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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촌에서 띄운 편지

산촌에서의 허튼 소리


“벽촌의 소외된 계층들의 한숨소리도 들어 줬으면 좋겠다. 언젠가 방방곡곡 소리 없이 사는 사람들도 국법 지키고 세금 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진실로 알아주는 정부가 되어 주길 기대한다. 사실 지방 일선 공무원들은 많이 발전했다. 적극적인 대민 봉사활동이나 친절한 자세는 전혀 옛날 같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직무수행에 너무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즉 중앙정부의 지시나 눈치에 얽매여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제가 하루속히 활성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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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동창회나 모임이 있어 서울에 가면 남보다 인사 한 마디를 더 듣는다. 그냥 “반갑다. 오랜만이다”로 끝나는 인사가 “멀리서 왔구나. 지낼 만 하니”라는 말이 더 붙는다. 서울서 살건 시골에서 살건 사는 것은 다 같을 텐데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러나 서울서 살지 않는 것을 비정상적이라든가, 혹은 신기하단 뜻을 은연중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처음 낙향하려 했을 때는 희망에 부풀었으면서도 무슨 미지의 신천지를 개척하는 양 막연한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이제 산촌에 정착한 지 오륙 년 지나다 보니 생활도 안정되고, 철따라 변하는 새로운 느낌이 살맛 나는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 ‘낙향을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편리 위주로 발달되어 온 도시생활과는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큰 어려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전국 어디나 인프라가 많이 구축되어 교통 통신도 큰 불편 없고 농가들도 소달구지나 지게 대신 소형 트럭이 필수품화 되어 있다.

스위치만 터치하면 온도조절이 자동화되어 계절감각도 못 느끼는 아파트생활이 편리하겠지만, 추우면 벽난로에 장작불을 피워 따뜻함을 느끼는 조그마한 행복감은 산촌생활의 즐거움이다.

문 밖만 나가면 온갖 생필품이나 호화찬란한 명품이 전시된 백화점은 없어도 삼사십 분 거리에 무슨무슨 마트하는 할인매장도 있고, 영월·평창·정선의 오일장 둘러보는 맛도 재미있다. 온갖 잡곡, 산채를 비롯하며 할아버지들의 투박한 솜씨로 만든 수공품들도 갖고 싶다.

장에 가면 빠트릴 수 없는 곳이 대장간이다. 평창 장터의 한 대장간 아저씨는 하도 자주 들리니까 나만 가면 ‘왕단골 손님 왔다’고 무척 반긴다. 그래서 조금 깎아 주는 인심도 베푼다. 일을 하다가 조금 편리한 연장이 없을까 싶어 찾아가면 입맛에 맞게 뚝딱 만들어 준다.

덤불을 헤치고 지나갈 정글낫, 돌밭을 파헤칠 두발 쇠스랑, 벌통을 파기 위한 특수 끌, 벽난로에 생선이나 고기 구울 때 걸칠 삼발이, 약초 캐는 곡괭이 등등. 주문만 하면 척척 만들어 주는 만능 재주꾼이다.

이렇게 정이 두터워지는 새로운 친구들이 늘어나는데 우리 마을엔 농한기에 짬을 내서 경로잔치다, 친목을 도모하는 윷놀이다 해서 즐거운 모임들을 자주 갖는다. 으레 농사일, 세상 돌아가는 얘기 등등을 나누는데 진솔한 얘기들이 많고 참 들을 만하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짚고 넘어 가야겠다. 지난 정부 오년 간의 치졸한 정책으로 오지주민들의 불편함은 가중되었다. 오지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과거에 설치했던 출장소, 파출소, 우체국, 분교 등등 주민들과 피부로 맞닿는 공공기관의 최일선 창구들을 대폭 폐지해 버렸다. 가뜩이나 서자 취급받던 벽지주민들의 불만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경영합리화인지 구조조정인지라는 명목으로 폐지된 우체국 예를 하나들겠다. 오지 우체국의 중요 기능은 우편업무보다는 금융업무의 비중이 훨씬 크다. 요즈음의 농촌은 자기 먹을 것을 자가 생산하는 자급자족의 형태가 아니라, 한 가지 종목을 선택해 집중 생산하는 환금작물재배 패턴으로 바뀌어서 일 년에 한두 차례 목돈이 생긴다.

이를 장롱 속에 넣어 둘 수도 없어 필연적으로 금융기관에 저금하고 필요시 인출할 수밖에 없다. 벽촌에 은행이나 농협의 개설은 경영상 무리고, 최선의 방법으로 간이 우체국을 설치하여 주민생활에 도움을 주어 왔다. 이처럼 중요 기관을 적자 운영이라고 폐지했다.

그것도 지역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일 면 일 국(一面一局)만 잔존시킨다는 획일적인 원칙으로 말이다. 벽촌의 주민들은 거의가 노인층인데 집집마다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 두세 번 운행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사오십 리 길을 몇 푼의 저금 인출을 위해 인근 도시로 나들이하다 보면, 하루 일손을 완전히 소모해 버리고 만다. 일손 부족이 심각한 농촌에서 사소한 문제 취급하여 덮어 버릴 수 없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하는 정부기관이 어떻게 수익성만 따진단 말인가? 그늘진 곳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소외된 국민들을 더욱더 살피고 찾아서 보듬는 정부라야 성숙된 정부일 텐데, 목소리 작다고 깔아뭉개는 행정을 지난 정부는 서슴없이 자행해 왔다.

소위 저속한 인기행정 전시행정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요는 소신도 없고 능력도 없으며 치졸한 정치권에 아부하는 일부 중앙관서의 고급관리들이 문제다.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려면 중복 업무가 많은 중앙관서의 부서들을 통폐합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고 능률적일 텐데 제 밥 그릇 지키기에 급급했던 모양이다.

말로만 국민의 뜻이란 말을 자주 쓰는 정치인이 제일 꼴불견이다. 진솔한 민심의 향방을 간파하려는 성실함과 양심이 있는 지도자가 아쉽다.

국민은 전혀 공감하지 않는데 자기 개인의 생각을 국민들의 뜻인 양 거침없이 말하는 파렴치한 정치인들의 언행에 신물이 났다. 전원생활 얘기가 어쩌다 다른 방향으로 외도한 것 같은데 벽촌의 소외된 계층들의 한숨소리도 들어 줬으면 좋겠다.

언젠가 방방곡곡 소리 없이 사는 사람들도 국법 지키고 세금 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진실로 알아주는 정부가 되어 주길 기대한다.

사실 지방 일선 공무원들은 많이 발전했다. 적극적인 대민 봉사활동이나 친절한 자세는 전혀 옛날 같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직무수행에 너무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즉 중앙정부의 지시나 눈치에 얽매여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제가 하루속히 활성화되어야 한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의 범주에서 농촌생활이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생활을 영위할 활력소들이 있어서 상대적 박탈감을 보상해 준다. 그것이 바로 자연이다. 나도 그 자연의 한 구성 요소로 동화되고자 노력함이 전원생활의 기쁨인 것 같다.

■ 글 황대석<뫼꽃야생화농원 경영>

글쓴이 황대석 씨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중견건설회사의 경영자로 근무하다 정년퇴임했다. 지난 96년부터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두산리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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