미나 스칸디나비아반도 등의 국가들과는 달리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는 동안 국토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우리나라의 경우 식목일은 오늘날의 우리 산야가 푸르게 된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이 짧은 기간 동안에 말이다.

몇 해 전 산림청에서 개최한 시낭송회에 참가했다가 몇몇 산림 전문가들에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식목일과 산림녹화 사업이 없었다면 근대화는 불가능했다고 한다. 대체로 수긍이 가는 이야기였다.

그 중에서도 1962년부터 정부는 체계적인 조림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는데, 그것에 관련된 일화 하나가 생각난다.

1960년대 후반 어느 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강릉을 방문한 자리에서 “산들이 왜 저렇게 헐벗고 있느냐”며 그 자리에 참석한 관계자들을 힐책하였는데, 그 소리를 들은 강릉시장이 “동해지방에는 바람이 하도 심해 식목을 한 효과가 반감된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때 박대통령은 “그렇다면 군대식 참호를 파서라도 묘목을 보호해야 한다”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그 지방에서는 나무 한 그루에 참호 하나씩을 파서 나무를 보호한 결과 오늘날 동해안의 숲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19세기에는 독일이 유일하게 산림녹화 사업에 성공한 나라였다면, 20세기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림녹화 사업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불과 삼사십 년 전에 산림녹화에 온갖 정성을 다했던 우리 자신들과 선배들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과 정성에서 비롯된 나무 사랑의 정신이 이처럼 쇠퇴하고 만 것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산림녹화 사업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벌써 그것을 멈출 때는 아니라고 본다.

현재 1헥타르 당 축적을 보면, 뉴질랜드가 125㎥, 일본이 145㎥, 그리고 독일이 268㎥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겨우 63㎥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 중에서 20년 미만의 유년기 나무로 조성된 숲이 40퍼센트이고, 20∼40년의 소년기 숲이 50퍼센트로 전체 숲의 90퍼센트가 유소년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앞으로 적어도 일이백 년 동안에는 꾸준하게 나무를 심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나무와 숲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다.

나무와 숲이 없는 산을 한번 상상해 보자. 그것으로 인해 물질적 곤란을 겪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황폐함이 인간에게 주는 정신적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단순히 식물 하나를 땅에 심는 것이 아니라 자연 사랑과 인간 사랑의 정신을 심고 키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생태 보존이니 자연친화 사상이니 하면서 어느 부문을 막론하고 환경 마인드를 강조하지 않는 데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구호나 슬로건을 외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일이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듯 실천적 행동 하나 하나가 결국 그러한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 심을 데도 없고, 이만 하면 굳이 나무를 심을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이른 속단이다. 그리고 정말 나무를 더 심을 필요가 없다면 나무를 가꾸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참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도 세월리 사람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장님 사무실에서 대추나무를 심겠다고 자전거에 싣고 가는 사람도 있고, 자식 교육 때문에 일부러 이 곳으로 이사 온 앞집 임철승 씨가 오늘도 나무를 심고 있는 것이다.

어제는 서울 양재동까지 가서 어린 주목과 소나무 등을 사 와서 아침부터 묘목장에서 정성스럽게 심고 있다.

그렇게 심은 어린 나무들은 동형이와 동완이가 자라 듯 쑥쑥 자랄 것이며, 그리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갈 것이다. 서로 사랑하면서 말이다.

나무는 자라 숲이 되고 동량이 되듯이, 나무와 더불어 자란 동형이와 동완이는 앞으로 사랑을 나누어주는 천사가 되고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참다운 인재가 될 것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田

■ 글 이기윤<시인, 육군사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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