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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서·온·편·지

텃밭 일구기

시골생활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텃밭이지요.
가족들이 먹을 푸성귀와 찬거리들을 몸소 길러 먹는다는 경제적 잇점 말고도, 집 가까운 곳에 무언가 흙을 만지며 길러낸다는 즐거움이 있지요.
도시에서 남의 눈치 보면서 아파트 놀이터 한 모퉁이를 일구는 노인분들을 대할 때마다 우리의 잃어버린 흙의 향수가 물씬 풍겨나 가슴이 아려 오더군요.

심지어는 장미를 심어 놓은 베란다 밑의 자투리 땅을 놓고도, 이웃간에 서로 니꺼 내꺼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고층아파트의 베란다나 창가에 페트병을 잘라 만든 포트에 흙 한줌 담아 길러내는 고추와 가지, 상추를 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함께 유난히 흙을 사랑하는 우리네의 심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서양인과 달리, 평생을 흙 속에서 살아온 농경민족의 습성은 거의 초식동물을 닮았지요. 유순한 눈망울과 소를 닮은 심성들은 고기를 먹고사는 백인들의 공격적인 삶과는 참 다르지요.

특히 자연을 다루는 관점은 확연히 다르지요. 서양사람들이 자연을 극복하고, 물리쳐야 할 적대적인 대상으로 인식하는 반면에 동양인에게 그것은 마음의 고향이며, 어머니와 같은,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터전이지요. 그 이유로 서양인들은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과학문명을 발달시켰다는 말도 있긴 합니다.

새마을 운동 이후, 보릿고개를 넘었다고 안도의 숨을 쉬긴 하지만 소위 굴뚝산업이라는 제조업의 공장들이 도시에 지어지면서, 농촌의 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지요.

농촌은 비어져가고, 도시의 아파트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마음 속에 흙을 담고 무엇인가 가슴 속에 씨를 부리곤 하지요. 가뭄이 들면 가물어서 어쩌나 서울사람들도 두고 온 고향을 걱정합니다.

홍수가 지면 두고 온 고향집의 흙담이며, 둑방의 아랫 배미 논 걱정에 잠을 설치곤 합니다. 아마 이런 마음이 도심의 한가운데서도, 옥상 위에 흙을 퍼담아 두고도, 무언가 씨를 뿌리게 하고, 꺼칠한 흙이나마 손에 묻히게 하는 가봅니다.

시골로 내려온 분들이 제일 먼저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마당 한가운데 푸성귀를 심고, 기르는 것인데, 상추나 고추, 쑥갓, 파, 마늘, 감자 등 여름 한 철, 집안의 반찬거리는 사실 적은 면적의 텃밭으로도 먹고 남을 만하니 ‘광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시골생활의 여유는 바로 그런 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산을 넘으면, 나이 드신 분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는데, 그분들이 짓는 농사를 곁에서 볼 때마다 참 건강하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겨울 바람이 가시기 무섭게 두엄을 내고, 밭을 갈고, 겨우내 꺼칠하니 버려져 있던 텃밭은 금세 탐스런 흙들로 채워지고, 단정하게 정리가 됩니다.

한 곁에 모종을 내는 비닐하우스까지 만들어 놓고, 여나무 분의 노인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동으로 길러내는 푸성귀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모습을 늘 부러움으로 바라보곤 했지요.

대개 시골에서 4인 한가족이 먹을 만한 텃밭은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어야 할까요.
생각보다 적은 땅이면 충분하지요. 2~3평 정도의 텃밭에 고추 4포기, 상추 2~3포기, 쑥갓 2~3포기, 대파 2~3포기, 가지 2~3포기면 충분합니다. 거기에 좀 넝쿨이 넓게 퍼지는 호박이나 오이, 참외 등은 산기슭이나 자투리 땅에 따로 심어두는 편이 좋습니다.

참외는 2~3포기면 충분히 먹는데, 의외로 잘 자라지요. 다만 순 따주기를 해야 맛도 달고, 크기도 실합니다. 그러나 수박만큼은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거름을 충분히 주어야 하고, 꽃이 피면 사정없이 순을 따 주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기껏 어린애 주먹만한 것이 달릴 뿐이지요.

여름 푸성귀가 지나고 나면 재빨리 넝쿨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열무나 배추, 무우를 심지요. 열무는 잘 자라지만, 배추나 무우는 물을 잘 주어야 하고, 모종낼 때 솎아주기를 잘 해야 실해집니다.

무우도 잘못하면 무청만 수북하고, 밑이 들지 않는 경우가 있지요. 그밖에 감자나 고구마도 잘되는데, 감자의 생명력은 대단하지요.

거름이 잘된 밭에 모종을 내거나, 아니면 씨감자를 심으면 됩니다. 감자는 적당히 잘라서 나무 태운 재를 발라 심으면 좋다고 합니다.


시골생활의 초기에는 너무 서두르지 말고, 그저 집안 가족들의 반찬거리나 한여름 별미로 맛보는 과일거리들을 길러내는 데 만족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너무 넓은 밭을 일구다 지치는 경우도 있고, 실패를 해서 주저앉게 되는 일도 있으니 적어도 10평 이내로 적은 밭에 오밀조밀 여러 가지 화초처럼 길러보고, 그 밭에서 특히 잘되는 품목을 골라 차차 규모를 넓혀 가는 게 좋지요.

가족이 먹고도 남는 것들은 도시에 사는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보내는 것도 뜻 있는 일이지요. 가능하면 농약이나 제초제 사용을 금하고, 벌레를 잡고, 풀을 뽑고 손으로 다룰 만한 적은 규모의 텃밭부터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거름은 가능한 풀을 베어 밭 모퉁이에 쌓은 후에 음식 찌꺼기, 오줌, 동물의 분변 등을 섞어 발효시키되, 가능하면 플라스틱 등 의 쓰레기 태운 재는 사용치 말기 바랍니다.

그러한 재는 거름도 되지 않고 오염 물질의 2차 중독을 일으킨다는군요.
나무나 풀을 태운 재만 있다면 좋지요. 그리고 정 썩힐 만한 거름이 없다면 풀이나 음식물에 톱밥을 넣고, 거기에 막걸리 먹다 남은 거를 뿌려 놓으면 발효가 된답니다.

요즘은 농약, 제초제는 물론이고, 자라는 잡초마저 내버려두고 작물의 자생력에 의지하는 농법이 나왔다는데, 이름하여 ‘태평농법’이라고 하는데 나 같은 게으름뱅이에게는 딱 맞는 농사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田

물골안에서 이시백
글쓴이 이시백씨는 중학교 교사이며 소설가다. 서울서 생활하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 물골안이란 동네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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